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알리아의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씨앗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등록 2003.05.25 20:17수정 2003.05.2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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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화단에 지난봄부터 다알리아의 싹이 여기저기서 오밀조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촘촘하게 자라면 안 될 것 같아 고구마같은 뿌리를 몇 개 솎아서 화분에도 심고 여기저기 옮겨 심었습니다.


다알리아
다알리아김민수
언제나 꽃 봉우리가 올라올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니 거짓말처럼 꽃대마다 봉우리를 여기저기 종종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작았던 꽃 봉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노란 꽃잎을 내기 시작합니다.

대개는 붉거나 분홍빛 다알리아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란 꽃을 피울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김민수

한 차례 비가 더 오고 나니 성급한 꽃잎들이 먼저 기지개를 폅니다. 마치 모든 꽃잎이 한꺼번에 기지개를 펴면 다알리아의 꽃술이 깜짝 놀랄까봐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 먼저 바깥세상의 바람 맛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세상 나들이를 시작하면 자꾸만 나가자고 조릅니다. 그러면 옛날 어른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콧구멍에 바람 들어가는 맛을 알아 가지고 자꾸만 나가자고 하네."


김민수
다알리아도 그랬나 봅니다. 조금 열린 꽃잎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니 바람 맛을 빨리 보고 싶은지 밤이 막 시작되려는 시간에 나머지 꽃잎들도 수줍은 듯 기지개를 쭉 폈습니다.

"아, 시원해, 세상에 바람 맛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하며 감탄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수줍은 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알리아의 꽃술의 눈에는 하늘의 별님도, 달님도, 햇님도 들어오겠죠.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이리저리 쳐다보는 나도 바라보고 "안녕!" 인사를 하겠지요.


김민수
드디어 활짝 피었습니다.

제가 관찰하던 것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꽃들은 새벽이나 아침에 만개를 하는데 달맞이꽃도 아닌 것이 저녁시간에 맞추어 화들짝 꽃을 피웠습니다.

"어때요?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노란 저의 얼굴이 예쁜가요?" 가만히 다알리아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래 너의 고향은 여기가 아니지만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니 고향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렴."

김민수
그렇게 활짝 피어 몇 날을 화사하게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성 바람에 꽃잎이 물러버렸습니다. 그렇게 다알리아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꽃 주변 여기저기에 새롭게 피어오르는 꽃 몽우리와 꽃들의 행렬은 그의 분신인냥 여기저기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그들이 피어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비록 꽃잎은 짓물러 보기 흉하지만 이제 그 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씨앗이 움틀 걸요. 그 씨앗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우리를 제대로 보는 것이지요."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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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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