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5

광개토대제와의 만남 (4)

등록 2003.07.03 15:33수정 2003.07.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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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시진이나 계속된 열변(熱辯)을 듣는 동안 이회옥의 고개는 여러 번 끄덕여졌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면 그야말로 지상 낙원처럼 느껴질 세상이거늘 서로 빼앗거나 죽이지 못하여 안달할 정도로 각박하고, 흉흉하며, 냉혹해진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특히 윗자리에 앉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였다.

윗자리라는 것은 명예도 명예지만 권력을 동반한다. 그 권력은 한 문파의 백년대계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으므로 누가 윗자리에 앉았느냐에 따라 한 문파의 명운(命運)이 뒤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수뇌부에 어떤 인물들이 포진해 있느냐에 따라 현재의 무림천자성처럼 전 무림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고, 패전(敗戰)한 아부가문처럼 완전히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수도 있다.

과거 무림의 암흑대전을 일으켰던 화산파의 장문인인 흑염도사 나치(羅緇)는 나쁜 피를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의 명에 따라 엄청난 수효의 유대문도들이 비명횡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와 유사한 인물로 왜문의 풍수길(豊秀吉)이라는 인물이 있다. 평화롭던 선무곡을 선혈로 물들인 혈겁의 원흉이다.


이회옥은 현재의 인물 가운데 이들 둘과 유사한 인물을 꼽으라면 무림천자성 성주 철룡화신 구부시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겉으로는 정의를 수호하려 애쓰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로지 무림천자성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최근 그의 아집(我執)과 독선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아부가문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그리고 자신이 공격 명령을 내리면 얼마나 많은 월빙보의 아녀자들이 희생당할 것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공격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명령을 내리는 그가 이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 명령을 내릴 것이 확실하기에 그의 몸에 나쁜 피가 흐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회옥은 선무곡 내의 인물 가운데에는 누가 나쁜 피를 많이 타고 태어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때 그의 뇌리로 가장 먼저 스친 인물은 삼의(三醫)였다.

방조선(方嘲蟬)과 금동아(金 鴉), 그리고 이중앙(李  ) 이렇게 삼의는 알량한 의술과 궤변(詭辯)으로 세상을 현혹시키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현재 선무곡 사람이면서도 외세라 할 수 있는 무림천자성에 빌붙어 선무곡의 근본을 흔드는 중이다.

선무곡에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에게 세뇌 당했기에 그들이 말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그 말을 믿을 정도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꽤 있다. 덕분에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곡주라 할지라도 함부로 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신임 곡주인 일흔서생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구악(舊惡)을 일소(一掃)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여 취임 이후 가장 먼저 곡의 실무를 맡아 처리하는 호법들을 비교적 젊은 인물들로 교체하려 하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젊다는 것 이외에 참신하고 개혁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좋지 못한 관행이나 구습(舊習)에 물든 사람을 그 자리에 두면 절대 개혁이 될 수가 없다. 똥 묻은 개는 결코 겨 묻은 개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히려고 한 것이다.

이를 본 장로원의 장로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쳤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물구나무를 섰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댄 것이다. 그들의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태장랑(太  )이라는 인물이다.

현재 선무곡의 장로원을 크게 둘로 나눠보면 신임 곡주의 뜻에 동조하는 일부 젊은 장로들과 그 반대파로 나뉠 수 있다.

그 반대파의 수장이 바로 태장랑이다.

그의 이름인 장랑(  )은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사는 벌레를 지칭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비렴(蜚 )이라고도 하고, 향랑자(香娘子)라고도 한다.

이 벌레를 보통 사람들은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의 성과 합치해 뜻을 풀어보면 큰 바퀴벌레라는 의미가 된다.

이 성명을 작명한 그의 부친은 그야말로 선견지명을 타고난 작명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태장랑이 하는 짓이 꼭 바퀴벌레와 같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반대파의 수장을 맡았다가 물러난 자는 무문수(無紋手)라는 외호로 불리던 자이다. 얼마나 손바닥을 비벼댔는지 아예 손금이 지워졌기에 붙은 외호이다.

그는 선무곡주에 출마했던 청죽수사에게 수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손바닥을 비빈 결과 그의 뒤를 잇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야말로 일생을 꿈꾸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무곡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지재(棟樑之材)라고 우겼으나 사람들은 그를 서정원(鼠酊 )이라고 불렀다.

이 외호가 지닌 의미는 『술 취한 쥐새끼나 드나들 작은 구멍』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릇이 작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생각처럼 무문수는 금방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역량이 없다는 것을 금방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태장랑인 것이다.

태장랑 역시 자신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것으로 알고있으나 그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선무곡에는 여인들만 다닐 수 있는 서당이 있다. 얼마 전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미친 개 같은 년이라는 의미의 광견녀라는 외호를 얻은 감련혜가 훈장으로 있는 바로 그 서당이다.

이 서당은 제법 명성이 있는 서당이었기에 학문에 뜻을 둔 선무곡 여인이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서당이다.

태장랑의 여식 또한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나 워낙 실력이 형편없었기에 입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태장랑은 인맥과 권력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여식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금방 들통나게 되면서 개망신을 당했다. 그는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자 여식을 무림천자성에 있는 서당으로 보내버렸다.

그의 부인 역시 만만히 않은 이력을 지닌 여인이다.

그녀 역시 광견녀 감련혜처럼 서당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그녀의 여 제자 가운데 하나가 서당의 책을 무단으로 반출한 일이 있었다. 규칙 상 서당의 서책을 외부로 반출하면 안 되는데 급한 용무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니다. 반출된 서책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끝날 일이고, 사실 이런 일은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태장랑의 부인은 이를 문제삼아 제자를 닦아 세웠다. 그것도 만인들이 보는 가운데 도둑으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방년(芳年)의 나이였던 그 제자는 너무도 수치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으나 태장랑의 부인은 자신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다면 뻔뻔스럽게 굴었다고 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대학(大學)을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구절이 있다.

먼저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난 연후에 가정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천하를 두루 편안케 하라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태장랑은 한 마디로 망신패가(亡身悖家)한 셈이다. 스스로도 바로 세우지 못했고, 가정 또한 제대로 건사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천하를 경영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뻔뻔스럽기 이를 데 없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이라 할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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