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의 피눈물이 서려 있는 산하, 백두산

항일유적답사기 (27) - 백두산 (Ⅲ)

등록 2003.05.29 14:00수정 2003.05.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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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비룡폭포의 장관.
백두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비룡폭포의 장관.박도
독립군의 요새

백두산 일대는 구한말 이래 항일 전적지로 독립군 전사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땅이다.


일찍이 구한말 백두산 포수 홍범도 의병대를 시작으로, 1945년 해방까지 숱한 항일 전사들이 일제 침략자들과 맞서 싸운 해방 공간이었다.

이 일대가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지가 된 것은 울창한 삼림으로 유격 전술을 펼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좋았고, 또한 이 부근에는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어서 그들로부터 인적 물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두산 고산화
백두산 고산화박도
뿐만 아니라 이 지대 산악은 개마고원, 낭림산맥으로 이어져 무장투쟁 범위를 국내로 확대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백두산 일대의 항일전적지로 갑산·삼수·봉오동·청산리·무송현 동강·홍두산·마안산·내두산·보천보 등 수많은 밀영들이 당시에는 독립군의 요새나 국내 진격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 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항일무장 투쟁사를 안고 있는 역사의 산으로, 수많은 항일투사를 길러낸 보금자리였다.


그러므로 백두산 일대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위 하나에도 독립 전사들의 피 어린 발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는 항일 유적지다.

하지만 나그네로서 산삼이 묻힌 항일유적 보고(寶庫)를 보고도 자료 부족과 북한 지역은 접근할 수 없는 현실 여건으로 엄두를 낼 수 없어 먼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 산봉우리에서 사방을 조망하면서 망원렌즈로 신묘한 경관을 담고자 했던 나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아쉬운 대로 한 기사의 자동 카메라로 부지런히 담았다.

하지만 직성이 풀리지 않아서 내도록 마음 한편이 언짢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에 올라 천지 일대를 산뜻하게 보았으면 됐지 거기다 무엇을 바라랴.

만일 날씨가 나빠서 이 일대가 비구름에 싸였다면 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산 길에 백두산의 폭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비룡폭포(중국에서는 장백폭포라 함)를 벅찬 마음으로 바라본 후,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에서 천연수로 익혔다는 달걀을 맛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정말 두고 떠나기에 너무나 아쉬운 장엄한 산하였다.

내 언제 다시 조국 땅을 밟고 항일유적지를 둘러보며 이곳에 와서 저 온천수에 세속에 찌든 몸을 닦으랴.

백두산 들머리 마을에는 상가가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산에서 자동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미심쩍어서 갈 길이 바쁘다는 한 기사를 달래서 잠시 차를 세웠다.

기념품 집 아가씨가 무척 반겼다. “어서 오세요.” 상냥한 우리말이었다. ‘남남북녀’라더니 아가씨는 용모가 유난히 깨끔했다. 아가씨는 조선족으로 고향이 함경도 경성이라는데, 산중에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보통 미인이 아니었다.

나는 아가씨가 건네준 사진묶음 중에서 한 세트를 골랐다. 10장 묶음 한 세트가 20원이었다. 한 기사는 그 새 커피 한 잔을 청해 마셨다. 아가씨가 커피 값까지 모두 30원을 달라고 해서 값을 치르고 차에 올랐다.

백두산을 떠나오다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차에서 내려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다.
백두산을 떠나오다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차에서 내려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다.박도
그런데, 곧 아가씨가 얼굴을 붉힌 채 내 뒤를 따라와서 커피 값 10원을 돌려주었다. 한 기사는 자기가 마신 커피 값을 받았다고 몰래 아가씨를 나무란 모양이었다.

운전기사들의 좋지 못한 습성은 중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냥 두라고 해도 아가씨는 거듭 죄송하다면서 승용차 문틈으로 돈을 넣고는 손을 흔들었다.

아가씨의 청순한 모습이 내도록 내 머리에 남았다.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조물주가 만든 삼라만상 중에서 역시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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