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여름 최루탄 마시며 독재타도 외쳤는데"

7일 시청 앞 광장 ‘6월 난장-오 피스 코리아(Oh! peace corea)’

등록 2003.06.08 09:45수정 2003.06.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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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한겨레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6월 난장-오 피스 코리아(Oh! peace corea)’가 7일 시청 앞 광장에서 8시간 동안 열렸다. 87년 6월 항쟁과 2002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번 축제에는 ‘6월, 평화와 미래 콘서트’를 비롯하여 각종 부대 행사들이 펼쳐져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6월 난장- 오 피스 코리아’는 지난 월드컵 당시 뜨거웠던 응원 열기와 6월 항쟁의 시위 모습을 담은 차량 퍼포먼스로 시작했다.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응원모습이 재현된 후, 87년과 마찬가지로 ‘호헌철폐’와 ‘독재타도’의 구호소리와 함께 전단지가 뿌려졌다.


화가 임옥상씨의 평화 조형물 ‘풍경(風磬)’은 2000개의 풍경에 시민들의 소원을 적은 후, 이를 거대한 나무형상 조형물에 묶어 일으켜 세우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어둠이 깔리고 환한 불빛을 내는 풍경은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효순아, 미선아, 지금 보고 있니?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줄게요.’
‘자유! 너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니. No war.'

고 박종철 열사부터 미선이 효순이까지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현수막에는 시민들이 직접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고사리 손으로 그린 어린 아이들의 그림부터 60대 할아버지의 정성스런 글까지 각자 형식은 달랐지만 모두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였다.

김진석
부대 행사로 진행된 사진전 ‘기억 속에서 날아오르다’는 6월 항쟁의 모습을 담은 ‘역사 속으로’와 이라크 사진전 ‘Save the Children'으로 나눠 진행됐다.

젊은이들의 참여를 유도한 행사도 눈에 띄었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 인디밴드들의 공연 ‘열린 무대 난장’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로 인라인 스케이트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는 ‘6월을 달려라’가 진행됐다.


한편 무대 뒤편에서는 원탁토론 아카데미 주최로 제 1회 원탁토론 한겨레 만민광장 ‘노무현 정부 잘하고 있나? 잘할 수 있을까?’가 열렸다. 토론자로 나선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과),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과), 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 정대화 교수(상지대 정치학), 정해옥씨(전교조 수석부위원장)가 3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의 마지막 행사는 ‘6월, 평화와 미래 콘서트’가 장식했다. 전인권, ‘노찾사’, 안치환씨 등과 87년 고 이한열 열사 장례식 이후 15년 만에 무대에 서는 이애주 교수의 공연은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아버지 백기완 씨, 문익환 목사,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교황 등은 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날이 오면’의 작곡가 문승현 씨가 작곡한 ‘백년 후에는’을 콘서트 전 출연진과 객석에서 나온 아이들이 함께 부르며 ‘6월 난장-오 피스 코리아’의 첫날이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에는 특히 젊은층보다는 가족단위의 3,40대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김진석
축제에 두 아이들과 함께 나온 이창일(40)씨는 “87년 당시에도 시청에 있었다”며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지만 나름대로 보면서 느낀다면 성장한 후에도 과거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데리고 나왔다”고 밝혔다.

역시 가족과 나온 유효식(36)씨는 “87년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시청에 있었다”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행사에 참가한 소감을 밝혔다. 또한 “87년 여름 내내 독재타도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다녔는데 그것이 벌써 지난 역사로 불릴 정도로 세월이 흘렀는지 새삼스럽다”며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또 다른 참가자 김학준 씨(36)는 “지금도 기억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 사람들에게 6월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때는 투쟁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열정과 화합의 공간”이라며 시청 앞 광장의 의미를 설명했다.

"시국이 또 한번 내 자신의 몸짓으로 나타날 때.."
15년 만에 무대에 선 '춤꾼' 이애주 교수

ⓒ김진석

이날 행사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15년 만에 무대에 선 이애주 교수의 공연이었다. 87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애주 교수는 공연을 마친 후 “좀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며 짧게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공연을 하기 전 이애주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어땠는지

그동안 이렇게 큰판에서 춤을 출 수 있는 판이 없었다. 지금은 모든 시국이 또 한번 내 자신의 몸짓으로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작년 월드컵은 정말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전 세계가 동그란 공 하나로 하나 되는 축제였다. 한편 지난 6.10 항쟁은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시대정신이 베어 있다. 이런 보편적인 축제로 인해 우리 가슴에 담아놓은 것을 터뜨려야 한다. 기본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역사를 바로 세우고 각자가 몸짓을 할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87년과 비교해 2003년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많이 달라져서 민주화 됐고, 참여정부도 들어섰다. 겉으로는 이런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본질적인 내면은 아직 부족하다. 중심을 세우고 내면적인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많이 부족하다. 서양 의존적이고 여전히 식민 문화가 남아있다.

예전에 독재타도를 외칠 때는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어 독재를 몰아냈다. 누구나 참여를 했지만 지금은 제각각의 목소리가 다르다. 구심점이 없다. 월드컵으로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집중하는데, 그 집중이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비추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대통령 취임식 때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문화 예술적인 부분에서 ‘오솔레미오(이탈리아의 나폴리민요)’가 등장했다. 그 중요한 순간에 우리의 목소리가 나왔어야 했다. 그건 아니다. 자괴감이 들었고 창피했다.

문화의 첫발을 내딛는 취임식에서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미선이 효순이 사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굴욕적인 대미외교까지 지금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직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역행하고 있다.

-이번 행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87년의 그런 마음으로 똑같이 서는 것 같다. 그때와 같은 몸짓이 필요하다.

-공연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방금 언급한 그런 문제점들, 굴욕적인 대미외교, 식민지문화 그러면서 자존심을 내버리는 악을 제거하고 새 판을 정리시키는 평화의 열망을 꽃춤으로 표현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3,40대가 많이 참여했다. 젊은 세대의 참여가 부족한 것 같은데

빠른 비트와 리듬만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전 세대는 어땠나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한국에서의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당연히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것 아닌가? 젊은이들은 잘 몰라도 일단 참여를 하고 월드컵 때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기성세대 역시 반성과 노력을 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87년 당시 이애주 교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우선 걱정이 앞선다. 그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과 감격을 가지고 있다. 당시 제대로 해보자고 하나로 뭉쳤던 행동과 마음을 늦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 노유미

평화는 내가 내 몸으로 부딪혔을 때 이룩할 수 있다는 메시지
평화 조형물 '풍경'

▲ 임옥상씨와 시민이 함께 만든 평화 조형물 '풍경'
ⓒ김진석

커다란 나무모양의 조형물에 매달린 2000개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그 의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기를’, ‘엄마 아빠 사랑해요.', '평화를 원해요‘ 등 시민들은 풍경에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평화 조형물 ’풍경‘의 주인공 임옥상 씨는 “시청 앞에 설치된 조형물 가운데 아마도 가장 크고 웅장할 것이다”고 자부하며 ”대중공공영역에서의 작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화 조형물 ‘풍경’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절간의 풍경 소리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풍경은 바람이 불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런 풍경소리를 시민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작은 것이 모여 큰 뜻이 되는 그런 마음으로 한다면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풍경은 2000개 정도 준비했고 그동안 시청 앞에 설치된 조형물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한 조형물이라고 자부한다.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생각보다 웅장하고 시민들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민주화가 된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아직도 과정일 뿐 민주주의 달성은 바로 우리 국민의 몫이다. 국민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한다면 실현될 것이다.

-혹시 임옥상 씨 자신도 풍경에 소원을 적어 매달았는지

당연하다. 저기 맨 꼭대기에 보면 내 것이 있다. 평화는 내가 내 몸으로 부딪혔을 때 이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 노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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