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 무릎 꿇고 신발 끈을 매어주세요"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토토의 눈물>

등록 2003.06.23 14:48수정 2003.06.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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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이토록 가슴이 아프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릴 정도의 전율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토록 절망적인 마음으로 치달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 앞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본 유니세프 친선대사이며 TV 토크쇼 진행자인 구로야나기 테츠코 씨가 13년 동안 기아와 전쟁에 허덕이는 세계 어린이들의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본 생생한 체험을 쓴 이 책은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참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창가의 토토)의 저자이기도 한 구로야나기 테츠코 씨는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토토'로 불렸었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알게된 건 처음으로 구호활동을 나갔던 탄자니아였다고 한다. 아프리카어인 '스와힐리어'로 어린이를 '토토'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 기막힌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방문한 곳은 탄자니와, 니제르, 인도, 모잠비크, 캄보디아, 베트남, 앙골라, 방글라데시, 이라크, 에티오피아, 수단, 르완다, 아이티, 보스니아 등 주로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린이들과 여자들이 주로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여준다.

탄자니아는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것이 메말라 버렸으며 아이들은 많게는 15km를 걸어서 물을 구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니제르에서도 비가 내리지 않아 강이 말라버렸다고 하는데 (큰 강 중에서도 제일 큰 강)이라는 뜻을 가진 니제르는 연간 강우량이 24밀리미터라고 한다.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끝없는 사막에는 풀 한 포기 자라날 수 없이 황폐화되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물은 바로 생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400만 명이나 되는 다섯 살 미만의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하는데 인도에서도 1년에 83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죽는다고 한다. 인도는 카스트제도로 인해 빈부 차가 극심하기도 하지만 신비로운 나라로 알려져 사람들이 동경하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를 휩쓴 건 파상풍인데 파상풍에 걸린 아이들은 심한 설사 때문에 탈수를 일으켜서 죽어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라 인도지만 카스트제도의 그늘 아래 고통받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참상은 비단 아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잠비크는 반정부 게릴라들 때문에 받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아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이, 그리고 영양실조와 피부병으로 고통받은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진 채 버려져 있었으며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오랜 전쟁 때문에 전 국토에 폭탄의 흔적이 수도 없다고 한다.

1976년에 정권을 잡은 폴 포트 세력은 3년 8개월 사이에 10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 인을 죽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말라리아나 결핵으로 죽어간다고 하는데 베트남에는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 불발탄 폭팔 사고,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수도 없다고 한다.


앙골라는 내전과 독립 전쟁 등으로 30년 동안 전쟁을 치른 나라이다. 가뭄도 겹쳐서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으며 지뢰로 다리가 잘린 사람만도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거기다 더 잔인한 건 게릴라들이 어린이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팔다리를 잘라버렸다고 하는데 소름이 끼쳤다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는 홍수와 자연재해로 굶주림, 빈곤 질병으로 방글라데시의 빈민가에서는 1000명당 200명의 갓난아이가 첫돌을 맞기 전에 죽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영양실조 상태이며 예방주사를 못 맞아서 6대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이다. 결핵,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소아마비 홍역이 6대 질병이다.

이라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이다. 온 나라가 전쟁의 휴우증으로 먹을 것과 분유가 부족하고 영양실조, 설사, 병균감염 등으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생명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비참하다. 이라크는 전체 발전소의 90%가 파괴되어 전력공급이 중단되자 식수정화나 하수처리, 농업용 관개용수 공급, 병원시설의 수술 같은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한 질병과 빈곤에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었다. 게릴라들에게 팔다리가 잘렸다는 어린이들이나, 한데서 잠을 자다가 하이에나에게 물린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만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처럼 극심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서 저자는 사랑과 순수함을 발견하고 가슴아파한다. 지옥의 악마는 다 전쟁이 일어난 곳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전쟁은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죽여버리는 것 같다. 아이들의 그 순수하고 천사 같은 마음에 멍든 아픔과 고통을 끌어 안아줄 사람이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그런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말을 건네며 사랑을 전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야말로 천사가 살고 있으리라. 지구상의 85%에 해당하는 어린이들이 이런 환경 속에 놓여 있다니…. 나머지 15%의 어린이들은 풍요롭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오늘날 넘치는 풍요로움에 병들어 가는 어린이들도 많다.

지금 이 시간도 머나먼 곳 어딘가에서는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토토의 눈물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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