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민은실
흑인이 아니라 한 인간일 뿐이다
"모든 운송 회사는 개찰구, 대기실, 지정석 등을 인종에 따라 분리 설치해야 한다.(1914년 흑인법)"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하얀 얼굴의 사람들은 '인종 분리 정책'을 만들었다. 말도 안되는 법으로 흑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기까지 했다. 그들은 백인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인권유린을 한 셈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흑인여성이 대통령 수석 보좌관이 되었다고 하면 놀랄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흑인이기 이전에 인격체라는 것을 강조하며 오직 원리와 상식대로 성공의 계단을 밟아왔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에 단 한 번도 좌절감을 느낀 적이 없으며 열등감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콘디가 걸어온 길
유아기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음악에 몰두하던 콘디는 덴버 재학 시절 '조지프 코벨'이라는 소련학 전공 교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소련과 동유럽학을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소화하기까지 했다. 열정적인 학구열과 탁월한 재능은 결국 그녀에게 27세에 정치학과 부교수로 강단에 서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스탠퍼드 대학 정교수로 승진이 되었고, 브렌트 스카우크로프트(전미 안보보좌관)와의 인연으로 인해 소련/동유럽 부서의 국가 안전 대통령 특별 보좌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부시1,2세에게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현재는 백악관에서 조지 W.부시 대통령의 국가안전 보좌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애초에 콘디가 걸어가고자 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바뀐 길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모습은 진정한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학 교수를 하면서, 대통령의 보좌관으로서의 책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음악과 미식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련학을 위해서 피아노를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의 사고방식이며 명쾌한 논리인 셈이다.
그녀의 성공을 이끌어준 가족
콘디가 탄탄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현명한 선택과 강한 의지로 인한 것이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족의 힘이 매우 컸다.
어찌보면 그녀는 흑인 사회 속에서도 혜택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라이스'가(家)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가문도, 유능한 인재들로 명성을 떨치던 가문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육과 자립'을 중요시하였다.
콘디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힘의 논리로 약자가 지배받는 세상과 진실이 굴절되고 왜곡되는 사회의 모든 제약으로부터 콘디를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콘디는 흑인이 미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얼마나 귤욕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러한 혜택을 콘디에게만 준 것이 아니다.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내지 못하는 흑인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이러한 교육과 자원봉사를 위해 애쓰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콘디는 큰 감명을 받았고, 현재 흑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양성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구별'과 '차별'
콘돌리자 라이스의 삶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소수의 약자들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의 지배에 순종하며 겁을 내고 있을 뿐이다. 흑인과 백인을 피부색이라는 기준으로 구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종차별이라는 무식한 인권유린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오영숙 외 옮김,
일송북, 200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