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 촉구 평화 대행진 가두 모습.이오용
산업연수생 등의 자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소장 이철승 목사)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해외투자법인 기술연수생’, ‘산업연수생’신분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베어링을 생산하는 창원 ㄱ사에 해외투자법인 기술연수생으로 취업중인 중국인 류모(32)씨는 지난 1년 동안의 끔찍한 ‘현대판 노예생활’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류씨는 “1년간 하루 19시간을 일한 적도 있으나 회사측은 생활비 조로 매월 5만원을 지급해 처절하게 궁핍한 생활을 했다”며 “그러나 회사는 월급 잔액을 자신 명의의 통장에 넣어 관리해준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 지금까지 입금 통장을 보여주거나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처리한 사실 등을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류씨와 함께 일하는 중국인 동료는 회사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으며 지난해는 8개월간 외출이 금지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인 김해 ㅂ사에서 일하는 중국인 고모(45)씨는 2001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6개월간 하루 8시간 기준 최저임금(1만6800원)에 턱없이 못미치는 1만1500원을 받고 일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씨의 동료 손쏘우샨(43)씨는 “회사측에서 조금이라도 말을 안 들으면 귀국시킨다고 엄포를 놓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6명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병이 나서 쉬는 기간에 대해서는 일절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질병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은 즉시 귀국시킨다는 근로조건 때문에 웬만한 병은 자신들이 본국에서 갖고 온 약으로 다스리고, 약이 다 떨어지면 거액을 들여서라도 본국에서 약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창원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마산 창원 진해지역 6개 회사에서 일하는 기술연수생 170명을 상대로 상담한 결과 월 생활비로 3만~5만원을 받는 등 사실상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더구나 일부 회사는 이들 명의의 통장에 임금을 매월 정해진 날짜에 입금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 통장은 있지도 않았으며 입금을 하더라도 월 20만~25만원 선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또 이들은 1일 12~19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욕설과 폭행, 심지어 여권을 회사측에서 맡아 보관해놓고 외출금지 조치를 취하는 등 감금생활에 가까운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에 대해 ㄱ사의 한 관리직 중간 간부사원은 “여권보관은 하나의 이탈방지책일 뿐”이라며 “물론 여권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원은 “입금된 월급통장을 연수생에게 안 주는 이유 역시 이탈방지책이지만 외국인들 중 이 방식을 수긍하는 쪽도 있고 부정하는 쪽도 있다”며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이탈방지를 위해 이러한 체제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ㄱ사측은 “연수생제도를 잘 몰라 실수가 있었으며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와 임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ㅂ사 역시 “통장을 회사에서 관리하는 건 사실이지만 임금을 적게 주는 건 결코 아니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도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지난 1991년 10월 법무부 지침인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사증발급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현지투자법인 기술연수생제도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한 산업연수생과 현지 브로커 송출회사를 통해 입국하는 기술연구생으로 구분된다.
기술연수생은 해외진출기업이 현지 고용인력의 기능향상을 위해 현지 송출회사가 인력을 모집, 우리나라에 기술연수를 목적으로 입국시키는 제도이다.
산업연수생은 국내기업의 해외 법인에서 고용중인 근로자를 한국내 본사로 보내 근무토록 하는 제도로서 임금을 제공하는 회사가 해외 법인이라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임금을 제대로 수령할 수 없고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는 등 인권침해 정도가 기술연수생보다 심각한 상태다.
이에 대해 경남지역 종교단체 지도자들은 각종 연수생제도 폐지 촉구와 고용허가제 전면도입을 촉구하는 67명의 연대서명서를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한편 지난달 5일 법무부는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수는 93년 5만4600명에서 작년 11월말 현재 28만9100명으로 10년간 증가율이 530%에 달했으며, 장·단기 체류 외국인도 같은 기간 17만명에서 61만7100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4년부터 외국인고용허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직접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로 정부는 한국어 구사능력 등 일정한 자격기준을 만들어 이를 통과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력 풀을 만든 뒤 그 명단을 국내 직업안정기관에 비치하게 된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 근로자와 동일하게 퇴직금·상여금이 지급되며,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이 보장된다. 이는 곧 연수생 신분에서 노동자 신분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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