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만금 3보1배' 자원활동가"

[현장] 29일 '서울 입성'에 동참한 사람들의 생각과 목소리

등록 2003.05.30 10:35수정 2003.05.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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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
삼보일배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류종수
29일 서울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삼보일배 행렬이 본격적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선을 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바로 남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진 대행렬을 목격해야했던 많은 서울시민들의 마음을 두고 하는 말.

남대문 시장에 장보러 나온 시민, 점포와 노상에서 장사하는 사람,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들 모두 끝없이 이어진 행렬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눠준 유인물을 받아든 시민들은 꼼꼼히 읽기도 하고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렌즈에 담기도 했다.

"삼보일배 행렬을 보고는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서 지켜보고 있다"는 한 시민은 "환경운동에 이렇게 종교계가 참여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면서 "8월이면 이민을 가는데 사진기가 없어서 이 모습을 찍지 못하니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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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출발하는 삼보일배 행렬
서울역을 출발하는 삼보일배 행렬류종수
이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날 동안 '고행의 길' 옆에서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붉은 색 지휘봉을 들고 행렬을 인솔하는 사람, 물이며 물수건을 나눠주는 사람, 유인물을 전달하는 사람. 이 모두가 순례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행렬의 선두에서 진행대장을 맡은 한 남자가 눈에 띈다. 하루 두 번 "온 세상에 생명은 하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시작하겠습니다"며 오전, 오후의 출발을 알리는 녹색연합 박인영 간사가 바로 그다.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그의 임무가 더 커지고 있다.

박씨는 먼저 "오늘은 동원된 경찰이 채 10명도 안돼 대열이 큰 도로를 행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어쨌든 교통흐름을 조금 막을 수도 있는 삼보일배로 인해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해 번잡한 도심이 그에게 버겁게 다가온다는 인상을 주었다.


새만금 사업 중단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도 들을 수 있었다.

"새만금 사업은 이제 모든 목적이 상실됐다. 오직 자본의 논리나, 농업기반공사와 같은 조직 이기주의만 남았을 뿐이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삶, 그래서 양보와 이해의 미덕을 잃어 가는 이런 삶을 반성하고 자연의 넉넉함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삼보일배 진행대장 박인영씨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삼보일배 진행대장 박인영씨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류종수
방조제가 완공되면 갯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 심정이다. 이 사업에 대한 찬반 논쟁은 무의미하다. 이제 정부가 결단을 내려서 공사를 중단시키고 전라북도의 발전을 찾겠다는 대 국민 설득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이것이 새만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론분열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선두에 박인영씨가 있다면 대열의 끝에는 18살의 이정준군이 인솔봉을 들고 늘어지는 대열을 이끌고 있었다.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이군은 '부안성당 신자'라면서 '삼보일배에는 천안에서부터 동참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간이 자신에게는 곧 공부'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특별한 각오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들과 같이 할 수 있다면 배울 것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대해서도, 새만금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과 서로간의 절박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보고 느끼는 이 모든 게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걸어가면서 다 배우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길 위에서 난 공부한다"

녹색대학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진행요원은 아니지만 삼보일배에 동참하면서 '세상보기' 프로그램이라는 학교 수업을 대체하고 있다는 백선희(여, 20세)씨.

그는 서울의 탁한 공기가 너무 '인상적이다'고 했다.

"함양에서 시원한 공기만 마시다가 서울에 오니까 가슴이 '탁'하고 막히는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오는 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다 칼칼하다. 냄새도 지독한데 한 번은 구수한 빵 냄새와 매연 냄새가 뒤섞여서 참 이상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밤에도 후덥지근한 게 참 답답한 도시다."

새만금 사업 자체가 그녀에게는 서울의 이 탁한 공기처럼 가슴 막히는 사태인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송푸름군
아버지와 함께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송푸름군류종수
이날 행진에서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아버지와 함께 나온 송푸름(10세)군이었다. 송군은 짧은 다리로 삼보가 아닌 오보를 걸으며 한 번도 빠짐없이 일배를 올렸다.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왔다"는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게 이어져 동참하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아버지를 따라 온 것이지만 "새만금 자연을 살리려고 왔다", "갯벌의 동식물이 다 죽게 해선 안 된다"는 당찬 대답을 이어갔다.

아버지 송성조(42세)씨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항상 예수님의 길이 어딘가 생각해왔다"면서 "생명을 살리셨던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종교의 벽도 허무는 삼보일배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티토씨도 이날 삼보일배에 동참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티토씨도 이날 삼보일배에 동참했다.류종수
행렬이 잠깐 잠깐 쉴 때마다 참가자들에게 연신 물병을 날라주던 천성태(40)씨도 삼보일배 못잖은 고행을 하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던 그를 오늘의 종착지인 명동성당에 도착해서야 만날 수 있었다.

"도시로 들어오고 나서 더 힘들어져야 하는 우리를 보니까 이것이 인간이 살아온 자업자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는 물도 가져다주고 했는데 서울은 간혹 교통을 막는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중간 지점부터 동참했는데 제일 문제라고 느끼는 것은 언론이 새만금 실상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는 점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새만금 사업이 왜 문제이고 삼보일배를 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도록 진실 되게 보도 해줬으면 한다"


그는 덧붙여 "이 삼보일배도 4분의 성직자가 행하신 마지막 선택인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이 다음에 또 어떤 길을 선택하실 건지 걱정이다"는 안타까운 심정도 전했다.

혼잡한 도심을 벗어나 3시 40분 경에 모든 참가자가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이날 특히 많이 참석한 조계사 신도들은 수고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문규현 신부를 앞에 세우고 팔로 ♡모양을 만들어 "신부님 사랑해요"를 외쳤다. 문 신부도 말은 없지만 두 팔로 화답했다. 삼보일배는 이렇게 종교의 벽도 뛰어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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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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