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게로 가서 무엇이 될까?

로라 포인트 언덕에 핀 6월 야생화

등록 2003.06.18 09:10수정 2003.07.0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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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a 콘크리트 틈새에서 핀 보라색 벳취꽃

콘크리트 틈새에서 핀 보라색 벳취꽃 ⓒ 정동순

노란색, 자주색, 주홍색 등으로 들판을 가득 수놓는 야생화를 보러 길을 나섰다. 아이를 앞세우고 길을 간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꿀을 모으는 벌이나 개미들처럼 나도 꽃이 주는 여유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a 비행기가 지나간 길

비행기가 지나간 길 ⓒ 정동순

건조한 기후로 키가 크지 않는 소나무도 반갑다. 꽁지가 긴 까치 녀석은 무서움이 없는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날아가지 않는다. 고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반가운 친구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a 까치야,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까치야,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 정동순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살랑살랑 풀잎들도 끊임없이 하늘거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어서 일까? 이곳에는 바람에 씨를 날리기 쉽도록 열매를 맺는 꽃들이 많다.


a 이름모를 꽃, 민들레처럼 바람에 날리는 씨를 맺는다

이름모를 꽃, 민들레처럼 바람에 날리는 씨를 맺는다 ⓒ 정동순

같은 토양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자라는 한 그루의 선인장에도 일찍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나중에 느릿느릿 피는 꽃도 있다. 들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일이야! 조급해지지 않고 때가 되길 기다리는 여유를 배운다.

a 계란만한 선인장도 큰 꽃을 피우네

계란만한 선인장도 큰 꽃을 피우네 ⓒ 정동순

a 선인장꽃, 일찍 핀 놈 나중 핀 놈 다 귀하다. 늦게 핀다고 꾸중하지 않기

선인장꽃, 일찍 핀 놈 나중 핀 놈 다 귀하다. 늦게 핀다고 꾸중하지 않기 ⓒ 정동순

a 한 송이 선인장꽃

한 송이 선인장꽃 ⓒ 정동순

여기에선 모든 풀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사이좋게 필요한 공간을 나누며 나름대로 귀한 꽃을 피워 낸다. 누가 더 예쁘고 더 귀할 것도 없이 주어진 개성대로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a 얌파, 작은 것도 한데 모이면 아름답다

얌파, 작은 것도 한데 모이면 아름답다 ⓒ 정동순

a 보라색 팬스테몬

보라색 팬스테몬 ⓒ 정동순

독한 가시 잎을 달고 있는 엉겅퀴도 척박한 땅에 먼저 자리를 잡아 뒤에 다른 풀들이 뿌리 내리기 쉽도록 토질을 바꾸어 준다. 쓸모없어 보이는 들에 자라는 잡초 하나도 이렇게 제 역할을 다한다.

a 흰 엉컹퀴꽃, 너도  네 몫을 다 하는구나

흰 엉컹퀴꽃, 너도 네 몫을 다 하는구나 ⓒ 정동순

그런데 신이 나를 멀고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나에게 무슨 소명을 주려고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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