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ta Band 'Hot Shots II'배성록
우선 딱히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포스트록 계열에 넣자니 선명한 멜로디와 유려한 화음이 마음에 걸리고, 로파이 포크 음악으로 분류하기에는 전자 드럼의 잘개 쪼갠 비트가 걸리적거린다. 게다가 음악은 한 곡 내에서도 장르를 왔다갔다 해 정체가 불분명하게 전개된다. 분명 기타 팝의 공식대로 출발한 곡이 이내 각종 이펙트로 뒤덮이고, 어떤 곡에서는 팝송 샘플링과 랩, 구닥다리 로큰롤이 교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반주도 계속 변한다. 드럼-베이스가 리듬을, 기타가 리프만을 맡는 구성은 온데간데 없다. 모든 악기들이 마치 자신이 멜로디 파트인양 쉼없이 변화한다.
아무 장소에서든 첫 곡 'Squares'를 들어 보라. 앉아있던 사람의 반은 "재미없어!"하며 나갈 것이고, 반대로 남아있는 절반의 사람들은 "재밌군!"하며 눈을 반짝일 것이다. 후렴 부분까지는 서걱거리며 신경 거슬리는 소리만 내던 드럼 비트가 이내 돌변해 쿵짝쿵짝대고, 곡이 진행됨에 따라 악기음이 하나둘씩 덧입혀진다. 데뷔 음반에서도 그랬지만 점강법을 즐기는 친구들이다. 배경음에 정신이 팔려 멜로디를 놓치기 쉽상이지만, 실상 이들이 만드는 선율은 매우 유려하다.
신서
두 번째 곡 'Al Sharp' 역시 초기 비치 보이스(Beach Boys)를 연상시키는 환상적 화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신디사이저에 주목해야할지 고민스럽다. 5번 트랙의 'Dragon'은 음반의 전체 이미지를 대변할 만한 곡인데, 신묘한 분위기의 신디사이저 인트로와 갑자기 등장하는 자잘한 싱코페이션의 전자 드럼 비트가 변화무쌍하다. 한 곡 내에서 드럼 음색이 바뀔 뿐 아니라, 피아노도 재지한 간주 전까지는 로큰롤 식의 반주를 하고 앉았다. 이런 주제에 선율은 중기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처럼 차갑고도 명징하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인 음악인가. 그런데 이들의 감성은 구식 싸이키델릭 록의 그것에 가까우며,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느낌이다. 요즘 노래들처럼 뒤통수를 '탁' 치고 '쿵쿵' 두들기는 충격도 없다. 선율이 분명 매끄럽긴 하지만 단박에 귀에 꽂히는 '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곡들이 유유자적 미적미적대다가, 조금씩 이런저런 소리로 살을 붙이고, 청자가 '뭔가 시원하게 탁 터지는 느낌'을 기대할 즈음 허무하게 끝나버리기 일쑤다. 곡 구성에 기승전결이 없고, 시작부터 끝까지 균일하다. 형식은 실험적이되 감성은 구식이며, 팝적인 선율과 기상천외한 음향 실험이 공존하고 있다. "과거의 어떤 천재적 뮤지션이 미래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만들어 놓은 실험적 음반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다 듣고 나니, 영화 속 설정이 조금은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한번 들어서 필이 팍 꽂히는 음악은 아니니까. 오히려 베타 밴드는 여러번 반복해서 듣다가 새삼 놀라게 되는 음악에 가깝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걸 찾아내게 된다.
'최악의 밴드'라는 건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한번에 쏙 들어오는 음악만 찾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랄까. '그런 애들한텐 우리 음악은 최악일게다.' 하는 자신감에 넘쳐있는. 최고의 밴드라고 떠벌이는 '오아시스' 같은 애들보다 어쩌면 '베타 밴드'쪽이 더 건방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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