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우리 집 늦둥이의 사랑 이야기(1)

등록 2003.05.27 05:23수정 2003.05.2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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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나는 어느 때가 행복한가?


이따금 우리 집 병아리 은빈(초1)이가 '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합니다. '행복하다.' 나는 '행복'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러면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한가?"

여러분은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예배시간에 우리 은빈이가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엄마와 함께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입니다.

은빈이 목청이 커서 찬송소리가 앞에까지 다 들립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다음 피아노 후주가 있을 때 내가, 교인들에게 인사하려고 현관으로 나오지요. 그러면 은빈이가 내게 달려옵니다. 내 손을 잡으려고. 그러면 나는 은빈이와 손을 잡고 교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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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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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가 하는 말이,


"아빠! 결혼식하는 거 있잖아? 결혼식 할 때 신부가 신부 아빠 팔을 붙잡고 가잖아. 지금 내가 미리 아빠랑 결혼식 연습하는 거야."
"그렇구나! 야, 우리 은빈이 똑똑하구나! 그럼 큰오빠한테 예배 마치고 피아노로 찬송가 치지 말고 결혼행진곡 쳐달라고 그러자."


은빈이가 바로 내 앞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공손히 인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은빈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은빈이가 예쁘구나!"
"은빈이는 인사를 참 잘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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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하고 칭찬해주십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조그만 게 자라서 아빠가 어떤 때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알고, 내가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었는데도 주일저녁 수요일 저녁에 꼭 그렇게 합니다.

행복은 내 안에 있습니다. 행복은 작습니다. 소박합니다. 행복은 절대로 거창하고 화려한 게 아닙니다. 은빈이가 내게 행복이 뭔지를 알게 해주고, 또 그 행복을 나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러면서 잠자리에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하루 생활이 만족스러웠던지

"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아빠 사랑해요!"

하고 애교를 떱니다. 분위기 파악에 서툰 쉰 살이 다된 늙은 아빠가

"아 아빠도 행복하다. 은빈아 사랑해!"

하고 받아줄 수밖에! 우리 집 병아리 때문에 내가 삽니다. 그대들은 어느 때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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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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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할머니, 나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어제 우리 집 병아리 은빈이가 할머니 집에 가서 놀다가 뚱딴지같이 할머니 보고 하는 말이

"할머니, 나 좋아하는 남자 생겼어요!"

그러더랍니다.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그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여우같은 은빈이가 뜸을 들이면서 시간을 끄니까 할머니가 몸이 달았습니다.

"은빈아! 어서 말해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할머니만 알고 비밀로 할테니 어서 말해봐!"
"응, 할머니 절대 비밀이야! 할머니, 그런데 있잖아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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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할머니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 괜찮아! 나이 차가 좀 나면 어때. 괜찮아! 몇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응, 한 50살 정도 차이가 나는가 봐."
"뭐라고? 누군데?"
"응, 우리 아빠야!"


은빈이가 할머니를 골탕 먹였습니다. 그 얘길 아내에게 전해 듣고 기분이 좋더군요. 내가 팔불출인가요? 요 앙큼한 것이 할머니를 놀렸어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귀여운 병아리의 애인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니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약 오르지요? 약 오르면 이제라도 딸 하나 낳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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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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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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