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 더하는 천불천탑 수수께끼

[이철영의 전라도기행7] 운주사 천불천탑

등록 2003.05.28 13:20수정 2003.06.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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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이스터섬에는 '모아이'라고 불리는 550여개의 거대한 인면석상(人面石像)이 있다. '모아이'는 세계적 거석문화 중의 하나로 유명하지만 어떤 필요에 의해서 누가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선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오창석
미완성 석불 좌상과 입상(일명 와불)한분은 앉아 있고 한 분은 서있다.좌상과 입상의 다리 부분에 떼어 내려다 만 흔적이 있으나 주변 어디에서도 이 돌부처의 안치 자리인 대좌를 발견할 수 없어 정말 세우려 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있지 않다.
미완성 석불 좌상과 입상(일명 와불)한분은 앉아 있고 한 분은 서있다.좌상과 입상의 다리 부분에 떼어 내려다 만 흔적이 있으나 주변 어디에서도 이 돌부처의 안치 자리인 대좌를 발견할 수 없어 정말 세우려 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있지 않다.오창석
그렇다 보니 해석도 갖가지여서 우주에서 날아온 어떤 외계 문명인이 세웠다는 등 갖가지 추측이 신비로운 의문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도 이 석상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과 신비로움이 켜켜이 쌓인 유적이 있으니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전남 화순군 도암면의 천불동 계곡에 있는 운주사이다.

이 절의 창건에 얽힌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선국사실록'에 실린 창건설화로 "도선이 중국에서 풍수지리로 명성을 떨치고 돌아온 뒤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고 민물(民物)을 편안하게 하고자 배(船)가 운행하는 형국인 국내 각 지역에 사탑과 불상을 세워 비보진압(裨補鎭壓)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운주사는 우리나라 지형상 배(腹)에 해당하는 지점에 위치함으로 천불천탑을 세워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앞산 중턱에 있는 와불(臥佛)은 이 절을 지으면서 공사를 맡았던 게으른 상좌가 잔꾀를 부리다가 시간을 맞추지 못해 새벽닭이 울어버리는 바람에 2기의 불상을 미처 세우지 못하여 미완의 역사가 되었는데 이 설화에 따르면 그 때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남은 2기의 불상이 바로 현재의 거대한 한 쌍의 와불(臥佛)이고 상좌는 곁을 지키는 시위불(머슴부처)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칠성바위와 석탑. 거대한 원판형의 돌7기가 북두칠성의 배치와 같이 놓여 있고 돌의 크기 또한 별의 밝기와 유사함. 탑을 세우기 위해 깎았다가 세우지 못하였다는 설도 있음.
칠성바위와 석탑. 거대한 원판형의 돌7기가 북두칠성의 배치와 같이 놓여 있고 돌의 크기 또한 별의 밝기와 유사함. 탑을 세우기 위해 깎았다가 세우지 못하였다는 설도 있음.오창석
그런 만큼 건립시기도 분명치 않아 9세기 말-10세기 초(도선 창건설) 외에도 11세기, 12세기 건립설 등 이견이 많다. 누가 지었는가 하는 창건 주체에 대해서도 도선설 외에 통일신라 말 이곳을 지배했던 지방 호족세력, 미륵의 혁명사상에 따라 미륵공동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천민계층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와불을 바닥으로부터 떼어내려다 만 흔적이며 절 안에 봉안하지 않고 계곡과 산등성이에 무리지어 있는 석불, 그리고 많은 석탑들은 너무도 형식이 독특하여 어느 시대 어떤 양식의 흐름 속에 있는지 연관성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처럼 일정한 시대적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유는 대체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된 고려중기 이후 집권세력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세력들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시대적으로 어긋난 감은 있으나 작가 황석영이 그의 소설 '장길산'의 말미에서 관군에 대패한 '길산'이 천민, 노비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장소로 그려낸 것처럼 이곳의 석탑과 불상들은 미완과 파격적 형식으로 말미암아 온갖 상상과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어 있다.


운주사 일대에선 일반 사찰에서 느끼는 엄숙함, 정연함을 찾아 볼 수 없다. 균형이 맞지 않은 눈, 코, 귀, 손, 발은 혹시나 시한에 쫓겨 대충 만들어낸 불량품이 아닐까 하는 불경한 추측이 들만큼 조잡한 구석이 많다.

정상적인 부처님이라면 적어도 일체의 만상을 품에 안은 넉넉하고 인자한 모습이어야 할진대 쪼그라진 옆집 할메나 힘센 놈에게 두들겨 맞아 풀이 죽은 어린아이, 어떤 불상은 압제에 대항해 제몸을 불사른 베트남 승려의 타다 남은 몸뚱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땅속에서 불쑥 솟아올라 머리만 남은 불상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반항하다가 목을 잘린 힘없는 민초의 슬픈 얼굴이거나 아니면, 새 세상의 도래를 기원하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날이 오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망치질을 하던 석공이 결국 원했던 미륵은 실현하지 못하고 눈물에 범벅된 자화상을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석조불감, 호떡탑 등 석탑군.
석조불감, 호떡탑 등 석탑군.오창석
석탑들은 또 어떤가? 다보탑, 석가탑 같은 세련된 모습에 익숙한 우리의 눈엔 정말 우리 조상이나 선인들의 작품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어설프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항아리를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실을 감는 '실패'를 세워 놓은 것 같고, 또 다른 것은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세워 놓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어릴 적에 친구들하고 소꿉장난으로 쌓아 본 그런 유치한 모양들,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서는 예술감각이 결여된 하급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모두 어릴 적 친구 같고 고향에서 지게 지고 농사짓던 우리 아제 같고, 허리 구부러진 우리 할메 같이 친근하고 정겨우니 말이다. 바위 속에는 원래 석탑과 석불이 들어 있다.

결을 따라 돌을 쪼아 내던 석공이 그 안에 숨은 절대적 존재인 부처나 미륵의 힘을 찾다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석불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하다.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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