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여자애가 개고기를 그렇게 잘 먹니?"

우리 집 늦둥이 은빈이의 사랑이야기(6)

등록 2003.06.20 05:24수정 2003.06.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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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가 2만원짜리 자전거를 타면서 신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엊그제 은빈이 자전거가 타이어 바람이 모두 빠져 찌그러진 채 처박혀 있는 것을 보고 아무래도 펑크가 난 것 같아 차에 싣고 대룡리 자전거 상회에 갔다. 자전거 상회 아저씨가 바람 넣는 구멍 고무를 누가 빼서 그렇게 된 거라며 괜찮다고 한다.

3년 전에 사준 자전거인데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로 만들었지만 은빈이 덩치에 비하면 매우 작다. 은빈이가 요즘 노래를 한다.

“아빠 자전거 하나만 사줘!”
“알았어.”
“아빠, 나 구원오빠 자전거 타 보았다. 구원오빠 자전거는 기어 자전거야. 브레이크도 잘 들어. 엄청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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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가 자전거 타령을 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아내가 다음달 은빈이 생일 때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해서 내가 “그냥 걸어 다니라고 그래”라고 대답했었다. 내가 좀 심했나 보다.

은빈이 자전거에 바람을 넣고 차에 실으려고 하다가 자전거 상회 문 앞에 보니, 중고 자전거가 눈에 띈다.


“아저씨, 이 자전거 팔 거예요?”
“예, 싸게 줄 테니 가져가세요.”
“얼마인데요?”
“두 대에 5만원만 주세요.”

어른용 자전거는 3만원이고, 은빈이가 타기에 딱 안성맞춤인 자전거는 2만원이란다. 기어도 달려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쓸 만해 보인다. 은빈이에게 “은빈아. 이 자전거 너 사줄까?”하고 물으니 “싫어요. 안 사줘도 돼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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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전혀 생각치도 않은 대답이다. 남이 타던 중고 자전거여서 마음에 안 들어 ‘싫다’고 대답한 것 같지는 않다. “은빈아, 어서 달려봐!” 했더니 은빈이가 ‘으앙’하고 운다. 집에서는 까불이지만 밖에서는 숫기가 없다.

이렇게 해서 자전거 두 대를 일금 5만원에 샀다. 은빈이 자전거는 2만원짜리인 셈이다. 집에 갖고 오자마자 은빈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오빠들에게 자랑을 한다.

“아빠, 내 자전거 엄청 좋아요. 언덕에서 브레이크 잡으면 팍팍 서요. 전에 타던 자전거는 고물이라 브레이크 대신 발로 지지직하고 서야 했는데, 새 자전거는 브레이크만 잡으면 단번에 서요.”

그렇게 좋을까? 은빈이 입이 찢어진다. 오늘도 학교에 다녀와서 구원이 오빠랑 저녁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자전거를 탄다. 치마 자락을 날리며,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린 채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자전거를 타는 은빈이 뒷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2만원짜리 자전거가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은빈이가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참 기특하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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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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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무슨 여자 애가 개고기를 그렇게 잘 먹니?

어제 낮에 메이저리그 서재응 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데, 교우 한 분이 냄비에다가 뭘 담아 가지고 왔다. “이게 뭐예요?”하고 물었더니 “개장국이에요”하고 대답을 한다. 늑막염으로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느라, 기력이 쇠해져서 몸보신하려고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았을 것이다.

“목사님 맛이나 보라고 조금 갖고 왔어요.”
“뒀다 잡수시지 뭘 갖고 왔어요?. 잘 먹겠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밥상에 둘러앉았다. 아내가 자기만 빼고 ‘개장국’을 국그릇에 담아 나와 식구 수대로 내놓았다. 교동에서는 개장국을 끓이면 고기 건더기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푹 삶아 노인네들 잡숫기에 좋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황해도 식이라고 한다.

애들이 ‘개고기’인 줄 알면서도 한 숟갈 맛을 보더니 다 잘 먹는다. 아들 녀석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은빈이까지 국물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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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은빈아, 네가 개고기를 그렇게 맛있게 먹을 줄은 몰랐다. 내일 우리 집 다롱이 잡아먹자!”
“안돼요. 어떻게 키우던 개를 잡아요?”
“그런데 너는 왜 개고기를 그렇게 잘 먹니?”
“이건 우리 집 개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먹으라고 갖고 온 걸 어떻게 안 먹어요?”

녀석이 대답 한번 잘한다. 하루 지나 오늘 저녁때였다.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아내가 묵은 김치를 썰어 넣고 콩을 갈아 콩비지 찌개를 끓여 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어제 먹다가 남은 개장국 한 그릇을 갖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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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개장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 한 숟갈을 먹는데 은빈이가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를 한다.

“엄마는 왜 아빠만 개고기국 주고 나는 안 주는 거야?”
“무슨 여자애가 개고기 타령이냐? 콩비지 찌개가 맛있으니 먹어봐.”
“싫어. 나도 개고기 국 줘요!”

은빈이가 앙탈을 부린다. 오빠들이 눈을 부라리며 은빈이에게 눈치를 준다. 은빈이 똥고집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숟갈을 내려놓고, “그럼 이거 네가 먹을래?”하자 은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대신 국물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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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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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김이 팍 샜다. 하는 수 없이 콩비지 찌개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은빈이는 내가 밥 한 공기 넣어 말아놓은 개장국 한 냄비를 다 먹고 자기가 받아 놓은 밥 한 공기까지 다 먹어 치웠다. 은빈이가 밥을 다 먹고 내 서재에 들어왔는데 올챙이배처럼 배가 빵빵하다. 내가 은빈이에게 말을 걸었다.

“은빈아, 개고기가 맛있니?”
“응.”
“그런데 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뭐가요?”
“아빠 먹으라고 갖고 온걸 네가 다 먹으면 어떻게 하니?”
“에이, 내가 반만 먹고 아빠한테 반을 줄 걸, 내가 다 먹어버렸으니 어떻게 하지? 아빠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내가 다 먹어버려서.”

세상에 여자가 개고기 먹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초등학교 1학년짜리 여자애가 개장국을 그렇게 맛있게 먹을 줄이야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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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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