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을 말해줘도 눈치 못 채더라"

[取중眞담] 특검팀과 취재기자들의 '최후의 만찬'

등록 2003.06.26 14:24수정 2003.06.2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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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의 문패인 '取중眞담'을 오늘만 잠깐 '醉中眞談(취중진담)'으로 바꿔 달아야 할 것 같다.

a 25일 저녁, 특검팀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취재를 해온 50여명의 특검취재기자들과 쫑파티자리가 있었다. 사진은 지난 4월 16일 현판식을 가진 송두환 특검팀.

25일 저녁, 특검팀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취재를 해온 50여명의 특검취재기자들과 쫑파티자리가 있었다. 사진은 지난 4월 16일 현판식을 가진 송두환 특검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실 (수사에 관련된 것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흘렸는지 아나. 특종도 줬다. 며칠 전 (00일보) 수습기자가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 '1시간만 자고, 4시간은 일해요. 30분은 멍하니 있죠'라고 했지. 근데 눈치 못 채더라. 이게 특종 아냐.. 오늘 이거 발표했잖아." (1시간은 정부 몫 1억달러, 4시간은 현대측 자금 4억달러, 5천만불은 현물지원 의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당일(25일) 저녁, 그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취재해 온 50여명의 특검 취재기자들과 쫑파티 자리에서 한 검사는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좌중을 웃겼다. 기자들이 달라붙어 그렇게 물어보아도 입에 자물통을 채운 듯하더니, 막상 입을 여니 청산유수다.

이 자리에는 송두환 특검을 비롯해 김종훈 특검보, 박광빈 특검보, 김승교 변호사, 이인호 변호사, 박충근 부장검사, 박진만 검사, 이병석 검사 등 특검팀 관계자 10여명과 특검기자실에 상주하면서 취재를 해온 23개 언론사 기자 50여명이 참석했다.

23개 언론사가 갹출해 사무실 얻어 기자실로 사용

언론으로서도 이번 특검취재는 특이한 사건이었다. 23개 언론사가 돈을 모아 최초로 취재사무실을 얻었다는 것부터 기록될 만한 것이다. 특검사무실은 대치동 해암빌딩 14, 15층에 자리를 잡았고 기자들은 1층에 기자실을 만들었다. 어느 언론사 경리담당자는 "건물주를 윽박질러서 사무실 하나 차고 들어가면 되지, 무슨 돈을 내느냐"고 말해, 비용을 청구한 기자를 당혹케 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쫑파티 장소는 특검사무실과 기자실이 입주한 건물 1층의 고깃집. 그동안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수사팀과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기 위해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겼던 기자들간의 공식적인 '최후의 만찬'(?) 자리였다. 특검팀에서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어도 기자들끼리도 그 동안 서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왔던 터라 다같이 모여 한잔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식사를 시작하기 앞서 맥주를 채운 잔을 들고 송 특검은 "그 동안 저 개인으로서는 90여일 특검수사를 진행해오면서 (언론보도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왔다"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특검팀과 함께 해온 기자들도 많은 고생을 했고 그 노고에 수고했다는 말로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대북송금 특검을 포함해 총 4번의 특검이 있었다. 그 중 이번 특검처럼 정치적인 논쟁과 시비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또 검찰수사를 넘겨받았던 이전과는 달리 맨땅에서 출발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장인 송 특검의 심경이 어땠을 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송 특검은 평소 잘 마시지 않았던 술을 이날은 사양하지 않고 들이켰다. 그리고 기자들에게도 계속 술을 권하면서 수사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특히 송 특검은 '정부측 1억불' 부분을 특검이 공개했어야 했나라는 질문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부분"이라며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김대중 정부가 국민들에게) 미리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면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특검팀에서 기자들과 맞닥뜨리며 언론에 집중 공세를 받았던 인물은 김종훈 특검보. '날아다니는' 기사를 보면서 '국익을 위해 자제해달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다. 김 특검보는 시원섭섭한 듯 양주 1명을 시켜 기자실 간사와 폭탄주 한 잔 씩을 마셨다. 이런 기자들에게 김 특검보는 "김영완씨 부분은 계속 추적해야 한다"면서 "이것은 언론의 사명"이라고 과제물까지 남겨줬다.

기자들은 이리저리 특검관계자들 주변으로 옮겨가며 수사 중 뒷이야기를 하나둘씩 담았다. 또 특검수사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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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술잔을 들고 찾아간 기자에게 한 특검관계자는 "'빅브라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아 귀를 쫑긋하게 했다. 박지원씨의 150억원 수수의혹과 관련된 김영완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문제에 대해 해명한 직후에 출국을 했고, 또 하나의 중요인물인 임태수씨도 노 대통령이 특검법을 공표한 바로 그 무렵에 출국을 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관련자들을 움직이는 고수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는 "특검 때문이거나 노 정권 출범 이후 다가올 구 정권에 대한 수사를 예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수 앞을 보기도 바쁜 우리 입장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미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독 이 자리에서 말이 많았던 특검팀 관계자들이 있다. 이들은 바로 특검수사팀 검사들. 언론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고 묵묵히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은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것이다. 오죽했을까. 특검사무실 문 밖에서 뻗치는 각 언론사 수습기자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으며, 70일 동안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장만을 바라봐야 했으니. 이들은 이날 따라 술도 많이 마셨다.

특검 파견 검사들,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아

특히 술이 얼큰하게 취한 한 검사는 최근 발행된 D시사주간지의 기사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직접적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잠시 특검팀 검사들이 심한 불만을 가졌을 D시사주간지의 '막바지 특검의 특별한 고민'이란 제하의 기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특히 검사들이 불만을 나타냈을 부분.

"이번 특검은 아마추어다. 정치적 사건 경험이 전무한 강력부 검사들로 채워져 무턱대고 사건을 파헤치고만 있다." 한 핵심 변호인의 현 특검팀에 대한 불만이다.

한 파견검사는 "사실규명이라는 차원에서 많은 것을 밝혀내기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는 정말이지 (끝까지) 하려고 했던 마음이 강했다"면서 "언론에서 그런 걸 무시하고 검사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고 기사뿐만 아니라 수사에 미련이 있음을 표현했다.

수사기간 내내 화통함을 보여줬던 한 검사는 "150억 비자금 부분에 대해 검찰에 맞겨준다면 내가 나서서 한번 밝혀보겠다" 며 사건을 마무리짓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특검수사에 파견나온 검사로서 느끼는 소회도 느끼게 했다.

한나라당이 새로 제출한 특검법안에 대한 얘기도 빠질 수 없었다. 한 관계자는 "특검법안이 5개 안이 있던데, 150억원 부분과 구정권의 비리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것이야 정치권에서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다만, 대북송금 문제에 대해 다시 하겠다는 것은 솔직히 그렇다. 다시 해봐야 그에 대해서는 더 나올 것도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흰 머리의 개똥철학자 박 특검보

a 흰 머리의 '개똥철학자' 박광빈 특검보. 사진은 지난 5월 28일 박 특검보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브리핑 모습.

흰 머리의 '개똥철학자' 박광빈 특검보. 사진은 지난 5월 28일 박 특검보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브리핑 모습. ⓒ 오마이뉴스 유창재

특검팀의 숨겨진 핵심 인물 박광빈 특검보. 그는 70여일 동안 보여줬던 '한결같은' 모습을 이 자리에서도 보여줬다. 한결같은 모습이란 '모르쇠'로 입을 꾹 잠갔다는 것. 흰 머리를 한 박 특검보는 시종일관 웃는 모습으로 기자들을 대했다. 그가 늘어놓는 '개똥철학'이 담긴 말에는 강력부 출신 검사였다기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종교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지구의 법칙에 따라야 해. 넘치지도 않고 앞서지도 않고 주어진 일에 충실히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야.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언젠가는 받게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묻자)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어, 부채를 들고 있어야지…(웃음)"

그는 어느 자리에서건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계영배'와 같은 입장을 지키겠다는 삶의 철학을 수습기자들에게 종종 전하곤 했다.

이날 밤 10시경, 회식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송 특검은 "최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최선의 결과를 발표했다'"면서 "정말 아쉽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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