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모기와 모기장 이야기

등록 2003.06.29 06:42수정 2003.06.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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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가 지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비는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날씨가 꾸물거린다. 여름장마가 일찍 시작되면 그만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무더운 여름철 한 낮 더위만 피하면 그럭저럭 지낼 만 하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모기의 공격에는 꼼짝 못한다. 총칼을 들고 모기와 싸울 수도 없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를 피해 숨는 것이다. 해가 질 무렵부터 모기들이 서서히 출현한다. 공해가 없고 오염이 덜된 곳일수록 모기가 많다. 모기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이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 싸여있는 도시보다 시골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교동 섬은 사면이 바다이다. 숲이 많고 논과 물웅덩이가 많다. 모기가 알을 까고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교동은 북한 연백과 대치하고 있다. 해병대가 불철주야 주민들의 안위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교동 사람들은 이곳 모기를 해병대모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무섭다. 조금 과장하면 군화가죽도 뚫고 피를 빨 정도로 모기의 공격이 무섭다. 여름철, 밤에 잠자다 모기에게 물리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윙-’ 하고 모기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모기를 잡느라고 야단법석이다.

a 아내와 은빈이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내가 사진찍는 걸 알았다면 기겁했을 텐데.

아내와 은빈이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내가 사진찍는 걸 알았다면 기겁했을 텐데. ⓒ 느릿느릿 박철

무더운 여름철, 모기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모기장을 치고 자는 것이다. 모기장을 치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다. 모기장을 치고 누우면 꼭 숲 속에 캠핑을 온 기분이 든다. 창문에 방충망을 했으므로,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그러면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가 안 된다. 전기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람과 자연의 바람은 조화와 생화와의 차이이다. 에어컨 바람은 사람 몸에도 안 좋고, 생체 리듬을 깨뜨리고 사람을 허약하게 만든다. 당장은 시원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전기바람은 자연과 어울릴 수 없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연애편지처럼 감미롭고 달콤하다. 오장육부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너무 오래 창문을 열어 놓으면 감기에 들 수 있으므로 새벽에는 창문을 닫아주어야 한다.

모기장 안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은빈이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은빈이는 이 책 저 책에서 읽은 동화를 섞어 엉터리 얘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아내는 아이들 걱정을 한다. 아딧줄과 넝쿨이의 교육문제에 관해서이다. 애들을 육지로 보내야 하느냐 마느냐? 애들 엄마로서 흔히 가질 수 있는 고민이다.


얘기를 하다가 침묵하기도 한다. 잠이 든 줄 알았는데 아니다.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모기장 안이 달빛으로 아주 어둡지는 않다. 논에서는 개구리가 합창을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른다.

“개골개골 개골개골 개개골….”

개구리가 곧 숨이 멎을 것처럼 노래를 한다.(?) 그러나 개구리 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전혀 성가시지 않다.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이다. 내 아이들이 무더운 여름철 개구리 자장가를 들으며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참 감사하다.

아내와 은빈이가 아무 말도 안 한다, 잠들은 모양이다. 내가 살짝 불러본다.
“여보, 자?”
“은빈아, 자니?”

대답이 없다. 누워서 오늘 하루를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나를 부른다.

“여보 자요?”

나도 대답을 안 한다. 은빈이가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가 들린다. 또 애들 방에서는 두 아들 녀석의 코고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개구리들은 더 크게 “개골개골…”거린다.

한밤중 모기장 안이 참 행복하고 평화롭다. 고즈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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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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