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59

다물연공관 (6)

등록 2003.06.14 13:22수정 2003.06.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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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이런…!"

황급히 탁자로 다가선 장일정은 나지막한 신음을 토했다. 죽은 듯 누워있는 사내는 죽은 시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리한 도에 의하여 한쪽 팔이 잘려나간 상황이었고, 혈도가 점혈되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응급조치가 취해진 상황이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멀쩡한 사람의 팔을 잘라 관문을 만든 것이 분명하였다.

"세, 세상에…! 이런걸 관문이라고… 으으음!"

너무도 기가 막힌 장일정은 나지막한 침음성을 토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환자를 살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어떻게 하면 잘린 팔을 다시 붙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지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의술하면 흔히 탕약이나 침, 혹은 뜸을 떠올린다. 부술(剖術) 역시 의술의 한 분야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경원 시하였다. 이를 익히기 위해선 반드시 죽은 자의 시신을 갈라보아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도 곱게 죽어야 저승에서도 편안히 지낸다 믿는 세상이었기에 부술은 발전하고 싶어도 발전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부술이란 고름을 짜내기 위하여 종기가 난 부위를 절개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술을 최종 관문으로 선택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렇듯 멀쩡한 사람의 팔을 베어 시험하려는 것은 못마땅하였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잘려있는 팔이었다. 하여 장일정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 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으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더 지체하면 조직들이 괴사하니까 서둘러야 한다. 흐음! 어디 보자…"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장일정은 탁자 위에 놓인 각종 도구를 살폈다. 거기엔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마비산(痲 散)과 절개를 위한 참침( 鍼), 그리고 상처를 꿰맬 때 사용하는 실과 바늘 등 부술을 위한 도구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무천의방의 부술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흐음! 이건 양이나 고양이 내장에서 추출하여 만든 장선(腸線)일 것이고, 이게 명주실이겠군. 좋아! 장선은 체내에서 녹아 없어지니 근육과 혈관을 봉합할 때 사용하고, 명주실은 팔을 몸통에 붙일 때 사용하면 되겠군."

웬만한 의원들은 장선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용해 본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종기나 째본 것이 전부인데 장선이라는 것의 존재를 안다면 이상할 것이다.

장선은 양(羊)이나 고양이, 혹은 소의 내장에서 추출한 것으로 특별히 제조한 약물에 담가두면 질겨진다. 이것은 사람의 몸 안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성질을 지녔다. 그렇기에 체내의 장기 등을 꿰맬 때 사용하는 것이다.

장일정은 환자가 지독한 고통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처 부위에 마비산을 뿌렸다.

이렇게 하면 통증이 한결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거침없는 손길로 혈관을 봉합하고 잘려진 근육을 이어 붙였다.

대략 네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장일정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부술을 배우기는 했으되 사람을 상대로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몹시 긴장되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개나 고양이, 아니면 사슴을 상대로 해본 것이 전부였다.

"휴우…! 이만하면 된 건가?"

장일정은 지난 네 시진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무엇인가를 하기는 했는데 도통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잘못하면 잘려진 팔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기에 너무도 긴장한 탓이다.

"허허! 수고하셨소이다. 끝내신 것인지요?"
"예? 아, 예! 다행히도…"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전각을 나서고도 혹시 잘못 조치한 것은 없나 싶어 연신 뒤를 돌아보던 장일정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 와 있던 시험관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수고하셨소이다. 헌데 속명신수께서는 반 시진 전에 나오셨는데 조금 늦으셨소이다."
"……!"

말을 마친 시험관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장일정은 잠시 멈칫하였다가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왔다. 자신보다 먼저 나갔다는 말에 충격 받은 것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중인들의 시선에는 실망감이 감돌고 있었다. 매번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였지만 이번만큼은 속명신수를 이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자와 약자가 대결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약자 편을 든다. 소화타 장일정은 속명신수 담천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자이다.

최근 들어 명성이 전 강호로 번졌지만 속명신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만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번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여 왔지만 마지막엔 기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무척이나 컸었다. 그런데 속명신수가 나오고도 한참 뒤에야 나오자 실망한 것이다.


― 에구! 이번엔 좀 일찍 좀 나오지. 안에서 자다 나왔나?
― 그러게 말일세. 이번에 속명신수보다 일찍 나왔으면 역사상 최연소 무천의방 방주가 되었을 터인데 아깝게 되었네.

― 이보게들 그만들 하시게. 소화타의 명성이 비록 하늘을 찌를듯하나 어찌 속명신수 어르신을 넘볼 수 있겠는가? 이만만 하여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시게.

― 자네의 말이 맞네! 비록 아쉽게 졌지만 언젠가는 소화타의 명성이 속명신수를 능가할 날이 있을 것이네.
― 으음! 어찌 되었건 무척이나 아깝게 되었네.

장일정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왜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심정적으로 자신을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여 가볍게 목례라도 하려던 찰라였다.

"에헴! 모두 여기를 주목해 주시오."

전각 안으로 들어갔던 시험관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느라 제법 시끄럽던 장내가 이내 고요해졌다.

"에헴! 결과를 발표하겠소이다. 무천의방의 차기방주는 속명신수 어르신으로 결정되었소이다."
"……!"

장일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부인 북의는 물론 사숙인 남의의 명성에 먹칠을 하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속명신수가 있던 곳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와와! 만세! 만세!"
"그럼 그렇지. 허허! 어르신 감축드리옵니다."
"헤헤! 차기방주가 되셨음을 감축드립니다."

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일정의 눈에는 처음으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속명신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나이가 육십을 넘었고, 웬만한 인품이라면 소화해내기 힘들 정도로 학창의와 잘 어울리던 속명신수는 왠지 교활한 너구리처럼 보이고 있었다. 장일정은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엔 왜 그런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음 속으로 사부에게 용서를 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흥안령산맥을 떠나 만년뇌혈곤을 잡으러 가는 동안 호옥접은 내내 부술에 관한 설명을 해 준바 있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말로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이다.

부술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친 호옥접은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면서 틈만 나면 실습을 하여야 한다 하였다.

비싼 값을 치르고 개를 구해 온 적도 있었고, 토끼나 사슴, 혹은 여우나 너구리를 끌고 온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장일정은 다음에 하자고 미루기 일쑤였다.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고, 비릿한 혈향(血香)이 싫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결국 열 마리를 잡아오면 그 중 간신히 한 마리 정도를 갈라보았는데 그나마 건성으로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피 냄새를 맡으면 이상스럽게 속이 울렁거리면서 토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부술은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독한 마음을 먹고 본격적인 부술 연마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오늘 관문을 돌파하는 동안 장일정은 그동안 부술 연마를 게을리 한 것을 무척이나 후회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속명신수보다 나중에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워낙 꼼꼼한 손놀림을 요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혈관을 봉합하려면 보통의 주의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은 근육도 마찬가지이고, 피부도 마찬가지이다.

장일정은 혈관을 봉합하는 데만 꼬박 두 시진을 썼다. 근육도 한 시진이나 걸려서 간신히 제 모습을 갖추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네 시진만에 나오면서 장일정은 자신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험관이 나중에 나왔다는 말을 할 때 멈칫거린 것이다.

장일정인 멍한 표정으로 속명신수를 바라보는 동안 시험관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자자! 여기를 주목해 주시오. 허허! 거기 계신 의원님들, 축하는 나중에 하고 우선 여기를 보시오."

시험관의 말에 장내의 소란은 이내 가라앉았다.

"에헴! 속명신수 어르신께서 차기방주가 되셨으니 이제 차점자인 소화타가 부방주가 되셨음을 선포하는 바이외다. 에헴! 그건 그렇고, 오늘 본방에서는 관문에 도전하였던 의원들을 위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기로 하였소이다. 무천의방 후원에서 연회가 열리니 한 분도 빠짐 없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라오."
"와와! 만세! 만세! 와와와와!"

연회란 말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오랜만에 목구멍에 낀 먼지를 닦아낼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이제 배가 터지도록 기름진 안주를 먹을 것이고, 향기 그윽한 주향을 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야리야리한 기녀들의 춤사위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수가 좋으면 회포를 풀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살펴야 하기에 평상시 무천의방 소속 의원들은 술을 못 마시도록 규정지어져 있다. 과거에 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화롱철신의 희첩 하나가 급병을 얻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무천의방의 당직의원이 호출되었다. 그때 그는 오랜만에 고향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 적지 않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대취한 그는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할 상황이 못되었다. 그렇지만 환자가 성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희첩이었기에 잔뜩 긴장한다고는 했지만 허둥지둥하다 끝내 환자를 죽이고 말았다.

마침 희첩의 처소를 찾았던 화롱철신은 대노하였고, 그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다음 날 무천의방 소속 의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일체 술을 마실 수 없도록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이런 판국이니 무천의방 소속 의원들은 늘 술이 고픈 상태이다. 그런데 성대한 연회를 베푼다하자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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