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세워 놓은 항아리들이 이쁘게 궁둥이을 내밀고 선 처녀들 같다. 호텐토트족 처녀.오창석
9대 째 300여년을 이어 내려온 그의 가업은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의 방식으로 옹기를 만들어 낸다. 그는 아직도 직접 물레를 발로 돌려 그릇을 빚고 약토(부엽토)와 재를 섞은 전통의 유약을 발라 굽는다.
그는 “많이들 전동물레를 쓰지만 발로 돌리면서 완급을 조절해야지 모터로 돌려버리면 원하는 데로 안 나오지요”라고 말한다.
특히 일제시대 박래품이 들어온 때부터 우리의 그릇에는 거의 모두 납산화물이나 망간을 섞어 쓴 '광명단'이라는 번쩍거리는 유약을 바르게 되어 그것의 생명인 '숨구멍'을 막아 버렸는데, 그는 질식해 버린옹기에 새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 놓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옹기에 곡물을 담아 놓으면 신선한 맛이 오래도록 유지되며, 꽃을 꽂아 놓아도 유리나 사기 화병에 비해 몇 배 더 수명이 오래 간다고 한다.
어항 삼아 금붕어를 놓아길러도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은 옹기가 이런 생물들이 나고 자라는 바탕인 흙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백년 이어 내려 온 가업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농공상’을 찾는 봉건적 인습이 엄존한 시대를 산 부친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만은 우대받는‘출세’의 길을 걷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옹기장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부친(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96호, 이옥동 옹, 94년 작고)과 6개월여를 씨름하다가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그에게 옹기 일을 허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