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지지자가 비판의 최선두에 서야

[주장] 전쟁 발발 방지 이전에 전쟁 위기 방지가 목표 돼야

등록 2003.06.12 13:47수정 2003.06.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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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 있어 우리나라에 크게 냉전세력, 평화세력, 진보세력의 입장이 나누어진다 할 때,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는 평화세력의 중심에서 이탈하여 냉전세력 쪽으로 급속히 편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형국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무식해서(리영희 교수), 원래 준비가 없던 사람이라서(김영삼 전 대통령)라는 지적이 있다. 두 비판자의 격이 다르고, 방향이 정반대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판단하면 덜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더 경청하고 더 배우면 바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개되어가는 상황을 볼 때, 노 대통령과 외교부의 정책은 우연한 실수나 일시적인 혼란이라기보다는 철저히 계산되고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는 강제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흐름을 이끈 한 동인은 미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평화세력 수준이 아니라 진보세력으로 파악했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정치, 사회 정책에 있어 유럽 우파보다도 더 오른쪽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서슴없이 좌파로 칭하던 미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공산당쯤으로 보았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정파적 색깔론 등을 비판하기는커녕 부풀린 혐의가 있는 한국 거대언론의 책임도 크다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반미 시위에서의 성조기를 찢은 것, 미군 철수 주장과 "북한에 핵이 있는 것이 통일 후에 오히려 좋다"는 개인 의견 등을 부풀려서 "남한=북한"이라는 등식을 여론화시키려 했던 전쟁론자들의 교활함도 또 다른 동인이다.

노 대통령과 외교부의 단기적 핵심 목표가 이러한 흐름을 차단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고 보이는 징후가 있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얼마 전 방미의 최대 성과로 두 정상의 개인적 신뢰 구축을 그 첫 번째로 꼽은 것도 그 한 예이다. 북핵 특검 수용, 이라크 병력파병, 정치수용소 발언, MD 체제 편입 시도, 경의선 철도 행사 축소 등 일련의 과정이 미국의 의심을 덜려는 (또는 자극하지 않으려는) 필사적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과 현 정부가 미국의 신뢰를 얻는데 이처럼 필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경제붕괴나 전쟁 발발이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행정부는 김영삼 전 정부와 극심한 외교마찰을 겪은 후 북한 폭격 계획을 막판에 적선하듯이 알려주고, 외환 위기 때에는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도움을 냉혹히 거절했다.


상대적으로 덜 호전적이고, 더 이성적인 클린턴 행정부가 이러했을 때, 현 부시 행정부와 마찰을 겪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수 있다. 이는 이미 미군철수 위협과 하이닉스, 자본 철수 등으로 예고편을 알렸다.

지금은 바둑으로 치면 외길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과 북한이 마찰할 때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제까지 진보세력이 아니라 냉전세력에 가깝다고 시위해 온 노력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MD 정책만 해도 김대중 전 정부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에 대해 평화를 사려는 심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마지노선은 정했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 대해 최대한 양보하지만 북한에 대한 기습 폭격 등 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정책이 거론될 때는 "여태 해온 대미 신뢰적 정책을 봐서라도 한국의 입장을 들어달라"고 요구할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당장 지지층을 잃더라도, 나라의 경제와 국민의 안전을 최대의 목표로 모든 큰 것에 대해 양보할 수 있다는 대승적 자세로까지 볼 수도 있다. 많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층도 이와 유사한 판단으로 여전히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큰 함정이 있다.

우선, 노 대통령 지지층은 실제 이렇게 판단하고 있더라도 미국과 노무현 대통령, 현 정부의 외교,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6개월 전 기사에서 썼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과의 월남 파병 관련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파병 반대 시위를 기대했으나 여의치 않자 차지철을 시켜 국회에서 파병 반대 성명을 발표하게까지 했던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대로 된 야당이라면 나라를 생각해서라도 정부를 비판해서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이들이 이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6.15 공동 선언 이후 야당은 정략적 목적으로 북한을 공격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은 팀플레이로, 결국은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미국 공화당 매파의 분견대라는 일부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비판에 나서야 되는 것 아닐까. 임동원 통일부 장관을 해임한 그 패기로 외교통상부 장관 해임을 위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정부나 여당에 비해 외교 영역에서 자유로운 야당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자신들이 말한 "팀 플레이"가 아닐까.

프랑스는 지금 정년 연장에 반대(퇴직 후 평생 연금이 나오는 프랑스인들은 우리와 반대로 조기 정년을 원한다) 시위가 한창이다. 집권당이 정부와 국회를 완전 장악하여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자, 국민이 직접 발벗고 나선 것이다. 우리도 야당과 언론이 나라를 위해 제 역할을 못하고 전여옥씨나 김문수 의원 식의 인신 공격, 흠집 내기 수준의 비생산적 비난으로 위기의 본질을 피해갈 때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는 단지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차원만이 아니다.

만에 하나 정부가 최후의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 신뢰를 쌓겠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에는 대사관 가족을 미국으로 피신시키는 등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유턴했지만 이것이 다시 반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미 행정부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과 전쟁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특히나 부시 행정부가 내년 대선에서 승산이 없거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때 북한 카드를 단지 한국과의 신뢰 때문에 포기할 수 있다고 낙관하기는 힘들다. 자국과 자파의 이익을 위해 미 행정부가 수십 년 동맹국 프랑스, 독일을 어떻게 버렸는지, 그리고 국민 여론이 어떻게 호도 됐는지는 이라크 전쟁이 웅변하고 있다.

지금부터 6개월 전에 언론을 통해 유포했던 봉쇄정책의 퍼즐이 하나하나 맞추어져 가고 있다. 긴장이 유지되는 상태는 평화상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전쟁 구실 생산 창고"가 된다. 평소 봉쇄라인에서 한 발짝만 더 다가서서 북한 선박을 통제하려 하더라도 쉽게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만에 하나 북한 선박이 발포라도 하면 전쟁을 기다리던 자들에게 그것은 선전포고로 해석될 것이다.

요컨대 정부 정책의 최대 목표는 전쟁 방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대 목표는 긴장 고조 방지로 명확하게 맞추어져야 한다. 세계 180여 개국 중에 3개 국가에 북한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보통 위급한 일이 아니다. 당시 악의 축 발언 때에는 영변 핵은 물론 그 진위가 아직도 모호한 농축우라늄 문제조차 없던 때였다. 이제 두 나라만이 남았다.

상술했듯이 이미 기호지세로 들어간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정부정책의 변화는 노무현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한다고 또는 인신공격적으로 비난한다고 유도될 수 없다. 국민이 나서서 정책비판을 해야한다. 그 최선두에 노 대통령의 지지자가 나서야한다. 그러한 원군을 노 대통령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미국측 견해를 따르려 했지만 그랬다간 대통령직 그만둬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협상구실이라도 줘야한다.

지난 6개월 전 기사 일부를 다시 반복하며 글을 맺는다.


관련
기사
- 박정희와 차지철... 김대중, 노무현과 네티즌, 시민


"... 평화지향 세력이라면 봉쇄를 대화를 유리하게 이끌 압박카드로 쓰겠지만 전쟁 지향세력이라면 봉쇄는 군사작전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중략)봉쇄정책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의 부정적 자세는 이러한 상황 인식의 바탕 위에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미 행정부를 설득시켜 스스로 내팽개쳤던 대화카드를 다시 줍게 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노골적으로 미 행정부를 굴복시키려 하다가는 과거 김영삼 정부 때처럼 중재 역할마저도 상실할 위험이 있고, 제 소리를 못 내고 질질 끌려가서는 결국 미 행정부가 바라던 바대로 되어 버릴 수 있다.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 네티즌이 정부보다 높은 수위로 미국에 봉쇄정책을 포기하고 대화정책을 쓸 것을 압박한다면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중략)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현격히 떨어뜨리고 결국은 미 공화당 매파의 이익에 복무할 뿐인 낡은 한미동맹강화, 대북경계의식강화를 '한반도 긴장완화', '반전 평화'라는 건설적 기준점으로 대체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봉쇄 반대, 대화 지지>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된다.

부시는 북한과의 대화를 회피하지 말고 시작하라!
Mr. Bush, Accept Talks with N.K., Don't Avoid it !

봉쇄반대, 대화지지 !
No, Sanction! Yes, Talks!

봉쇄는 전쟁을 낳고, 대화는 평화를 낳는다.
Sanction Leads to War, Talks Leads to Peace !

소파개정 여론을 불러 일으켰던 네티즌과 시민이 이번에는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데 기여할 것을 염원한다.

2002년 12월 31일"


여기에 당시 단지 북한이 주장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지 않았던 주장 하나를 더 추가한다.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조약 체결하라!
Non-aggressive Pact btw North Korea & USA !

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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