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도장 찍자마자 화장실 직행하는 여성들

[화장실 르포] 남성과 여성은 화장실의 쓰임새가 다르다?

등록 2003.07.03 09:43수정 2003.07.0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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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황방열·박형숙·김영균·김지은·권박효원·이승훈·최유진 기자

3일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빌딩의 화장실에서 여직원이 컵을 씻고 있다.
3일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빌딩의 화장실에서 여직원이 컵을 씻고 있다.오마이뉴스 김지은

<3신:3일 오후 6시20분> 정리: 김지은 기자

"공용컵 없애고 종이컵을... 자발성 발휘해야"
[화장실 르포 그후] <오마이뉴스> 직원들의 '한낮 좌담'


"그래 나보고 설거지하라는 거가? 내 집구석 설거지도 안 하는데. 죄 없는 나한테 와 그라노? 하하…."

문화를 담당하는 노총각 홍성식 기자의 우스개다. 화장실 르포의 대안을 찾아 보자며 모인 자리에서 그는 너스레로 첫마디를 뗐다. 홍 기자는 의도를 정확히 맞혔다. 맞다. 서로 설거지 하자고 모인 자리다.

3일 오후 1시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사무실 근처의 한 식당에 모여 즉석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오마이뉴스>에 상근하는 사회부·편집부의 기자들이 참여했다. 사회부만의 회의였으나 편집부 기자들도 동석했다.

정운현 편집국장을 비롯해 김병기 사회부장·김경년 편집부장 등 이른바 '간부'들도 참석했으니 편한 자리만도 아니었다. 토론한 기자는 총 13명. 굳이 남·녀 비율을 따지자면 여기자 3명, 남기자 10명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견의 축은 '성'이 아닌 '나이'였다. 세대에 따라 기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맥주와 함께 시작한 '한낮 토크'… 그러나 뜨거웠다

3일 낮 1시. 열띤 '한낮 토크'를 벌이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들.
3일 낮 1시. 열띤 '한낮 토크'를 벌이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들.오마이뉴스 김지은
일단 기자들은 화장실 르포 기사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모르는 기자도 있었다.


"글쎄… 우리 회사도 공용컵이 있나?"
"○○씨가 관리하는 것 아닌가?"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하자 정운현 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비교적 기성세대랄 수 있는 정 국장은 "화장실 르포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누군가 해야될 일이라면 지금처럼 전담하는 게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놨다.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권박효원 기자였다.

"누구나 해야될 업무라면 왜 꼭 여성들이 해야 하나요? 오늘 화장실에서 만났던 여성들도 대부분 사무직원이거나 경리를 보고 있는 여성이었어요. 저는 나눠서 할 수 있다면 직원들이 서로 분담하는 게 옳다고 봐요."

곧장 홍성식 기자가 반격했다.

"컵 설거지를 돌아가면서 분담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홍 기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태욱 기자가 이견을 냈다. 한 기자도 홍 기자와 같은 남성. 둘은 불과 두 살 차이다.

"예전에 <참여사회>의 경우에는 이 일을 남자건 여자건 직원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맡았어요. 서로 이 일을 외면하다보면 지저분해지고 누군가 한 사람이 부당하게 전담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이에 권박효원 기자를 비롯 20대의 젊은 기자들이 동의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들고 나는 시간이 불규칙적인 취재기자들이 많은 우리 회사의 특성상 잘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공용컵을 없애고 손님들에게는 1회용 종이컵을 주는 게 어떨까?"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토론. "우리도 컵 다 깨고 그냥 1회용 쓰자"는 농반진반의 의견도 나왔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토론. "우리도 컵 다 깨고 그냥 1회용 쓰자"는 농반진반의 의견도 나왔다.오마이뉴스 김지은
정 국장의 해법이었다. 국장은 이를 최선의 대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권박 기자는 '차선'이라고 부연했다. 1회용 물품 사용이 늘어나니 환경에도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 뒤 김영균 기자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자발적으로 공용컵을 관리하게 하면 되지 않나? 회사 내에 '자발적으로 컵관리를 하자'고 공지하고 이게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 분위기를 돋우면 되지."

다른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 30분 동안의 '한낮 좌담'.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각종 대안이 제시됐고, 화장실 르포의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은 이뤄졌다.

이번 주 내로 <오마이뉴스> 내에는 일종의 캠페인성 공지가 걸릴 것 같다. 약 2주는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 될 것이다. 이 테스트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거는 시험이다. 2주 뒤에는 '역시 안돼. 그냥 종이컵 써!'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제2신: 3일 낮 12시30분> [화장실 르포] 3일 오전 8시30분과 9시30분 사이

[여자 화장실 풍경] "설거지하려 30분 일찍 출근…짜증나도 어떡해"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빌딩 엘리베이터에는 신문 몇 부를 가슴에 안은 여성 2명이 탔다. 이들은 1층에 있는 우편함에서 신문과 각종 우편물을 챙겨서 출근하는 것이다.

이 건물 3층 화장실 세면대 옆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종이컵은 제발 넣지 말아주세요'라는 공지사항이 붙어있었다. 이 화장실에서는 오전 8시40분부터 9시 20분까지 모두 6명의 여성들이 컵이나 행주를 씻었다. 이 중 자기 컵을 씻는 여성은 단 한 명. 나머지 5명은 모두 회사컵이나 다른 직원들의 컵을 씻었다.

컵을 씻는 여성들은 대부분 경리나 사무보조였고, 20대 초반이었다. 회사의 유일한 여직원인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다른 여직원이 없고, 다른 분들은 나이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혼자 일을 맡게 됐다"면서 "컵씻는 일이 귀찮기는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고, 별 다른 대안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컵 5개를 씻고 있던 모 신문지국 경리 채모(22)씨는 컵을 닦고 다른 결재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 아침 남들보다 20분 일찍 출근한다고 한다. 총 8명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채씨는 "처음에 사장님이 각자 씻으라고 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컵 씻는 일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경리인 강모(34)씨는 "당연하게 여자들에게 컵씻는 일이 들어온다"면서 "남자들이 뭐 하냐, 다른 여직원이 들어오면 모를까 업무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강씨는 "불쾌하긴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층의 한 무역운송업체 사무실에서는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컵씻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 전모(25)씨는 "여러 명이 나눠서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면서 "남자 중에는 일반직이 없고 부장급 이상이어서 함께 일을 나누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성이 많은 사무실에서도 컵 씻는 일은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분양 사무실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여성(23)은 "사무실에 여성이 6명 남성이 1명이지만 자기 컵 씻는 사람은 없다"면서 "처음부터 컵 씻고 전화 받는게 일이라 내가 도맡아 씻는데, 하루에 2∼3번씩 씻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 자체는 괜찮은데, 나중에 나이 들어서까지 이렇게 일하고 싶지는 않다, 손님들에게 차 내갈 때 당연하게 받는 모습이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3층에 이어 4·5층도 줄줄이 '설거지 행렬'

같은 시각 이 빌딩의 4층. 보통 사무실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인 탓에 한적한 분위기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은 분주하다.

앳된 모습의 한 여성이 접시에 있는 3∼4개의 컵과 걸레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섰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다. 23살의 이 여성은 4층에 들어서 있는 10개의 사무실 중 한곳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아침마다 설거지하러 (화장실에) 오죠. 직원이 별로 많지 않아서 컵도 3∼4개 뿐이지만 이것도 '일'이예요."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컵을 씻어 내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그가 속한 부서는 기획·관리국. 사무직을 맡고 있지만 '공용컵 관리'는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본인의 업무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부가 업무'다.

"아직도 사무실 직원들의 인식은 차 심부름이나 컵 관리는 '여성'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5층으로 올라가 봤다. 5층 화장실에서도 설거지를 하러 오는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오전 8시40분부터 30분 동안에만 5명의 여성들이 화장실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볼 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거지'를 하러 화장실을 다녀갔다.

한 여성은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살펴보니 그 바구니엔 차를 탈 때 쓰는 숟가락 5∼6개와 커피잔과 머그잔, 행주, 수세미 등이 담겨 있었다. 커피잔 바닥에는 까만 커피 찌꺼기가 끈끈하게 붙어 있었다. 옆의 잔들에도 말라 비틀어진 녹차 티백, 먹다 남은 차 등이 담겨 있었다.

그 역시 익숙하게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컵들을 닦아 냈다. 기자가 물었다.

"본인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매번 씻으려면 화나지 않으세요?"

"짜증나죠. 내가 맡고 있는 일은 사무 업무인데 아침마다 이런 일 까지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우리 사무실은 평직원은 자기 컵을 써요. 여직원들이 관리하는 컵은 간부들이 쓰는 컵이죠."

설거지보다 더 싫은 건 '차 심부름'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25살의 또 다른 여성은 "불과 한달 전만 해도 30개가 넘는 컵들이 모두 여직원의 몫이었다"고 털어놨다. 역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이 여성은 "30여명의 직원들이 쓰는 컵을 매일 아침 여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해왔다"며 "이에 지친 여직원들이 건의를 해 지금은 자기 컵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점은 있는 듯 했다. 그의 손에는 6개의 컵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그는 컵을 바라보며 "이 컵은 임원용 컵"이라며 "아직도 이 컵은 여직원들이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밖에도 이 여성은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같은 직원인데 이런 일을 떠맡기는 걸 보면 여직원은 직원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도 내 일이 있는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니 짜증나죠."

회사 내에서 이런 문제를 공론화 할 분위기는 될까.

그는 "안될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여직원들끼리는 그런 말을 나눠도 차마 남자 직원이나 상사에게까지 말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당연히 (남자직원들은) 안 할 테니까 얘기조차 꺼낼 생각은 안 하지요."

이날 만났던 컵 씻는 여성들은 모두 '차 심부름'도 병행하고 있었다. 본인이 하지 않더라도 손님의 차 심부름은 '동료 여직원의 몫'이었다.

한 여성은 "설거지도 싫지만 더 싫은 건 차 심부름"이라며 "사장부터 손님이 오면 자기가 차를 타서 주고 설거지까지 하면 '아 이 회사는 뭔가 다르구나'하는 인상을 줄 것 아니냐. 다른 직원들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바람을 밝혔다. 하지만 곧 "아직까지 고정관념이 깨지긴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자 화장실 풍경] "컵 씻는 문제까지 신경 쓸 수 있나요?"

남녀 직장인들은 출근시간대 화장실 이용 목적이 다르다? 여직원들이 컵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남성 직원들은 신문을 들고 여유있는 걸음으로 화장실을 찾는다.
남녀 직장인들은 출근시간대 화장실 이용 목적이 다르다? 여직원들이 컵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남성 직원들은 신문을 들고 여유있는 걸음으로 화장실을 찾는다.오마이뉴스 김영균
3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한 빌딩 4층 남자화장실에 한 남성이 들어간다. 한 손에는 칫솔, 다른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다. 비슷한 시각, 반대편 여자화장실로는 양손으로 쟁반을 받쳐든 한 여성이 들어가고 있다. 쟁반 위에는 크고 작은 컵들, 수세미와 세제 따위가 놓여 있다.

"그냥 사무실에 있는 컵을 쓰죠. 여직원 한 명이 다 관리하고…. 컵 씻는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나요?"

볼일을 보고 나오던 한 50대 남성은 "사무실에서 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그런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쓰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사무실에 여직원이 있고, 그 여직원이 컵을 관리하고 닦는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출근시간대 화장실은 언제나 붐비기 마련. 그러나 근무 전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들이 화장실을 찾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컵과 티스푼 등을 챙겨들고 화장실로 향하지만, 남자 직원들은 뒤적거린 신문을 들고 화장실 문턱을 넘는다.

"요즘 사무실에서는 모두 개인용 컵을 씁니다. 하지만 손님접대용 컵은 따로 있죠. 물론 접대용 컵 관리는 여직원들이 합니다."

화장실 세면대에 서서 부지런히 컵을 닦던 또 다른 40대 남성은 사무실에서 자신이 쓰는 '개인용 컵'을 씻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표정은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귀찮긴 하지만 모두들 개인용 컵을 쓰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이러고 있는 거죠."

이날 아침 8시30분부터 9시30분 사이,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이 빌딩 4층 남자화장실을 찾은 남성들은 모두 6명이었지만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의 이 40대 남성만 유일하게 개인 컵을 씻고 갔다. 나머지 5명 중 3명의 손에는 조간신문이 들려 있었고, 2명은 빈손으로 개인 용무만 해결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5층 남자화장실도 비슷했다. 약 한 시간 동안 남자화장실을 찾은 사람은 모두 13명. 칫솔을 문 남성 1명과 개인 컵을 씻으러 온 직원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단순한 용무를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우리 사무실은 인원이 적어 여직원이 다 닦아줍니다. 손님접대와 사무실 관리 등의 일을 위해 고용한 직원이잖아요?"

한 남성은 여직원이 사무실 생활용품을 관리하는게 당연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무실관리를 위해 뽑은 직원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무실에서 '여직원=컵관리'의 등식이 깨져 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면을 하러 화장실을 찾은 한 남성은 최근 바뀌어 가는 사무실 분위기를 전해줬다. 젊은 직원들은, 최소한 여직원에게 컵 씻는 일까지 맡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무실이 군대조직 같지 않나요? 우리 사무실은 손님에게는 종이컵을 사용하고 직원들은 회사에서 컵을 사서 나눠줬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 것을 자기가 닦지만, 간부들 것은 여직원이 닦아주죠."

아침 9시 같은 건물 3층에서 만난 젊은 직장인도 마찬가지였다. 한 대기업 개발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이 아무개(30)씨는 막 컵을 씻어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여직원들이 컵을 씻어오는 일은 전혀 없죠. 모두들 개인 컵을 준비해서, 각자 씻어서 사용합니다. 우리 회사는 특히 개발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외부 손님들이 오더라도 여직원들이 차를 대접하거나 커피를 타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손님들도 그걸 이해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나온 두 명의 남자 직원의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건물 전체가 금연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1층까지 담배를 피러 가는 길이었다. 이들의 반응은 똑 같았다. "컵 씻어 오는 그런 일을 어떻게 여직원에게 시키느냐"는게 두 사람의 얘기다.

하지만 이씨나 그의 직장 동료들과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3일 오전 출근시간대, 같은 건물에서 들여다 본 남녀화장실 풍경은 어느 층이나 비슷했다. 한쪽에서 달그락거리며 컵 닦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다른 쪽 입구에서는 신문을 손에 든 남자 직원이 화장실 문을 나서고 있었다.

<1신:3일 오전 9시40분>

출근도장 찍자마자 화장실 직행하는 여성들
[화장실 르포] 남성과 여성은 화장실의 쓰임새가 다르다?


'와장창'

커피잔·유리컵·머그컵…. 이 컵도 깨지고 저 컵도 깨졌습니다. 지난 99년 민중대회가 열리던 서울 여의도 공원. 대회장 한켠에 모인 여성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심히도 컵을 깼습니다. 땅에 내려 던지기도 하고 망치로 깨기도 합니다.

이는 다름아닌 '컵 깨기 행사'. '운동사회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여성활동가모임'에서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여성에게 당연스럽게 부과되는 '컵 씻기'라는 부가노동을 거부한다"는 취지이지요.

통쾌한 고발이고 도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일이라구요? 과연 이것은 '과거의 일'일까요? 아직도 현실은 이의 연장선인 듯합니다.

@ADTOP@
<오마이뉴스>의 한 직원이 공용 테이블에 비치된 커피를 자신의 컵에 타 마시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한 직원이 공용 테이블에 비치된 커피를 자신의 컵에 타 마시고 있다.오마이뉴스 김지은
지난 6월27일 <오마이뉴스> 사회부 주간회의 현장. 박형숙 기자가 재미있는 기획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화장실 르포'. 남·여 화장실 풍경을 비교해 싣자는 얘기였습니다.

화장실 비화라도 되냐구요? 아닙니다. 여자 화장실에서는 남자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풍경들이 일상처럼 벌어지는데 이를 적나라하게 보이자는 의도입니다.

"아침에 남자들은 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여자들은 컵이 수북히 쌓인 쟁반을 들고 가잖아요. 이 풍경을 보니까 남·녀 화장실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싶더라구. 보통 사무실에서 여자들이 으레 컵을 '담당'하잖아요. 이거 기사화할 필요 있지 않아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들어서 있는 빌딩만해도 아침만 되면 으레 이곳 저곳 사무실에서 여직원들이 컵쟁반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섭니다. 물과 커피 마시기는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진데 뒤처리는 왜 '여성들의 몫'이어야 할까요?

<오마이뉴스>는 3일 이런 현실을 파헤칩니다. <오마이뉴스>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 빌딩의 화장실을 급습합니다.

(* 화장실 르포 기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당신의 사무실은 어떻습니까
<오마이뉴스>는 이랬습니다

▲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비치된 공용컵.
ⓒ오마이뉴스 김지은
박형숙 기자가 '화장실 르포' 기획을 내자 사회부원들의 의견이 잇따랐습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아?"

'자아비판'부터 해보자는 얘기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회부 기자들의 '실태조사'부터 했습니다. 현재 <오마이뉴스>에 상근하는 사회부 기자는 부장을 포함, 총 11명입니다. 이중 여기자가 3명, 남기자가 8명입니다.

일단 사회부 '점수'는 양호했습니다. 11명 전원이 모두 "내 컵이 따로 있어 스스로 관리한다"거나 "공용컵이라도 쓴 후엔 직접 씻어서 갖다 놓는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부장을 비롯해 편집국장, 정치부장도 본인의 컵은 본인이 관리합니다. 손님이 찾아와도 직접 차를 타서 대접합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분위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도 10여개의 공용컵을 관리하는 여직원이 따로 있습니다. 공용컵은 보통 사무실을 방문하는 취재원이나 손님들의 대접용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이 공용컵의 관리를 한 여직원에게 '떠맡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직원은 "처음엔 기꺼운 마음으로 몇 번 컵을 씻어서 갖다 놓았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 그게 내 일이 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한 때는 다른 직원들에게 컵들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일찍 나오기도 했다"고 말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3일 오후 이 문제의 가장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사무실은 어떻습니까.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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