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다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담 이야기 (1)

등록 2003.06.24 05:26수정 2003.07.0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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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선 막국수. 국물 맛이 시원하다. 돈 있으면 돼지고기 보쌈 한접시와 같이 먹으면 더 좋다.

정선 막국수. 국물 맛이 시원하다. 돈 있으면 돼지고기 보쌈 한접시와 같이 먹으면 더 좋다. ⓒ 느릿느릿 박철

16년전, 부활절 앞두고 산마다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아내는 묵은 논에 나가 돌미나리를 뜯습니다. 아침나절부터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신문을 뒤적거리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그래도 점심때는 아직 멀었습니다. 개울에 나가 보쌈이나 놓아 피라미라도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을까 아니면 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뜯어볼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도 정답이 딱 떠오르지를 않았습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하게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먹는 것입니다. 갑자기 막국수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정선읍내 터미널 부근에 “정선막국수” 집이 있는데 맛도 괜찮고 양도 많고 먹을 만 했습니다.

'그래, 읍내에 나가서 막국수나 먹고 오자!'

돌미나리를 뜯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아내는 미나리 뜯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내가 부르니 마지못해 와서는 한다는 말이,

“왜 바쁜 사람 자꾸 불러요? 지금 미나리 새순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세서 못 먹어요.”

툴툴거리는 아내에게 읍내에 나가서 막국수도 먹고, 오토바이가 요즘 자꾸 체인이 헐거워져서 벗겨지는데 손도 좀 보고오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괜히 자기가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못하는 줄 알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똥 폼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여간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단 말야! 그렇게 막국수가 먹고 싶으면 혼자 가서 먹고 오면 되고, 오토바이 고장 난 것 고치러 내가 꼭 가야 돼?”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실까? 당신이 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같이 가자는 것이지, 그리고 막국수를 어떻게 혼자 먹나? 혼자 먹으면 막국수가 목구멍에 넘어 가겠는가?”

내가 믿지도 않을 너스레를 떨자 아내는 마지못해 오토바이 꽁무니에 올라탔습니다. 마을 논두렁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자 들일을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을 하다 잠시 멈추고는 “새댁 사모님요, 어데 가요?” 하고 우리 내외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a 당시 문제의 오토바이. 오토바이 사진이 이것 한장 밖에 없다.

당시 문제의 오토바이. 오토바이 사진이 이것 한장 밖에 없다. ⓒ 느릿느릿 박철

“아! 예, 힘드시지요? 장에 뭐 좀 살게 있어서요.”
날씨는 봄나들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내 허리춤을 꼭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행복이란 게 따로 있나? 이런 게 행복 아니겠나? 마누라하고 장날 막국수 사먹으러 가는 것 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감?'

정선 읍에 도착해서 막국수를 먹기 전에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이르니 속 썩이는 오토바이부터 손을 보는 게 좋겠다 싶어 정선대교를 가로질러 내가 단골로 다니는 오토바이상회를 찾아갔습니다. 오토바이 상회 주인이 젊은 사람인데 활달하고 친절해서 오토바이를 산 이후로 줄곧 그 곳만 다니는 중이었습니다. 오토바이상회 주인은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더니

“야 우리 전도사님 좋겠네요.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겠다 사모님하고 데이트를 하시니 얼마나 좋으실까 그려?”
“빨랑 손 좀 봐 주세요. 체인이 닳아서 그런가? 자꾸 벗겨지네요.”
“걱정을 붙들어 매세요. 체인은 아직 쓸 만하니 팽팽하게 조여 주기만 하면 이상 없어요.”

오토바이상회에서 2-30분 머물렀을까요? 다 되었다고 하길래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능숙한 솜씨로 액셀레이터를 댕겼습니다. 다시 정선대교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데 강바람도 그만이고 경치도 그만이고 기분 쥑여 주더라구요. 점심시간도 얼추 지났겠다 시장기도 돌고 입에서 침도 고이고 빨리 가서 막국수 먹을 걸 생각하며 정선 막국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오토바이를 길옆에 세우고 막국수 집엘 들어갔습니다. 막국수 집 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

a 덕송교회 앞. 아이들과 함께. 아내 배가 남산만하다.

덕송교회 앞. 아이들과 함께. 아내 배가 남산만하다. ⓒ 느릿느릿 박철

“어서 오세요. 근데 전도사님 왜 혼자래요? 사모님은 안 오셨어요?”
“아 예, 안녕하세요? 우리 집사람이랑 같이 왔어요. 곧 들어오겠지요!”

막국수 집 안채에 딸려있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도 아내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길 ‘이 여자가 화장실을 갔나? 오토바이에서 내려 가게에 뭘 사러 들어갔나? 배고파 죽겠는데 왜 이렇게 안 들어와’들어오면 같이 주문을 하려고 앉아 있는데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아내는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막국수 집 아주머니보고 잠시 아내를 찾아갔고 오겠다고 하고 오토바이 헬멧을 벗어 놓은 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토바이는 세워둔 채로 그대로 있고 바깥 화장실에 가서 헛기침을 해도 아내는 없었습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혹시 정선 읍에 나오면 친구목사 어머니네 집에 이따금 들러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거길 간 거 아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며 친구 목사 어머님네 집엘 검사영장도 없이 노크도 하지 않고 들이닥쳤습니다.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권사님! 혹시 우리 집사람 여기 안 왔어요?”
“안 왔는데? 전도사님! 어서 들어와요. 내가 비빔국수 만들어줄게.”
“아녜요. 이 여자가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막국수 집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아내는 없었습니다. ‘오늘이 장날이니. 장 구경을 하다가 정신이 팔린 게 아닌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손바닥만한 정선 시장을 왔다 갔다 하며 찾아보았지만 아내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딱 떠오르는 단어가 ‘행방불명’이었습니다. 나 혼자 막국수 집에 들어가 막국수를 먹을 수도 없고 화도 나고 불안한 생각도 들고 안절부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a 아내가 교회학교 어린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아내가 교회학교 어린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오토바이에서 내리다 인신매매단에 붙잡혀갔나?’
아무래도 벌건 대낮에 그런 일은 없었을 터이고‥. 그러면 아내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내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소리를 못 들었을까? 그런데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내와 사소한 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아이 더 이상 못 살겠어! 서울에 갈거야! 엄마랑 살아야지.”

그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담 이 여자가 정선 읍까지 나왔다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가출을 했단 말인가? 기가 막혔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아내의 가출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럼 탈출구는 두 군데였습니다. 하나는 시외버스 터미널 또 하나는 정선기차역 나는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정선 기차역 쪽으로 몰았습니다. 다시 정선 대교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리 저쪽 끝에서 내가 많이 보던 여자, 그렇게 찾고 있던 여자가 나를 향하여 씩씩거리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진짜 열이 나더군요.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아니 당신! 어디 간단 말도 안하고 지금 어딜 갔다 온 거야? 내가 지금 막국수 집에 갔다가 막국수도 못 먹고 쫄쫄 굶으면서 당신 찾아다니는 중인데 어딜 갔다 지금 나타난 거야!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아내의 눈빛은 독사가 독을 품은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 큰 아이를 몸속에 갖고 있었을 때인데 아내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여자가?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나서 지금 나를 노려보는 거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내는 잔뜩 골이 나서 말 한마디도 안하고 저 혼자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무슨 연애를 구걸하는 놈처럼 기가 죽어

“뭘 잘했다고 말도 안하고 내빼니? 도대체 어딜 갔다 왔어?”

a 덕송리. 아내가 집 앞에서. 산에 잔설이 남아 있다.

덕송리. 아내가 집 앞에서. 산에 잔설이 남아 있다. ⓒ 느릿느릿 박철

그렇게 다리를 다 건너와서 아내가 갑자기 길바닥에 주저앉더니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는 게 아닙니까? 나는 그때 아내가 진짜 어떻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 내가 어디 갔다 왔나 말해줄까? 정말 말해줘? 나 지금까지 오토바이 상회에 있었다. 당신이 주인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더니 나를 태우지도 않고 내빼길래 오토바이 상회 주인아저씨하고 막 불렀는데도 그냥 가더라. 그래서 이 사람 내가 없는 걸 알면 나를 안태우고 왔구나 해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 하도 안 오길래 저 혼자 막국수 먹는가 보다 해서 약이 올라 지금 시장 쪽으로 가는 중이었어. 알았어요?”

그랬습니다. 아내의 말대로 내가 오토바이상회에서 아예 아내를 태우지도 않고 막국수 집에 와서 당연히 아내가 오토바이에 타고 와서 내린 줄 알았고 갑자기 어디 간단 말도 없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두 사람 다 웃었습니다. 다시 정선 막국수 집에 가서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아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에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단 말이야.’ 내가 그 말을 되받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지가 날 두고 가면 어딜 가? 나 없으면 당신은 완전 개털이다!’ 정선 막국수 집 막국수는 여태껏 내가 먹어본 막국수 중에 제일 맛있는 막국수였습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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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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