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서영석 칼럼] 임기 첫 해 초반질주론 주장의 허구

등록 2003.06.08 09:00수정 2003.06.10 11:36
0
원고료로 응원
참여정부 출범 100일만에 정권이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곧바로 임기 첫 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정치학 원론을 끌어다가 제대로 좀 해보라는 질타로 연결된다.

어떤 이는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이 후임자들에게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권 첫 해에 쏟아부으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집권당이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대통령이 자기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집권 첫 해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얘기처럼 보인다. 원론은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린든 존슨도 2003년 이 나라에서 소수당인 민주당의 지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그래서 당선된 이후 여론을 독점한 수구언론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더라도 그런 얘기를 했을까 의심스럽다.

린든 존슨 시절처럼 기득권을 지키려는 언론들이 미국의 여론을 독점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린든 존슨 시절처럼 의회의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은 부여하는 조건에 있다면 그런 얘기는 맞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나라의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은커녕 수구언론과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를 전부로 착각하고 자체 개혁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역시 퇴장돼야 마땅할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당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을 위한 의회의 뒷받침이 전무한 이런 의회적 구조에서 참여정부가 집권 첫해 개혁프로그램을 가동시킨다면, 이들은 사활을 걸고 반대할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이해가 걸려 있는 수구언론과 기득권세력들은 쌍수를 들고 혼란으로 나라를 몰아갈 것이 뻔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참여정부는 기본적으로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력의 해체에 대한 욕구에서 탄생한 것이다. 작금의 혼란의 원인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국민들은 개혁열망을 담아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러한 개혁열망의 구체적인 실현은 곧 수구기득권층의 기득권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도 내년 총선이 수구기득권세력들에 대한 민의의 심판의 장이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 1년의 시간 안에 확실하게 참여정부를, 노무현 대통령을 길들여 놓지 않으면, 혹시라도 길들이기에 실패하면 개혁열망 자체에 염증을 불러일으켜서 차기 총선에서 개혁의회가 탄생하는 것을 저지하기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허니문기간도, 탐색전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흠집내기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정권에 대한 성급한 평가, 낡은 패러다임의 청산 의지에서 오는 갈등, 이로 인한 혼란 등이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 모를리 없다. 하지만 다소 혼란이 온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핵심세력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우리 협조 없이 나라 운영이 될 것 같으냐”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것 봤느냐” “일단 의혹제기부터 하면 정권이 불리하지 우리가 불리할 것 같으냐”라며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을 위해 기득권 포기를 먼저 선언한 노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더 권력에 가깝다는 것이 현실이다. 의회의 한나라당-수구언론-오피니언 리더-소수의 기득권세력으로 이뤄진 이 집단은 현단계 우리 사회에서 청와대를 능가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일지도 모른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개혁은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타성에 젖어있는 관료집단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과, 그리고 온갖 흔들기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인 이 나라의 경제와 안보(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이든, 아니면 기득권과의 타협이든 그것은 내년 총선결과를 보면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기득권집단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임기 첫해 정기국회에 나름대로 집권프로젝트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빨리 자신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란 경고의 의미가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들에게 사기칠 수 있는 개혁이면 얼마든지 협조하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란 각오로 일해야 한다. 올 한해는 최소한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 상황만 유지하면 된다. 돈은 사회에 넘쳐나는데 투자가 아닌 투기로 몰리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누가 다수당을 이룰 것인가 하는 전망만 전파되기 시작하면 경제는 살아날 수 있다. 정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이냐, 기득권과의 타협이냐. 그것은 내년총선에 달려 있다. 국민이 개혁을 열망한다면 개혁의회가 탄생할 것이요,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개혁드라이브-비록 가능성에 불과하지만-에 불안을 느낀다면 다른 의회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설사 개혁의회가 못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지금의 한나라당이나, 본질면에서는 그다지 다를 게 없는 민주당 구주류와 같은 사람들이 의회에 진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 있는 개혁이든, 점진적인 개혁이든 개혁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입법적 환경이 구현되는 내년 총선 이후부터 하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임기를 4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구기득권세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 4년이란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 이후 5년도 개혁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은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폭염에도 에어컨 타령이 없는 독일 폭염에도 에어컨 타령이 없는 독일
  2. 2 런던도 난리났다... 30분 줄 서서 먹는 한식의 정체 런던도 난리났다... 30분 줄 서서 먹는 한식의 정체
  3. 3 잘 나가는 행담도휴게소, 우리가 몰랐던 100년의 진실 잘 나가는 행담도휴게소, 우리가 몰랐던 100년의 진실
  4. 4 룸살롱 다녀온 택시 손님의 말... 우리 가족은 분노했다 룸살롱 다녀온 택시 손님의 말... 우리 가족은 분노했다
  5. 5 "이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봤다" "이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봤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