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대한민국 국민, 존중받을 권리 있다"

<현장>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3 퍼레이드

등록 2003.06.22 10:48수정 2003.06.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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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면 움직여!"
"행복해지고 싶다면 움직여!"


한국의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양성애자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퀴어 문화 축제, 무지개 2003'이 21일 종로에서 개막되었다.


퍼레이드 개막행사, 퍼레이드, 축하공연 등으로 이어진 '무지개 2003'은 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 '친구사이', 하이텔 동성애자인권모임 '또 하나의 사랑'과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게이 문학 모임 등 500명 남짓의 참여자들이 모여 '움직여!'라는 표어 아래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퀴어 문화 축제 '무지개 2003'은 성적 소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 소통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동성애 축제이다.

김진석
지난 2000년 대학로에서 시작된 퀴어 문화 축제의 꽃 '퀴어 퍼레이드'가 홍대 앞(2001), 이태원(2002)을 거쳐 올해는 종로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네 대의 차량을 빌려 탑골공원부터 국세청 뒤 한미은행까지 이어진 퍼레이드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으며 성적 소수자들의 자긍심을 즐겁고 당당하게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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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부터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신예슬(21)씨는 성적 소수자를 직접 만나 이해하고 싶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며 "일반인들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주장을 다른 소수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정재혁(22)씨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성 구분이 없는 게 신선했다. 처음엔 구태여 저렇게까지 화려하게 여장 분장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며 성적 소수자들의 당당한 거리 행진에 지지를 보냈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김복태(21)씨는 "기분이 정말 좋다! 이런 축제가 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동등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며 축제의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덧붙여 "난 정신병자가 아닌데, 가끔 언론이 동성애자를 이상하게 포장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하며 왜곡된 언론 보도에 일침을 가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이런 축제를 통해 계속 알리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존중하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퍼레이드에 참가한 장경민(31)씨는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를 인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세 번째 참여하고 있는 김명우(48)씨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축제를 통해 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이어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쳐 외국인들도 타지에서 놀러올 수 있는 축제로 활성화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김진석
내년에도 다시 참가하고 싶다는 정여진(22)씨는 "교통 통제가 안돼 아쉬웠다. 갑자기 SBS 취재 차량이 도중에 끼어 드는 바람에 얼마나 아찔했는지 모른다"며 거리 행진의 혼잡함을 지적했다.

이번에 처음 참가한 신아무개(22)씨는 "언론의 무분별한 사진 촬영 때문에 신경이 쓰여 축제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며 사진 촬영 약속을 무시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씁쓸함을 전했다.

재미와 자부심을 느꼈다는 김아무개(22)씨는 "사람이 밀집된 서울 중심 종로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반면 퍼레이드 거리가 너무 짧아 흥이 빠져버리고 진행도 느렸다"며 진행상의 아쉬움을 표했다.

퍼레이드를 지켜 본 박경자(37)씨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근데 다시 한번 느끼지만 어린 친구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며 "이런 축제를 통해 개인적으로 다시금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퍼레이드를 보게 된 신아무개(60)씨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풍요로워지는 기분이다"라며 "맨날 노사분규 같은 집회만 보다가 저런 걸 보니 굉장히 이국적이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정혜원(25)씨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왜 굳이 남자가 저렇게까지 여장을 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으며, 홍원중(44)씨는 "남녀가 좋아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솔직히 우리 정서엔 이상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우리나라 정서엔 아직 이르지 않느냐?"라고 조심스레 반문하는 강상규(23)씨는 "이왕 종로 거리까지 나왔는데 왜 저리 얼굴을 가리고 공연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꼭 이성만 좋아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문을 연 홍순형(47)씨는 "그들도 나름의 입장과 삶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아직까지 서양이라고 무조건 100% 다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며 "단지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의 인격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삶을 사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최민영(33)씨는 "처음 보니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다.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면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하다"라며 있는 그대로 그렇게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함을 당부했다.

고재천(29)씨는 "처음이라 솔직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더 내놓고 당당히 양성적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하며 이혜원(23)씨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축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큰 부담 없이 잘 받아주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한채윤(32)씨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과거에 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과 당당히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늘어 보기 좋다"며 "7,8회까지는 계속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계속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홍석천 막간 인터뷰
퀴어 문화 축제에서 만난 홍석천

▲ 홍석천씨
ⓒ김진석
- 감회가 어떤가?
"서울의 중심 한복판 종로에서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행진하는 게 굉장히 자랑스럽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나아졌음을 느끼며 자신감도 생긴다. 사실 길거리 퍼레이드가 굉장히 힘들다. 거리에 나서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오늘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미 커밍아웃한 것과 다름없다. 여기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 요즘 근황은?
"나이트 클럽 사업과 음반을 준비중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방송 출연이 실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현재 한 케이블 방송에서 오락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음반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그나마 방송에서 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음악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프로그램보다도 비교적 음악 쪽이 더 열려 있는 것 같다. 내 모든 걸 함축해서 자유롭게 보여주고 싶다."

-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우선 자유롭게 열려 있는 축제이다. 외국에서는 일반 사람들도 퀴어 문화 축제를 새벽부터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일반화 돼 있다. 무엇보다도 '즐겁게' 참여하는 것을 모토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며 즐기는 축제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에게 편견을 가진 사람도 존중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새로운 것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어떻게 다른지 직접 알아보고 겪어보며 얘기한 후에 판단했으면 한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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