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야생초 편지>, 생태적 관점을 찾아가는 이정표

등록 2003.07.01 10:35수정 2003.07.01 14:26
0
원고료로 응원
'잡초'와 '야생초'. 이 둘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서로 '다른' 이름들이다. '잡초(雜草)'는 흔히 좋지 못한 것들을 지칭할 때 '잡스럽다'라는 의미로 붙는 '잡(雜)'이라는 접두어에 '풀(草)'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단어이다. 때문에 그 명칭에 이미 어느 정도 비하(卑下)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야생초(野生草)'는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일컫는 용어로, 비교적 중립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명칭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명명법(命名法)은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들 각각의 단어에 내재한 의미를 따져보면, 이 두 명칭 사이에는 그 이름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커다란 의미의 간극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흔히 언어가 사회 속에서 통용되면서, 사람들에게 그 표현의 본래적 의미보다 비유적 속성이 더 잘 알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면서도 '잡초'는 제거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인식되고, '야생초'는 '야생동물'이나 '야생조류' 등과 같이 보호받고 간직해야 할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떠한 명칭을 쓰느냐에 따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인의 행태를 들어 사용된 '잡초 정치인'이란 표현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마도 그렇게 지칭된 사람들이 과거에 행한 자신들의 행태야 어떻든, '잡초'라고 폄하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는 알게 모르게 이미 사회적 의미가 착색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잡초'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보살핌이나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지천으로 피어나 살아가고 있는 식물이다. 이것은 향기나 모양이 좋아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화초(花草)'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쓸모 없이 피어있는 '잡다한 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잡초라는 단어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자세를 일컬어 '잡초같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여 성공한 사람을 일컬어 스스로 '잡초같은 인생'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렇게 '잡초같다'라는 말이 일견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야생초'라는 단어는 '잡초'에 비해 가치 중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야생초'는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생하여 자라는 풀을 일컫는 단어이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인 황대권은 '잡초'라는 말 대신에, '야생초'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야생초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다만 '그것들의 가치를 우리 인간들이 잘 모르'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로운가 하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일부의 식물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식물들은 그저 '쓸모 없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식물들은 인간들과는 무관하게 자연 속에서 서로 어울리며,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충분히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야생초'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저자인 황대권은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5공화국 시절 '간첩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수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5년에 걸친 기간 동안 단식과 밀서 날리기 등을 비롯하여 옥중에서 각종 투쟁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에게 남겨진 것은 3년의 추가 징역과 망가진 몸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투쟁 과정에서 망가진 몸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자연요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변변치 않은 의료시설로 인해 치료의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었던 까닭에, 감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풀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나아가 각종 풀들을 가꾸고 관찰하고, 주위의 사물들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인위(人爲)'가 아닌 '자연(自然)'의 가치에 눈뜨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체득한 저자가 점점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주의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실상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미미한 존재일 따름인 풀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에게 풀이라는 존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계기는 아마도 그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때로는 도시의 아스팔트나 커다란 바위 위에서도 싹을 틔우는 풀의 생명력은 정말 경이롭기까지 할 정도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에서 보듯이, 풀은 비록 하찮은 미물이지만 비바람과 같은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환경미화(?)를 위해서 한 번씩 화단의 풀들을 싹 잘라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성하게 풀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청소를 하는 관리인들에게는 끈질기게 자라는 풀들이 그저 귀찮은 존재이겠지만, 야생화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나에게는 이제 그 모든 식물들이 학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간혹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갈 때면 각종 식물들이 수록되어 있는 도감들을 손에 들고, 주변에 자라고 있는 풀들의 이름을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한 관심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이 책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야생초 편지>를 접하면서 주변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풀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지난 어린이날 무릉계곡에 갔다가 아들 몫으로 받아온 땅채송화가 심겨진 화분을 키우면서, 어느 때부턴가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잡초'라고 여기고 금방 뽑아버렸겠지만, 그냥 두고 같이 기르기로 하였다. 그런 생각으로 매일 바라보았더니, 땅채송화와 함께 자라고 있는 풀이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도 매일 작은 화분에 물을 주면서, 그것들이 자라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감옥에 있는 동안 저자의 누이동생에게 썼던 편지글들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아마도 편지를 보내는 동안에 저자의 주된 관심이 풀을 가꾸는 것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도 감옥 생활에서의 일화와 풀에 얽힌 저자의 문제의식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오랜 동안 자연 속에서 자신이 관찰하고 생각한 것들을 편지라는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글의 형식은 누이에게 보낸 편지로 되어 있지만, 어쩌면 저자가 야생화와 더불어 생활하면서 깨친 것을 스스로에게 남기고 싶었던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감옥에서의 생활이 이 책에서 다소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무언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그 세계란 바로 야생초를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과 사유의 장(場)이었던 것이다.

흔히 누구나 오랜 동안 어떤 주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는데, 그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 경우에는 친구나 선후배를 붙들고 내 자신이 생각한 바를 털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생각의 흐름이 말끔하게 정리되곤 하던 경험이 있다. 저자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감옥에서 지내면서, 풀을 통하여 발견한 진리를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했던 저자의 심정이 저절로 떠오를 듯 하다. 저자는 1년에 한두 차례 사회 참관을 나가거나, 혹은 다른 장소에서 새로이 발견한 풀을 얻기 위하여 애를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들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이 책에는 몇몇 야생초의 경우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삽화로 제시되어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림과 야생초 돌보는 일로 소일했던, 저자의 그림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야생초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남달랐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독자로서의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열린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저자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감방 안에서 마주치는 거미와 모기, 화단 주위에서 발견한 사마귀와 개구리, 심지어는 밤에 바라보는 들쥐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대상들은 따뜻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여겨진다. 주변의 자연을 주시하면서, 그 가치를 체득한 저자가 '생태주의자'가 되는 것은 그리하여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얻게된 또 하나의 즐거움은 나의 주변을 보다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시간이 나면 어린 아들과 산책을 하면서, 주변에 자란 풀들을 새롭게 찾아다니곤 한다. 아이에게 가르쳐주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실상 나 자신에게 거듭 기억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때로는 각종 야생초들을 뜯어서 아내에게 건네주고, 반찬으로 먹을 수 있도록 나물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돌나물이 한창일 무렵에는 잔뜩 뜯어다가, 여러 가지 식물들과 함께 물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나물들을 사다가 먹었지만, 이제는 시장에서 사먹지 않아도 식탁이 제법 풍성해지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도 우리 주변의 자연 속에서는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풍성한 자연 환경 덕분에 우리 가족의 마음이 보다 넉넉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아마도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다면, 이 책을 보면서 그저 부러움의 시선으로만 여기게 되지는 않았을까?

지방의 소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자연과 가깝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때에, 환경문제는 그렇게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실상 자연 속에서 쓸모 없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인간 자신들의 관점이 그렇게 여기게 할 따름인 것이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 201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어떤 고위 공직자에게 하고 싶은 말 "ㄱㅈㄱ ㅅㅅㅇ ㅈㅋ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