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눈물>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 출판
작가정신
<토토의 눈물>은 1984년부터 아시아인 최초로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경험담이다. 저자는 독특한 말투와 양파 같은 머리 스타일로 국민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 <데쓰코의 방>이라는 아사히 TV 토크쇼 프로그램을 4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그는 영양실조와 감염증 그리고 전쟁에 휘말리면서도 아무 불평 없이 어른을 믿고 죽어간 1억8천 명의 어린 영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받고 전쟁과 기아로 고통 받는 현장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다녔다. 30년 넘게 한결같을 수 있다는 건 그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친선대사 역할을 해 왔는지 가늠하게 한다.
진정성은 국제국호단체가 심어놓은 편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는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한 해에 설사나 영양실조로 죽는 아이들은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 더 많다.
"같은 한 해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440만 명의 아이들이 죽는데, 아시아에서는 830만 명, 인도에서만 350만 명이 죽습니다. 설사로 인한 탈수증이나 예방이 가능한 감염증 등으로요. 나머지는 라틴아메리카고요." - 69p.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까발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게 국제개발협력 현장이다. 빈곤 포르노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토토의 눈물>이 갖는 장점은 말초적인 감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건과 통계를 말하고, 아이들의 시선을 담아낸다. 그런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다. 구로야나기 데쓰코, 저자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지난 경험들을 담아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눈물이 나옵니다. 그 아기가 불쌍해서만은 아닙니다. 어쩌다 티셔츠를 얻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샀지만 어울리지 않는다고 쳐박아둔 티셔츠가 여러 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흘리는 눈물입니다. 세상 어딘가에 티셔츠 한 장을 훔쳐 감옥에 가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 자신의 무지가 슬퍼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 46p.구호현장을 돌아다니며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아이들이 먹을 것에만 굶주린 것이 아니라 사랑에도 굶주린 것을 알았다. 그래서 '플랜 A, 플랜B, 플랜C, 플랜D' 하며 원조만 바라는 어른들이 주는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토의 눈물>은 한 사람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어떤 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한센병이나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활요법을 시행하고 있는 인도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에게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온다는 소식에 정부에서 보내온 보행을 돕는 보조 신발을 나눠준다. 해당 시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발과 끈을 따로 주는 실수를 한다. 손발에 힘이 없는 아이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신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설에서는 아이들이 신발 끈 묶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
이때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한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신발 끈을 모두 매어서 신겨주었다. 신으면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목발만으로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인도의 국영 방송국이 우연찮게 그 장면을 포착하고, 반복해서 뉴스로 내보냈다. 신문도 연일 그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의 유명 스타가 무릎을 꿇고 가난한 아이의 신발 끈을 매어주었다는 것이 뉴스가 된 것이다.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그 사실에 더욱 놀라 '그게 왜 뉴스가 되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인도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같은 위치의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밑에서 올려다보는 일은 인도에서 볼 수 없습니다." -79.결혼부터 일상까지 모든 인도 사람들의 삶을 엄격하게 규율하는 카스트 제도를 몸에 밴 겸손으로 한꺼번에 흔들어버린 사건이었다. 연출을 시도한 시설 관계자들은 신발 끈을 묶어 줄 생각을 못했다.
반면,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몸에 밴 겸손으로 뜻하지 않게 인도를 놀라게 했다. 대조적인 양측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갖는 힘을 생각한다. 돈만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 장면은 연출로는 나오기 힘들다.
<토토의 눈물>에는 빈곤 포르노 연출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이 또 있다. 대개 모금 운동 단체들은 아동을 대상화한다. 먹여주는 것을 힘없이 받아먹고, 가슴에 안겨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고, 인형을 받아서 즐거워하는 모습 등으로 말이다. 반면,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오랫동안 구호 현장을 돌아다니며 내켜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다가서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은 먼저 다가온다.
수단에서 적십자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다섯 살 어린 아이가 느닷없이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젖가슴을 움켜잡는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에게 약이나 음식만큼 꼭 필요한 게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 친절한 목소리, 안심할 수 있는 품이란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분쯤 지나서 작은 손을 떼어내고,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손을 잡고 말한다.
"이제 됐지? 엄마가 생각난 게로구나. 충분히 만졌으니까 앞으로는 건강하게 살아가야 해!" - 2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