평양 청년이 가르쳐 준 '세박자춤'

[국제친선음악제] 피아니스트 임미정 교수의 평양 방문기

등록 2003.05.24 13:54수정 2003.05.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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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 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임 교수는 여덟 번째 기사를 마지막회로 보내왔다....<편집자주>


야외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시민들.
야외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시민들.임미정

항상 잊지 못할 행사중의 하나는 4월 15일, 나랏길 시작점이 있는 인민대학습당 앞의 김일성 광장에서의 무도회다.

대략 4만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는 행사였다. 주로 미혼의 남녀들이 나와 즐기는데 마치 한가위 때 강강수월래 하듯이 수없이 많은 원으로 모인 사람들이 중앙의 가설 무대에서 연주되는 ‘반갑습니다’, ‘휘파람’, ‘우리는 하나’같은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평양 청년이 가르쳐준 세박자춤

나도 처음엔 구경만 하다가 끼어들어 같이 추었는데, 두 마디 정도만 듣고도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춤을 추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런 군무에선 대략 대여섯가지의 형식이 있는 듯했다.


나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 평양 청년은 내게 발 스텝을 가르쳐 주었고 음악이 나올 때마다 이것은 어깨춤입니다. 이것은 세박자춤입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때 나오는 음악들은 민요풍의 대중 가요들이다. 북의 대중 가요들은 부드러운 정서를 표현하며 자극적이지 않고 소박하다.

보름달 아래에서 치마 저고리를 입은 젊은이들과의 시간은 마치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강강수월래의 연장같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 올랐었다.


네 번을 방문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 예술단과 함께, 기증할 독일 악기들을 들고 갔던 아베 슈멜터 독일 문화원장(서울 남산 소재의), 프랑스에서 온, 유럽의 어느 콩쿨에서 만났었던 피아니스트, 미국 줄리아드 음대 동기생 바리톤 패트릭, 그들은 각각의 정부와 후원단체에서 연주료와 경비 등을 후원받고 참가했었다.

축전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북과의 교류를 위해 자체의 경비로 예술단을 파견한다. 우리 재미 예술단도 재미동포 후원단에서 호텔과 비행기 등 모든 경비를 후원해 주었다. 패트릭이 속해있는 미국 시카고팀은 종교단체인 퀘이커교에서 후원을 받아 참석했다. 국제 행사이긴 하지만 북 정부에서 많은 돈을 들여 유치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단체나 정부들이 북한과의 교류 목적을 위해 투자한다고나 할까?

가끔 이들의 북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퀘이커 교도로서 단장 자격으로 온 미국인 제이미는 안내원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나라의 근대사나 현재 북의 입장을 되도록 총괄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온 작곡가는 자기가 속한 종교단체에서 부탁이 있었지만 올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날 밤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라 ‘Korea is One’이라는 곡을 작곡했고, 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단다. 연주회때 그 곡을 들었는데, 무척 아름다운 곡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단원들은 아마도 그리 심각한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마지막 폐막식에서 자기팀이 상을 타면 환호성을 지르고, 다른 팀의 연주시 마음에 들면 부라보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하는 등으로 북쪽의 청중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 전 보다는 북한 청중의 박수라든가 연주에 대한 호응도를 훨씬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촉매가 되어 왔다.

야외무도회와 보름달.
야외무도회와 보름달.임미정

중세에 금지된 화성(和聲)은 악마의 소리

매번 여행시 내가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인생의 대부분을, 북쪽 사람은 뿔이 달렸을 거라던가, 전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광신적인 모습을 가졌을 것이라든가,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전쟁에 미쳐있는 나라, 남쪽출신의 사람만 보면 잡아갈 것이고, 우리 지구가 망하든 말든 핵을 절제 없이 사용할 만큼 무책임한 나라라는 등의 두려움과 불신으로 형제들을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어떤 사회학자가 사회와 역사의 발전을, 음악에서 금지된 화성(和聲)을 하나씩 깨고 받아들이게 되는 방식으로 설명을 했었다. 새로운 화성 하나가 사회 구성원에게 익숙해지기 전엔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이지만 결국 받아들여지고 또 시간이 흘러 다른 화성 하나가 소개되는 발전 과정을 사회의 변화에 빗대어 설명했었다.

중세 유럽에서 음악은 지금과 같은 다양한 소리(화성)를 낼 수가 없었다. 가끔 중세 영화의 수도원에서나 나오는 그런 단조로운 화성뿐이었다. 진동수가 맞아 완전한 음정을 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귀에 지금은 즐겁게 들리는 화성이나 감미로운 선율은 악마의 소리였다.

그들은 악마의 선율이 되는 이유까지 줄줄이 달아 금지시켰고 작곡가들은 절대 그런 진행의 음악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두려움을 깨고 점차 3도나 6도의 화음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곧 자연스럽게 더 다양한 화성으로 발전되어 우리가 지금 듣는 대부분 음악의 근간이 되었다.

나는 일부 화성이나 선율은 절대 쓰면 안된다고 했을 어떤 학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위원회를 소집하고 근엄한 얼굴로 그런 소리는 완전한 음정과 선한 선율진행이 아니므로 그 두 음을 섞어서 쓰면 인간이 악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었을 그런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사용해보자는 주장을 가진 사람들과의 길고 긴 논쟁을 생각해본다. 비단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더라도, 개개인 안에서 느끼는, 그런 소리들이 의미하는 불완전성에 대한 두려움과 해악에 대한 무서움은 어떠했겠는지를 생각해본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두가지에서 갈래된다고 한다. 두려움 아니면 사랑이란다. 나머지 모든 감정은 이 두 가지의 변형이라는데, 내가 북한을 방문하기 전 두려움으로 바라본 그들의 모습과, 만나고 나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그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의 차이점은 정말 극과 극의 모습이다.

예전에 생각했던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상황이나 가치관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해된다. 내가 방북을 계속할수록, 옳은 일을 하겠거니 하셔서 묵묵히 계시던 우리 어머니는 내가 빨갱이나 친북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까 마음 졸이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단어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과거의 단어들이며, 혹시 남아 있다 할지라도 두려움이나 분단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만 잠시 더 살아있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분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인권을 언급해 북은 나쁘다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그분들이 의미하는 상대는 국민이 아닌 체제와 정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과연 북의 체제와 국민들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지 정말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동안 그 쪽 국민들은 학습을 통해 그분들의 정부가 이루어가는 것의 당위성을 공부해왔다. 그분들이 심적으로 그 당위성에 동의했기에, 누구나 붕괴될 것이라고 했던 그 어려운 경제 봉쇄와 자연재해 시기에도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필자(임미정 교수)가 나라길 시작점에 서 있다.
필자(임미정 교수)가 나라길 시작점에 서 있다.
우리가 그 쪽 국민들을 배급을 타는 지극히 수동적인 국민으로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대부분 북의 국민들은 자기 자신을 국가의 정책에 한 배를 탄 주체로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 개개인이 생각하는 주체적 권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나 발언권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자본주의로 수동적으로 영입되지 않고 스스로가 자기네 상황에 맞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듯이 북한도 경제에 있어서나 인권에 있어서나 결국 스스로의 모습을 찾고 변해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하려는 북의 의지를 여러 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은 강대국 사이에서의 생존이라는, 중국과는 또 다른 어려운 행보를 해야 하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의 속도나 방식으로 빨리 나가지는 못 할 것 같다.

진정한 형제애야말로 민족의 이득이다

나는 양쪽의 최고 통치자들이 행하는 정치적 행보가 그들의 몇 년의 정권이나 혹은 자기 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번영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일반인은 속상하지만 알 수 없었던, 넓은 지표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북문제에서의 우위라든가 유리한 점, 체면 등을 생각하는 것은 정권 차원의 시각이다. 그러나 지금 북쪽에서 살아 숨쉬는 이천만의 형제에게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살펴보고, 그 길이 순조롭도록 도와주는 것은 진정한 형제애이고 민족적 차원의 이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취해 잃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일 것이다.

북한에서 돌아온 후 내 머리와 가슴이 합의를 이뤄 일궈낸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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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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