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삶의 화두이다

등록 2003.06.17 07:01수정 2003.06.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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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한자락 강물로 내 마음을 적시는 동안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새우던 나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밤마다 울지 않으려고
괴로워하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래오래 별을 바라본 것은 반짝이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내가 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헬 수 없는 우리들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상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길들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노을 지는 저녁까지
이 길위로 사람들이 쉬지 않고 오가는 것은
그대에게 가는 길이 들녘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랍니다.


-안도현 詩 그대에게 가는 길-


a 길. 길은 쓸쓸하지만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길. 길은 쓸쓸하지만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 느릿느릿 박철


내 어릴 적 별명은 ‘미련곰퉁이’였습니다. 아버지가 걸핏하면 나를 그렇게 불렀지요. 한번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목사님 댁에 갔는데, 도무지 그 날 심부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목사님 얼굴만 뵙고 돌아왔습니다. 그 날 나는 목사님 얼굴을 뵙고 돌아온 것으로 아버지 심부름을 훌륭하게 마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착각하고 딴 일을 보고 나서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 날 심부름의 내용은, “목사님, 우리 아버지가 개장국 잡수시러 오시래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를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누구나 한두 번 정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난감한 적이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 집을 나섰을 때, ‘내가 왜 집을 나섰는가?’ 하고 물을 적이 간혹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종 떠나고 싶은 마음에 집을 나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바르게 살지도 못하면서, 남다른 정신이나 성찰 없이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성자 <스와미 묵타난다>는 그런 고민에 대해 다음 같은 깨달음을 줍니다.

“여섯 살 때 나는 내가 일곱 살을 향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이 되자 나는 언제나 학교를 향해서 가고 있었으며, 그것은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다 나은 인간이 되었다기보다 나는 현실적이고 영리한 인간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늘 성공을 향해서, 행복한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 쉰이 되고 보니, 때로 나는 내 자신이 무덤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참담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순간마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a 포구로 가는 길. 나는 이 길을 자주 찾는다.

포구로 가는 길. 나는 이 길을 자주 찾는다. ⓒ 느릿느릿 박철


길을 떠난 사람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끝임 없이 물어야 할 삶의 화두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모두 길 위에 서 있는(途上) 존재들입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갈 수는 없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지금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면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혹 길을 잃어버려 헤매는 사람을 만나거든 친절하게 손이라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시방 계절은 점점 더 여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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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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