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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들아!
너무 오랫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너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이제는 그 동안 앓던 상태에서 벗어났으니 용서하고 축하해 주렴.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단다. 나보다 네 살 적은 당숙이 집 짓는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돌아가셨어. 촌수로는 내게 아저씨 뻘인 당숙이지만, 친형제처럼 지낸 사이였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마흔 여덟 노총각으로 이 세상을 떠난 당숙 얘기는 며칠 후에 들려줄게. 어쨌든 종조할머님께서 여든 네살 나이로 세상 떠나신 지 꼭 한 달만에 막내 당숙이 사고를 당해 장례 치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고통스러웠단다.
요즘, 지난 80년대에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수많은 후배들을 매일매일 만나면서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놓고 많은 토론을 했어. 그 과정이 내겐 매우 힘들었단다. 80년대 감옥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보다도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웠어. 물론 지금은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즐겁게 결정대로 일을 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어.
5월 16일자로 법률적으로도 완전히 해직되었다. 그래도 직위해제 상태 때는 세도중 소속이었는데 이젠 아니야, 법률상으로는. 그래도 내 마음이나 너희들의 마음으로 끝내 세도중 선생이니까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도 있고 해서 5월 30일 세도 선생님들께서 대천 바닷가로 연수 다녀오실 때 초대해 주셨지. 덕분에 오랜만에 고향 바다도 보고, 이쁘고 착한 선생님들도 만나고, 너희들 얘기도 실컷 듣고, 어쨌거나 즐겁고 행복했단다.
내가 속한 단체가 여럿 있었는데(전교조, 참여연대, 민족회의, 민화협, 오마이뉴스, 청소년문화공간, 글쓰기회, 작가회의, 교육연구소, 참교육연구회, 민주화계승사업회, 등등 몇 개 더 있을 거야.) 그 단체들마다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 행사들에 불려 다니며 회의도 하고, 집회도 하고, 연설도 하고... 방송 인터뷰도 여러 번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몇몇 장관이나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어. 어쨌든 꽤 바쁘게 지내긴 했어.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잠시 피곤해졌는데, 당숙의 죽음으로 폭발해서 앓게 됐던 것 같구나.
그동안 종례 못한 변명이 너무 길어졌나? 다시 한 번 사과할게. 너희들이 거꾸로 내게 종례를 시작하겠다는 기특한 협박(?)을 보고 울컥 가슴이 메어왔단다. 네 놈들이 내게 감동 먹인 거지 뭐.
어제 주일 예배 때 울컥했던 생각이 난다. 예배 중 장애우 한 분이 특송을 했어. 뇌성마비에 발음도 힘드셨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며칠이 지나도록 울지 않아서 그 아버지가 벙어리 자식 볼 수 없으니 산에 묻어 버리라고 화를 내셨대. 어머니께서 울면서 정말 산에 갔는데 그 때서야 처음으로 울음소리를 냈고 겨우 살아난 분이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대예배 중간에 특별찬양을 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거룩하다는 느낌마저 들더구나. 아름답고, 그리고 저절로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야. 감동의 눈물, 반성의 눈물,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의 눈물...
'나는 너무 많이 가졌구나. 그러면서도 너무 게으르고, 내가 가진 작은 것들도 놓지 않으려 욕심내고, 그 욕심 때문에 새로운 일 앞에서 망설이고... 아, 그랬구나. 감사해야할 때 진심으로 감사 드리지 않았구나. 내게 주어진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정성껏 해내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눈물과 함께 마구 마구 뒤섞여 쏟아지는 느낌이었어. 하느님을 만난 거지, 뭐.
지금 밤 11시야. 평택이고. 10시 3분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를 탔지. 대전 도착하면 0시 6분 예정이야. 내일 아침 8시 14분 차로 또 서울 가야되고.
오늘도 아침 7시에 후배 몇 명 만나서 아침 식사 겸 회의했고, 10시에 다른 모임하고 11시에 기자회견하고 12시 20분 기차 타고, 기차 속에서 김밥으로 점심 때우고, 서울 명동 YWCA에서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토론회 참가하고, 여덟 시부터 회의하고 다시 대전 가는 길이야. 매일 비슷하게 살고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내게 주어지는 모든 일을 기쁘게 맞으려고 해.
아무래도 그냥 집에 가면 오늘 또 종례 거를 것 같아서 기차에서 쓰는 거야. 내일부터는 짤막하게라도 자주 쓸게. 폼 잡고 교훈적인 글 쓰려고 하지말고 그냥 너희들 보고싶은 얘기, 나 사는 얘기할게.
오랜만인 것 용서하고 자주자주 찾아와 종례 듣고, 내게 용기 주는 답글 많이 써 줄 거지? 이쁜 꿈꾸고 잘 자거라. 그리고 그 꿈대로 내일은 이쁘게 살아가렴.
6월 9일 밤 11시 18분
기차는 천안을 지나고 있구나.
(이 글은 내일 김영숙 선생님이 올려야 될 것 같다. 왜? 잘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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