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뗄 수 없었던 '도깨비 난장'

[관전기] 관객들과 함께 한 7시간 여행 속으로 떠나자

등록 2003.06.01 14:00수정 2003.06.03 10:14
0
원고료로 응원
a

ⓒ 김진석

사람의 형상을 한 도깨비들이 모여든다. 마임, 무용, 영상, 퍼포먼스, 음악, 문학에서 굿까지 각기 다른 재능과 놀이를 가진 도깨비들이 의암호에 떠 있는 고슴도치섬(위도)에서 만나고 있다.

98년부터 시작된 도깨비 난장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춘전 마임의 '꽃'으로 피어났다. 무박 2일(5월31일 22:00 - 6월 1일 5:00) 동안 벌어진 도깨비 난장은 '예술과 낭만의 제의'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신들린 굿판이었다.



관련
기사
- "잠시 후 청량리발 난장행 열차가 출발합니다"

올해의 난장은 '빛과 움직임'이라는 주제 아래 처음으로 영상을 활용하며 공연의 실험성을 더 배가시켰다. 대략 2만명 남짓의 관객이 참가한 이번 도깨비 난장은 국내 18개 팀이 관객과 소통하며 큰 사고 없이 성황리에 마쳤다.

춘천 마임에 세 번째 참여하고 있는 한금순(76) 할머니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을 뿐이다. 우리 땐 저런 게 없었는데 나도 저들처럼 젊었을 때 놀아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나이 먹은 게 억울하다" 고 말씀하셨다. 그밖에 다른 모든 분들도 "재미있고 짜릿하다. 만약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또 참가하고 싶다"며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공연팀장 박지선(31)씨는 "대작은 없어도 예년에 비해 공연과 관객의 수가 두 배로 늘었다"며 "틈틈이 소규모의 게릴라 공연을 많이 준비 했기에 관객들은 어느 해보다도 풍성한 볼거리를 즐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런 구속 없이 다양한 문화를 맛보며 풍성한 자연 속에서 일탈할 수 있는 것'을 도깨비 난장의 가장 큰 매력으로 뽑았다. 덧붙여 "난장을 찾는 분들은 대부분 한 번 참가한 분들이 다시 또 방문한 관객들이다. 진정으로 축제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 함께 하기에 아직까지 큰 싸움이나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난장 관객들의 수준 높은 관람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반면 '빛과 움직임'이라는 기획 아래 올해 처음 시도한 영상 공연에 대해 "원래는 스크린을 하늘에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기술적 위험이 있어 정면에 달았다"며 그녀는 "생각보다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진 것 같아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a

ⓒ 김진석

대학교 이벤트학과 수업의 일환으로 단체 관람온 최유림(22)양은 '음향의 부실함'을 따끔히 꼬집었다. 홍정은(21)양은 "작년보다 관객들의 호응이 덜해 아쉽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며 "여름 밤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너무 추워 중간에 포기하고 갈 뻔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가족과 함께 온 민병철(44)씨 또한 "겨울옷을 준비하라는 말을 솔직히 믿지 않았는데 정말 춥다. 가족 단위로 오는 분들이 많을 텐데 실제로 와보니 같이 모여 쉴 곳이 부족해서 아쉽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난장에 와 보니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다. 기회가 되면 내년에도 또 참가하고 싶다"며 난장의 발전을 기원했다.


연인과 함께 참가한 홍샘(22)양은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춘천에 살아 오래 전부터 소문은 들었지만 이리 큰 행사인 줄 몰랐다"며 "처음엔 마임이 어려운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고 전했다.

반면 그는 "공연 사이에 나오는 실험적인 영상이 길고 지루하다.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다"며 "영상에 대한 설명을 중간에 첨가했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춘천의 명물 소설가 이외수(57)씨는 도깨비 난장을 "몸값을 파는 이 시대에 혼값을 따지는 젊음이 모여 있는 곳이다"라고 소개하며 젊음을 "삶의 중심이자 인생의 핵심이다"라고 정의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15번째 열리고 있는 춘천 마임에 대한 관의 무관심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a

ⓒ 김진석

<서울 현대 무용단>의 '세일즈맨 바다로 가다'라는 작품과 만났다. 우수 어린 피아졸라의 탱고 선율과 한 서린 탐 웨이츠의 갈라진 목소리에 잠시 넋을 잃을 뻔했다. 이제야 간신히 떨쳐 버리고 왔나 싶었건만 남루하고 지릴멸렬한 일상이 고슴도치 섬까지 쫓아 왔나보다. 섬에서 마주한 우울한 자화상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무의미한 일상에 단호히 마침표를 찍겠노라 오늘도 다짐하지만 결국 내일도 제 자리를 맴돌고 있다. 흡사 아무리 고개를 돌려버리려 해도 연신 공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처럼.

지루한 세상을 힘껏 차 버리고 날아볼까? 그는 과연 바다에 갈 수 있을까...

a

ⓒ 김진석

2002월드컵의 열기를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가 재현하고 있다. 스포츠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세상사가 어디 마음 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인가. 어처구니 없는 우연들이 모여 값진 인생이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을 따라 무작정 달려가는 선수들처럼 우리도 정답 없는 인생 길을 정신 없이 달린다. 인생은 생방송이다. 온갖 반칙이 횡행하는 정글. 그 어느 것도 감히 상상하지 말라. 소림 축구는 주성치만의 전유물이 아닐지니.

a

ⓒ 김진석

밴드명 <퍼플 매직 재즈 오케스트라>가 무형의 즉흥 연주를 펼치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울리는 묘한 화음이 '다름의 공존' 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악기가 각자의 음역을 존중하며 '음악'을 뽑아내는 것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며 '사회' 를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단 한 번뿐인 짧은 인생 서로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하다. 어느새 제 각각의 사람들이 콧 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수를 친다. 세상에서 가장 신명나는 악기가 모두의 가슴 속에 울려퍼지고 있다.

a

ⓒ 김진석

얼마나 기다렸던고. 도깨비 난장의 단골 손님 <어어부 프로젝트> 를 보기 위한 신도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고기를 잡는 사람' 과 '고기의 아버지'라는 의미가 합성된 어어부 밴드는 모든 규율과 고정관념을 비웃기 위해 존재하는 밴드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로 정성스레 노래하는 어어부를 형용할 단어는 없다.

"정상 그게 뭔데?"

그가 집요하게 딴지를 건다. 그를 보니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열렬히 미쳐버리고 싶다.

a

ⓒ 김진석

"우와 미치겠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즉흥인 거야?"

"정말 잘한다. 진짜 잘하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엄마야!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관객들의 수근거림과 폭소가 끊이질 않는다. 난장 공연 중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케치(케이수케 우치다)와 히로폰(히로시 요시마)의 '가말초바쇼(Gamarjobat Show)'는 판토마임, 저글링, 마술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처음 보는 옆 사람의 얼굴을 보며 배꼽 잡고 웃었다. 웃음병이 온 관객에게 전염되었다. 생판 낯선 사람과도 같이 손뼉 치며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a

ⓒ 김진석

무아지경! 환호작약!

미치고 싶은, 목이 터져라 노래 하고 싶은, 심장이 터질 듯 방방 뛰고 싶은 잠 못드는 도깨비들아 우리 같이 놀자. 네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내 모습에서 너를 보렴. 지랄맞게 흔들고 방정맞게 노래해 보자. 온 몸이 심장이 돼버리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까만 밤을 새하얗게 태워 버리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