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노래방 술자리에 부녀회장은 없었다

[분석] 공직자의 윤리와 정치인의 거짓말, 그리고 진실찾기

등록 2003.07.04 10:00수정 2003.08.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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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J다방과 S노래방. 주인은 군수의 고등학교 선배로 밝혀졌다.
문제의 J다방과 S노래방. 주인은 군수의 고등학교 선배로 밝혀졌다.오마이뉴스 조호진
거문도 사건을 처음 보도한 언론은 KBS '9시 뉴스'. 이 방송사는 지난 98년 3월 28일 '현장추적' 코너에서 "빚 천만원 거문도"라는 제목으로 섬에 팔려온 10·20대 소녀들의 인신매매 현장을 고발했다.

당시 앵커는 "억지 빚을 지고 팔려온 20대 접대부들은 윤락까지 강요당하고 있고 그들의 고객 가운데는 현직 군수까지 끼어 있다는 사실이 저희 KBS 취재로 드러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강조했다.

현장에 출동한 기자는 인신매매된 여성들이 거문도에 감금된 채 윤락을 강요당하는 상황과 빚지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거문도에 팔려온 지 두 달 된 정모 양의 일기장 일부를 공개하면서 "이웃 지방 현직 군수도 정양의 티켓영업 고객"이었다고 폭로했고 정양은 "돌아가면서 폭탄주 마시고 너그들 오늘 군수 아저씨 책임"을 강요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다음은 당시 KBS 9시 뉴스 현장추적의 보도내용 전문이다.

앵커 "억지 빚을 지고 팔려온 20대 접대부들은 윤락까지 강요당하고 있고 그들의 고객 가운데는 현직 군수까지 끼어 있다는 사실이 저희 KBS 취재로 드러났습니다. 현장추적, 오늘은 창원방송총국 천현수 기자가 취재한 내용입니다.

기자 "여수에서 120km 떨어진 거문도 주민은 980명뿐인데 유흥업소는 20여 개입니다. 직업소개소 꾐에 빠져 억지 빚을 지고 팔려온 가출소녀 박모 양."

박양 "처음에는 이렇게 빚지는 덴 줄 몰랐고요. 돈 억수 많이 버는데 라고 하면서…."


기자 "박양이 팔려 다니며 감금당한 방입니다. 쇠창살 속에 감시를 당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박양의 빚은 모두 천 백 만원. 다방을 6번 옮겨준 소개비라며 420만원. 옷값, 투숙비가 280만원, 도망가 붙잡는데 쓴 추적비라며 400 만원을 떠안겼습니다.

박양 빚이 천 만원을 넘어서자 소개업자끼리 팔아넘겨 거문도까지 넘어왔습니다. 박양처럼 팔려온 접대부가 이 섬에만 20여명. 대부분 가출 10대들입니다. 정모양도 이 섬으로 팔려와 윤락행위까지 강요받고 지낸 지 두 달입니다.


정양 "중요한 손님이면 있잖아요. 가라고, 돈 많이 얻어 준다면서…."

기자 "정양의 거문도 애환을 담은 일기장, 이웃 지방 현직 군수도 정양의 티켓영업 고객입니다."

정양 "돌아가면서 폭탄주 마시고 너그들 오늘 군수 아저씨 책임지라면서…."

기자 "보수는 두 달에 100만원이고 하루 16시간은 일해야 합니다. 초고속 페리호로 1시간30분이나 걸리는 섬이기 때문에 한번 팔려온 사람은 다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운 좋게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1년에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찰은 박양 등 10대 들을 팔아 넘긴 일당 가운데 39살 김모 씨를 검거해 구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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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9일 보도] 거문도 사건의 진실은? "내가 다방아가씨 불렀다"

다시 돌아보는 98년 거문도 사건 :
정양의 발언 "돌아가며 폭탄주, 오늘 군수 책임지라면서…."


군수 일행은 폭풍에 발이 묶이자 이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
군수 일행은 폭풍에 발이 묶이자 이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오마이뉴스 조호진
이른바 '거문도 사건'은 당시 군수와의 술자리 등에 동석했던 강광웅(54·여수시 삼산면 초도리)씨가 법정 증언에 이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승용 전 군수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언을 하면서 새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강씨와 함께 군수와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김모(39·여수시 삼산면 초도리)씨 또한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사실확인 진술서'에서 군수 측의 주장 일부를 뒤집는 진술을 했다.

김씨는 거문도 사건 당시 군수와 두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며 "참석자들은 (다방) 아가씨들과 돌아가며 부르스를 추었고, 주승용 군수도 이 아가씨들과 춤을 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주승용 군수 등과 패스포트로 만든 폭탄주 17잔이나(김씨 몫) 마셨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증언·진술과 주승용 전 군수의 주장은 정면으로 배치된다. 주씨는 <호남매일>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래방에 부녀회원이 있었다" "학교 선배(노래방 주인)가 패스포트 한 병 가져왔다" "다방아가씨가 얼음을 가져와 서비스를 하게 됐으며 유지들과 노래부르고 논 것이 전부다"고 주장했다.

주씨는 지난해 7월 검찰에서 "당시 참석자들이 연세가 많고 젊잖은 유지 분들이고, 또한 부녀회장을 비롯한 여성도 약 4∼5명 정도 참석하였기 때문에 유흥을 즐길 수도 없었고, 더구나 윤락을 강요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주씨는 또 "노래방에서 아가씨가 따라주는 술 한잔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폭탄주를 마신 사실도 없다"고 거듭 진술했다. 주씨는 이와 함께 "(<호남매일> 기자들이) 명예를 훼손하고 비방하여 선거에서 낙선시킬 목적으로 (거문도 사건 기사를) 게재한 것"이라며 이들 기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확인·취재한 결과 당시 부녀회장이었던 황모 씨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당시 노래방에 있었다고 법정 증언한 당시 부녀회 총무 김모 씨도 사건 당일인 첫날에는 노래방에 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황씨는 지난해 12월 2일 "부녀회원들은 그 당시 제가 가자고 해야 가고 그랬지, 회원들은 그 때 안간 걸로 알고 있다"면서 "오전에 부녀회원들하고 회의석상만 갔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군수와 노래방에서 놀기는 했지만 "(문제의) 첫째 날에는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녀회장은 노래방에 없었다

문제의 S노래방 입구. 98년 태풍으로 발이 묶인 밤, 군수 일행은 이곳에서 5시간 가량 놀았다.
문제의 S노래방 입구. 98년 태풍으로 발이 묶인 밤, 군수 일행은 이곳에서 5시간 가량 놀았다.오마이뉴스 조호진
결정적으로 주씨의 주장은 새로운 증인이 등장하면서 뒤집히고 있다.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강광웅 씨는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1)(주씨가) 폭탄주를 제조해 돌렸다 (2)부녀회원은 없었다 (3)(주씨가) 다방아가씨와 춤을 추고 놀았다 (4)3차에 걸친 술자리를 가졌다 (5)술자리에서 인사청탁에 응했다 (6)내가(강광웅) 다방 아가씨를 여관에 부른 뒤 군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여관을 빠져 나왔다고 증언했다.

<오마이뉴스>는 강씨의 증언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주승용씨로부터 반론을 듣기 위해 지난 2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주씨는 완강하게 인터뷰에 응하기를 거부했다.

주씨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이게 무슨 큰 사건이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검찰이나 재판부에 이야기해라"며 "나는 인터뷰하고 싶은 맘도 없고, 당신들 내 가정을 파괴하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거칠게 말한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면 주씨는 왜 그 자리에 없었다는 부녀회원을 등장시켰을까? 이 사건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당시 술자리에) 부녀회원들이 함께 있어서 부도덕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없었던 부녀회원을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 섞인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술자리가 3차까지 이어졌다는 증언과 달리 주씨는 이 노래방에서 양주 한 병(일부 주장에서는 두 병)이 들어왔고 자신은 한 잔만 마셨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사건의 파장을 줄이기 위한 거짓 주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의혹을 갖는 관계자의 시각이다.

거문도 사건은 정치인의 정직성 재는 시금석 될 것

아름다운 섬 거문도가 5년 전 사건 공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거문도와 육지를 오가는 배안에서 바라본 거문도 전경.
아름다운 섬 거문도가 5년 전 사건 공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거문도와 육지를 오가는 배안에서 바라본 거문도 전경.오마이뉴스 조호진
선진국 국민들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거짓말에 매우 엄격하다. 거짓말을 한 사실이 탄로 나면 그 날로 정치생명을 끊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거짓말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거문도 사건에 대한 의혹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고위 공직자가 섬에 팔려온 어린 여성과 유흥을 즐겼는지 여부, 또 다른 하나는 조직적인 거짓말로 치부를 감추었는지 여부다. 처음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난 현재, 이 사건의 초점은 전자에서 후자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반론 인터뷰 요구를 거부했던 주씨는 2일 기존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2003년 6월 30일자 오마이뉴스 강광웅 인터뷰에 관한 나의 입장'을 발표했다.(별도 관련기사 참고)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대한 해명 성격인 주씨의 글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한 강광웅씨의 증언과 전면 배치된다. 따라서 두 사람 중 한 명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거문도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게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한두 명이 있었던 밀실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자그만치 20여 명이 있었던 자리였다. 지역민들은 군수가 됐든 기자가 됐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정확한 수사로 5년의 공방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사법당국에 주문하고 있다.

KBS는 당시 현직 군수도 티켓영업 고객이었다고 못박아 보도했다. 거문도 사건 한쪽 관계자들은 KBS측에 "어떤 근거로 현직 군수가 티켓영업의 고객이라고 못박아 보도했는지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진실규명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 보도 이후 사건에 대한 파문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내년 총선 출마의사를 밝힌 주승용씨와 '거문도사건' 보도 등으로 인해 실형선고를 받았던 두 기자는 각각 정치생명과 명예회복을 걸고 양보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문도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고, 또 '진실의 승리'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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