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는 졌지만 더 큰 하나가 되었다

'교동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 지석리 사람들이야기(2)

등록 2003.06.13 21:18수정 2003.06.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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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어제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늘은 비가 그치고 그럭저럭 교동 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를 진행하는데 차질이 없을 듯싶었습니다. 내가 체육대회가 열리는 교동 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아침 8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우리 동네에서 꼴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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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입장식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풍물가락이 들리고 동네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벌써부터 술잔이 돌아갑니다. 오늘 체육대회에 입으려고 모든 선수들이 체육복을 맞춰 입었는데 색깔도 가지각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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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우리 동네 이장님 표정도 상기되었습니다. 내가 “오늘 경기 잘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더니 “지금까지 연습한대로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 한마디만 하십니다.

정각 9시 30분에 입장식 및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교동 중·고등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하늘에는 에드벌룬이 높다랗게 떠 있습니다. 강화의 명물 이현진(55) 아나운서의 수려한 멘트가 운동장에 울려 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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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3500여 교동 면민의 대축제, 제18회 교동 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가 교동 중고 교정에서 경찰 군악대의 팡파레 연주 속에 활기차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교동은 역사 깊은 교동 향교를 비롯해서 읍성 등, 나무 한줄기 풀 한 포기에도 사연이 깃 든 역사의 고장입니다”

각 마을 기수들이 깃발을 들고 앞장서고 그 뒤로 피켓 걸과 선수들이 경찰 군악대에 맞춰 입장을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운동장에 선수단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성화 입장 및 점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성화 봉송자 두 사람이 성화를 높이 치켜들자 운동장이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 합니다. 개회식 하면 무슨 순서가 그리 많은지 1시간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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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각 마을 천막 주변에서는 아줌마들이 부침개를 부치고, 벌써 점심밥 준비를 합니다. 우리 동네 오늘 메뉴는 ‘소머리 국밥’ 입니다. 노인 회장님이 불쑥 한마디 합니다.

“아이구, 국물이 시원하네요. 얼마나 소머리를 고았는지 국물이 진하고 맛나네. 목사님도 사진 그만 찍고, 빈대떡이라도 잡숴 보시겨!”


드디어 본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육상경기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남녀 계주, 100미터 남자 사낭나르기, 100미터 여자 광주리이고 달리기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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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아, 그런데 우리 지석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열심히 달리기는 하는데 속도가 붙질 않아 모두 예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잘했다’ 고 격려를 해줍니다. 육상은 단연 인사리 선수들이 압도적이었습니다. 100미터 사낭나르기 경주는 40kg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100미터를 달리는 경기인데, 남정네들 몸이 비호같습니다.

우리 동네는 육상 전 종목에서 예선 탈락을 했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도 MBC TV화제집중에서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촬영을 하자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술기운이 오르자 풍물을 하시고 흥에 겨워서 덩실덩실 춤을 추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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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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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황순복 아저씨가 내 팔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오늘 기분 최고여. 안 그래? 몇 년 만에 돌아온 체육대회는 큰 경사 아닌가? 그러니 얼마나 좋시꺄. 목사님도 약주 한잔 할 테야?”

나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엉덩이 한번 못 붙이고 사람들 표정을 담기에 바빴습니다. 오후 들어 족구 예선전이 벌어졌습니다. 실력들이 모두 막상막하입니다. 우리 동네는 안타깝게 족구에서도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네가 우승종목으로 노리는 것은 협동줄넘기입니다. 오후 3시가 넘어 협동줄넘기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가 이등을 하고 말았습니다. 진행부측과 석연치 않은 판정시비로 한동안 옥신각신 했지만, 서로 사과하고 박수도 받는 선에서 불상사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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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이제 각 종목마다 결승전이 벌어졌습니다. 운동장에 아나운서 멘트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전해집니다.

“교동 면민 여러분,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떻습니까? 진 사람이나 이긴 사람이나 모두가 하나입니다. 교동 면민의 위대한 단결력을 보여준 훌륭한 체육대회였습니다.”

나는 이쯤에서 각 종목 결승전에서 눈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어느 편이 이기는가? 하는 승부보다 사람들 표정과 응원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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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MBC 화제집중이 철수한다고 오늘 촬영의 크로징을 위해, 우리 동네 전 주민들의 단체사진을 박았습니다. PD의 요청으로 큰 소리로 합창을 했습니다.


“여러분, 지석리로 놀러오세요. 지석리는 교동에서 으뜸가는 마을입니다.”


모든 경기를 마치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기분이 삼삼했습니다. 이어서 저녁에는 마을 회관에서 뒤풀이가 벌어졌습니다. 보나마나 술판이라 슬그머니 빠져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 동네가 경기에서는 졌지만, ‘꼴찌에게 주는 갈채’를 오늘 출전한 우리 동네 모든 선수들과 주민들에게 보냅니다. 이장을 비롯해서 새마을 지도자, 청년회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모두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우리 동네 모든 주민들이 하나가 되었던 아름다운 축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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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존경하는 교동면민 여러분!
제 18회 교동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 대회사

▲ 교동면장 박윤원. 새로 부임해 오신지 한달 밖에 안되셨다.

산과 들녘의 푸르름이 더하는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평소 존경하는 교동면민 여러분들을 모시고 제 18회 교동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간 못자리 설치와 관리에 이어, 적기 이앙하시기까지 면민 여러분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 교동면은 자연이 선물한 천혜의 청정지역으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곳으로서, 넓고 기름진 평야와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아울러 근면한 생활력과 미풍양속의 좋은 전통은 우리 교동면민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오늘 개최되는 제18회 교동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는, 3,500여 면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가 되어 축제의 장을 여는 뜻 깊은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교동면민의 기상을 활짝 펼쳐서 출전 선수 모두가 자기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좋은 성적으로 거둠으로써, 오는 10월 개최되는 군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자랑스러운 교동면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오늘 열리는 이 체육대회가 승부를 떠나서 면민 여러분들께서 화합하고 단결하여 흥겹고 즐거운 대회가 되기를 당부합니다. 올 한해도 풍년농사와 함께 여러분들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내내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교동면장 박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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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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