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서 올 여름 견딜 힘을 얻다

대밭과 차밭, 그리고 매실밭...사진 구경 해보실래요?

등록 2003.06.10 00:35수정 2003.06.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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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매실 농원의 매실

청매실 농원의 매실 ⓒ 김은주

오늘(6월 9일) 서울 기온이 30도를 훨씬 넘었다는군요. 6월 최고 온도를 갱신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석 달은 더 여름을 견뎌내야 하는데, 이것 참 걱정입니다. 지난 주말, 그래도 한동안은 이 더위를 견딜 힘을 얻고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아직도 귓가에는 대숲에 불어오던 바람 소리가 남아 있네요.

미처 베지 못한 보리가 누렇게 일렁이고, 모내기를 막 끝낸 들녘에는 자그마하고 보드라운 모들이 초록으로 빛나고 있는 남도에 다녀왔습니다. 길다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부딪치고 사각대는 대나무를 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요즘의 대밭에서는 뾰족뾰족 솟아 나오는 죽순을 만날 수 있는 때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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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담양에서 순창까지는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덕분에 제 눈이 무지하게 호강을 했습니다. 청주 들어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도 못지 않게 유명하지만 순창에 이르는 이 길을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무와 나무가 길 건너에서 서로에게 팔을 뻗은 덕분에 길다란 나무 터널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걸어서 가기에는 도로가 위험해서 그저 눈으로만 그 나무들을 만져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a 담양에서 순창으로 가는 국도,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담양에서 순창으로 가는 국도,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 김은주

고재종 시인이 '소쇄소쇄, 대숲에 드는 소슬 바람'이라 묘사했던 소쇄원의 대숲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그런 멋진 정원을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푸르게 서 있는 대나무들, 그 반짝이는 이파리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그렇게 환할 수가 없더군요. 마디마다 새겨진 세월의 길이가, 그네들을 스쳐지나갔을 자연의 숨결이 한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a 담양의 대나무골 테마 공원에서

담양의 대나무골 테마 공원에서 ⓒ 김은주

보성에도 들러 차밭을 거닐기도 했는데요. 가을이 시작될 무렵, 늦게 핀 차꽃이 고와서 한참이나 차나무 아래 앉아 있었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차밭 이곳 저곳을 거닐면서 사람들은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아이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곳이었지요.


a 보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차밭

보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차밭 ⓒ 김은주

광양의 청매실농원에서 여행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매화 향기 넘쳐나던 그 곳에서는 지금 밤꽃 향이 진동을 하는 중입니다. 밤꽃 향기 맡아 보셨지요? 어렸을 때는 그 비릿한 냄새 뒤에 오도독 오도독 알밤이 숨어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답니다. 길게 늘어진 밤꽃들이 영글어가는 매실에 뒤질새라 맹렬한 기세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꽃 진 자리에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매실을 따느라 농원은 꽤나 분주했습니다. 햇빛이 앉은 자리마다 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는 열매가 너무 고와서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웠지요.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실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바로 매실이네요.


a 꽃 진 자리마다 앙증맞게 매달린 매실

꽃 진 자리마다 앙증맞게 매달린 매실 ⓒ 김은주

청매실 농원을 나서면서 넘실대는 섬진강에 안녕을 고합니다. 해질 무렵, 물 많은 강에 드리우는 강렬한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지요? 볼 때마다 환장하게 고운 그 빛에 넋을 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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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마치고 얌전히 강물 위에서 몸을 쉬고 있는 배 한 척, 멀리 보이는 지리산 자락, 강가에 어른 키만큼 큰 갈대들까지, 어느 하나 그 풍경에서 조연으로 물러나 앉은 것이 없더군요. 황홀한 안녕이었습니다.

a 해 지는 섬진강

해 지는 섬진강 ⓒ 김은주

사진으로라도 눈이 좀 시원해지셨는지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너무 더워지면 그때는 또 대숲에 안기러 떠나봐야지요. 바람 소리 가슴에 담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물을 품고, 그렇게 또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a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 김은주


a 청매실 농원의 장독대

청매실 농원의 장독대 ⓒ 김은주


a 밤꽃이 활짝 피었다

밤꽃이 활짝 피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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