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마당가에 방아대를 심으며

임종헌의 <계명산 통신>

등록 2003.07.01 07:00수정 2003.07.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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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당에 갔다가 밤늦게 들어온 아내가 방아대 몇 포기를 들고 왔다. 왠 방아대냐고 물으니 같은 성당에 다니는 교우 한 분이 가져다가 심으라고 주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언젠가 나는 '어느 방아대와의 인연'이란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내가 늘 지나다니는 산책길 돌담밑에 방아대가 한 포기 자라고 있었는데 무심한 주인이 자꾸만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돌담길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방아대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가슴을 졸이곤 했다. 주인에게 이 풀이 훌륭한 향신료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날 그곳을 지나가는데 방아대의 밑둥이 싹뚝 잘려져 나간 것이 아닌가! 10여년 이상이나 긴 세월 정이 들었던 방아대가 보이지않자 나는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 돌담길을 지나가다가 보니 무언가 낯익은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바로 방아대였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왔다.'

'인연이란 무엇인지'로 끝나는 이 글을 이혜숙님이 보았던 모양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남편은 마침 사무실 앞에 방아대가 많이 자란다면서 몇 포기를 캐어서는 나에게 전해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방아대를 받으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방아대를 내 곁에 가까이 두고 보라는 속깊은 뜻이 담긴 선물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들러 방아대를 심을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파트 화단에는 심을 수 없다고 한다. 할 수없이 나는 방아대를 들고 고향인 천등산자락으로 달려갔다. 마침 고향집에는 아버지가 계셨다. 어머니는 서울에 사는 딸네집에 다니러 가시고 안 계셨다. 내가 방아대를 마당가 이곳저곳에 심으니 아버지는 무엇을 심느냐고 물으신다. "방아대에요"하니 아버지도 방아대를 모르시는 것이다. 그래서 방아대는 추어탕이나 생선매운탕을 끓일 때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 주는 풀이라고 설명을 해드렸다.

다 심고 보니 열 대여섯 포기는 되는 것 같다. 한 포기 한 포기마다 정성을 다해서 물을 주었다. 방아대를 전해준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방아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흙을 그러모아 북도 돋아 주었다. 방아대를 심으면서 나도 모르게 흥겨워졌다. 얼마전 산책길 돌담을 지나다 보니 오랜 세월 인연을 맺었던 그 방아대는 영영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어찌나 진하던지. 오늘 방아대를 고향집 마당가에 심고나니 그 서운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시는 것 같다.

고향집을 떠나오면서 동네 어귀에서 생전에 할머니와 친구로 지내셨던 이웃집 할머니를 만났다. 인사를 드리니 나를 몰라본다. 팔십세를 훌쩍 넘긴 세월의 흐름이 나를 기억의 망각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도 이젠 이 세상과의 인연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끼겠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자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이도 귀여워해 주셨는데. 이젠 세속에서의 인연도 끝나가려 하는 것이다.

인연이란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인가 보다. 내년 이맘쯤에는 고향집 마당에도 방아대가 무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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