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현장] '6월 난장 - 오! 피스 코리아'

등록 2003.06.08 09:45수정 2003.06.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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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넥타이를 풀고 오세요. 87년 6월의 그 시청 앞으로.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그 기억 속으로 모입시다!"

7일(토) 시청앞 광장에서 6월 항쟁 16주년과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국민 축제 '6월난장 - OH! PEACE COREA' 가 열렸다. 민주화 운동기념 사업회가 주최하는 '6월 난장' 은 민주화를 외쳤던 국민의 열정과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광장 문화를 창조, 확장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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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여름 내내 독재타도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다녔는데.."

이번 난장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6월, 평화와 미래 콘서트'는 8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던 공연자들과 700명 남짓의 관객들이 소통하며 그 자유로운 난장의 축제를 펼쳐보였다.


시인 김정환씨와 작곡가 문승현씨가 공동 연출한 이 공연은 '행진' 의 전인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안치환, '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윤선애, '사계'의 노찾사 등의 음악가들이 참여하며 87년 뜨거웠던 민중의 함성을 재현했다.

더불어 87년 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상처투성이의 역사를 연출한 무용가 이애주씨가 15년만에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 87년의 6월을 또 한번 승화시켰다.

'그날이 오면', '사계' 등의 주옥같은 음악으로 80년대 한을 풀어주었던 작곡가 문승현씨가 발표한 신곡 '백년 후에는'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이번 난장은 평화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며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김진석
1980년대 노동 현장을 춤으로 누볐던 춤패 불림의 2인 안무가 절정을 향해 간다. 각기 다른 둘이 따로 또 같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하나가 일으켜 세우며 같은 곳을 동시에 바라보는 또 다른 하나가 된다.

정확히 그들이 무얼 말하는지는 몰라도 사람은 역시 다른 사람과 같이 어울려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음을 넌지시 알 것도 같다. 서로 등을 기대고 서있는 한자 '人' 의 의미를 새삼 되씹어 본다.


김진석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리들"
-노래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관객들의 박수에 자유를 부르짖는 안치환의 노래가 녹아 들어간다. 어느새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최류탄의 매운 내음에 가슴 시렸던 광장. 소리 소문 없이 오열을 토하며 사라진 청춘의 넋들이 깨어난다. 해가 멀쩡히 내리 쬐는 날일 수록 똑바로 바라보기 싫었던 꽃 같은 세상. 이젠 새까맣게 타버린 한숨 대신 투명한 희망을 노래한다. 밤하늘을 유랑하는 반쯤 이지러진 달이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으로 서서히 채워지려 한다.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은 분명 꽃 보다 아름답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 간절한 찬란함에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김진석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행진) 행진(행진) 행진(행진) 하는 거야 행진(행진) 행진(행진) 행진(행진) 하는 거야 "
-노래 <행진> 중에서


엄하고 점잖기만 했던 우리 엄마 아빠가 가수를 따라 노래하며 흥에 겨워 방방 뛴다. 생전 남 앞에서 노래라는 걸 해 본적이 없는 내 남편이 혹은 내 아내가 있는 힘껏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열광하는 부모님을 난생 처음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평화'가 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한숨일랑 쉬지 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노래 <사노라면> 중에서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새파란 젊음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청춘은 안다. 전인권의 노랫말처럼 반드시 내일의 해가 뜰 것 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슴을 쫙피고 상처와 마주했던 6월의 청춘이 있었기에 이토록 신명나는 오늘을 소유할 수 있음을.

김진석
전경이 없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떠들며 노래할 수 있는 광활한 광장을 꿈꿨다. 군화 소리와 검붉은 비에 젖는 광장을 보며 시퍼런 태풍이 몰아 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며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칡흙 같은 어둠을 지새며 복받쳐 울부짖었던 그 노래들을 이젠 드넓은 광장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노래한다.

쓰라린 가슴을 서로 부둥켜안으며 같이 노래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 둔탁한 군화 발자욱에 가슴 조리며 안으로만 사묻치게 불러야 했던 그 노래들을 친구들과 다시 한번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르고 싶다. 광장이 떠나도록. 먼저 떠난 원혼들의 한이 풀릴 때까지.

김진석
15년 전 시청 앞 광장에서 故 이한열 열사 장례식때 춤을 췄던 이애주씨가 다시 시청 앞 광장에 그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87년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춤에 담았던 이애주씨는 '전율의 미학화' 로 그 시대의 한을 응축, 폭발시켰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은 생경스러울거라 으레 짐작했지만 그녀의 신들린 춤사위에 자꾸만 빠져들어 간다. 그녀의 춤을 담기엔 그 넓은 무대마저도 비좁다. 날선 칼날의 섬뜩함이 느껴지다가도 난의 고혹함이 서린다. 도무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원통한 넋들이 그녀의 춤사위를 보며 부디 고이 잠들 수 있기를.

김진석
80년대의 작은 영웅들. 예의 그 순수함을 간직한 노찾사가 메마른 서울 밤에 청량한 습기를 선사한다. 도대체 노래를 하는지, 말을 쏟아 붓는지 강한 비트와 요란한 악기 소리에 좀처럼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요즘. 언제부턴가 '빠름'이 최상의 미덕이 돼버린 시대에 노래 가사는 그 의미를 잃어간다.

동전만 넣으면 노래방이든 오락실이든 가사가 줄줄 흘러나오는 시대에 구태여 노래 가사를 다 외워 부른다는 건 일종의 사치일런지도 모르겠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네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중에서


그들의 노랫말이 정확히 들려오며 가슴속에 올올히 박힌다. 어느 덧 관객과 공연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모두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천천히 노래하고 있다.

김진석
6월 민주 항쟁의 치열했던 젊음이 아니 그 이전부터 민주 공동체를 꿈꿔왔던 젊음이 모여 빨간 두건에 마냥 좋아하는 새파란 동심과 어울리고 있다. 각자 다른 우리가 모여 서로를 인정하며 사랑하는 세상을 꿈꾼다. 세대와 세대가 서로를 존중하며 성별과 개성을 뛰어 넘어 6월 평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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