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진
이에 반해 지은이는 사십대의 아주 젊은 작가이면서도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를 써서 맛이 전혀 색다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임에도, 이 동화는 너무 슬프거나 어둡지 않고 오히려 밝고 희망적이다. 구성이나 내용 전개 또한 그리 복잡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러니 요즘 어린이들도 얼마든지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고,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싶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의 특유한 맛깔이 잘 살아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정겨움을 주고 절로 웃음을 머금게도 만든다.
국화의 아빠는 징용으로 끌려가신 뒤 감감무소식이고, 그 뒤 엄마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해서, 아무런 형제 하나 없는 국화는 외할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맡겨진다. 하지만, 그 집도 식구가 여럿인 데다가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는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화를 멀리 부잣집 수양딸로 보내버린다. 말은 수양딸이지만, 수양딸을 데려오면 삼신할미가 시기하여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믿음 때문에 데려왔기에 사실상 부엌데기 노릇이나 해야했다.
국화가 수양딸로 들어간 '기와집'은 두메 산골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집은 호랑이 같이 무서운 할머니와, 말이 없고 창백한 양어머니 외엔 아무도 없어 풍경소리만 들리는 몹시 을씨년스런 집이었다.
게다가 집 앞에는 대나무 숲까지 있었다. 이 낯설고 무섭기까지 한 집에서, 국화는 부엌데기 노릇을 하면서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린다. 다행히 양어머니가 점차 국화에게 마음을 열면서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바우 같은 동네 친구를 만나 그런 대로 낯선 곳에서도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었다. 마음씨 착하고 꿋꿋한 국화였기에 어려운 곤경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결말에 이르러 꿈에도 그리던 해방이 된 뒤, 난데없이 학도병으로 끌려간 기와집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조용했던 기와집에는 일대파란이 일었다. 결국 양어머니는 서울 친정으로 떠났고, 호랑이 할머니는 중풍으로 몸져누워 하나부터 열까지 국화의 병 수발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국화만을 완전히 의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집안의 광 열쇠까지 넘겨준다. 작가는 그걸 통해서 사고무친 국화의 희망을 슬쩍 말해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쉽게 물질로 희망을 말하려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인물설정이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다. 호랑이 할머니, 말없고 수척한 양어머니, 호들갑 떠는 과수원댁, 앞잡이 갑성이....등등. 특히 양어머니의 경우에는 신식교육을 받은 서울여자라고 했으면서도, 남편을 기다리면서 잠이 안 오면 방바닥에 엽전을 굴리는 것으로 나와(전전반측輾轉反側?) 조금 어색하고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았다. 양어머니는 신식여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다소곳이 남편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전통적인 현모양처상에 더 어울릴 법한 여자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편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 같이 잔잔하면서도 정갈하게 펼쳐지고 있어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또한 식민지 시대를 거쳐온 조선 민초들의 정서를 잘 살려 낸 점도 이 동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비록 눈에 띄는 몇몇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이 작품은 일제 식민지 시대가 반드시 당시를 경험한 기성 작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젊은 작가들도 얼마든지 그 시대를 그려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국화
김정희 지음, 우종택 그림,
사계절,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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