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99

등록 2003.05.27 17:56수정 2003.05.27 18:38
0
원고료로 응원
유리는 때로 밤마다 옥지, 구추, 도조를 불러 술자리를 마련하고는 그 자리에서 같이 잠들고는 했다. 오간과 그의 자객들이 달이 뜨지 않는 때를 골라 유리의 침소 근처에 잠복했을 때는 하필 이런 술자리가 한참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쩔까요? 이래서는 오늘밤은 틀린 것 같습니다."


오간은 신중히 생각해 보았지만 이런 일일수록 시간을 끌게되면 결의가 흔들릴 것이고 밖으로 소문이 퍼질 가능성도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어쩌면 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술에 취해 잠이 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도 없을 것이 아니냐? 참고 기다려 보자."

유리는 이런 음모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요란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 이번에는 형님이 던지실 차례입니다."

옥지는 술에 잔뜩 취해 태자라는 말을 잊고 예전처럼 유리를 형님으로 부르고 있었고 유리도 이를 따지지 않고 있었다. 유리는 손에 화살대를 잡고선 술상 앞에 있는 자그만 통에 던졌다. 화살대는 통의 옆면에 맞고선 떨어졌다.


"하하하, 형님 활솜씨는 일품이지만 투호 솜씨는 영 아닙니다. 그럼 제 잔을 받으시겠습니까, 부탁 한가지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술잔은 아까 받았으니 이번에는 네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지."


유리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히죽이며 옥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형님, 태자의 옷을 제가 한번 입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거 어렵지 않은 이야기지! 어서 한번 입어보려무나."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부탁이었겠지만 술에 취한 유리로서는 안될 것이 없었다. 옥지는 약간 작은 듯한 태자의 복색을 갖추고선 으쓱대며 말했다.

"이제 내가 이 나라의 태자이니라! 모두들 내게 술을 한잔씩 바쳐 올리도록 해라!"

"여부가 있겠소이까 태자마마!"

한참을 왁자지껄 즐기던 술자리는 이윽고 모두들 그 자리에서 하나둘씩 자리에 엎어지면서 끝나갔다. 마지막으로 도조가 촛불을 끄고 자리에 눕자 밖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던 오간과 자객들은 때가 왔음을 느끼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니다. 깊게 잠이 들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오간은 좀 더 신중함을 기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 후 자객들에게 명했다.

"들어가서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단칼에 해치워야 한다! 자, 가라!"

자객들은 재빨리 유리의 처소방문까지 다다랐다. 그때 문이 열리며 구추가 술냄새를 풍기며 나왔다. 자객들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 했고 구추는 오줌을 누기 위해 바지춤을 내리려다가 자객들을 보고 역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뭐, 뭐냐?"

자객 중 하나가 칼을 휘둘렀고 구추는 이를 피하려다 문지방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통에 깊게 베이진 않았다. 자객들은 방안으로 뛰어들어왔고 순식간에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자객들은 허둥지둥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오간은 자객들이 자기 쪽으로 뛰어오고 멀리서 순시중인 병사들의 횃불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어찌되었느냐?"

겨우 구석진 곳에서 한숨을 돌린 오간이 뒤따라온 자객들에게 물었다.

"뜻밖의 일이 있긴 했지만 태자는 확실히 해치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