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6

광개토대제와의 만남 (5)

등록 2003.07.04 17:05수정 2003.07.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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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로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흔서생은 젊은 호법들을 임명하였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구습을 타파(打破)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장로원 등에서 또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런데 신임 호법들이 취한 일련의 조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혀 난리를 칠 일이 아니었다. 과거의 좋지 못한 관행 대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모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로들 이외에 가장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친 인물들이 바로 삼의와 그들을 추종하는 일부 무리들이었다.

지금껏 누려왔던 권력을 몽땅 잃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잘못된 관행에 의한 부당한 권력이었고, 그들이 취한 재물 대부분은 뇌물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에 의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입에 거품을 문 채 사사건건 곡주의 발목잡기를 하며 선무곡 개혁을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중이었다. 이렇기에 선무곡의 수뇌부도 아니면서 이회옥의 뇌리로 가장 먼저 스친 것이다.

두 번째로 뇌리를 스친 인물들은 방조선의 밑에서 온갖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광견자(狂犬子) 금대준(禽大 )과 변견자(便犬子) 조잡재(趙雜災), 그리고 취견자(臭犬子) 유구닐(劉狗 )이다.


또 이들 밑에서 밑이나 닦아주던 무뇌견(無腦犬) 백지녕(百指 )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만한 인물이다.

셋째는 금동아 밑에 있던 맹도(盲圖) 나대로(懶  )이다.


넷째는 한방공(韓訪公)의 밑에 있던 허언구(虛言狗) 길송섬(吉  )과 추마녀(醜痲女) 백잔숙(百殘夙)을 꼽을 수 있었다.

이밖에 생각나는 인물로는 헛소리 한번에 미친 개 같은 년이라는 외호를 얻은 광견녀(狂犬女) 감련혜(甘蓮惠)가 있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과 제 배를 불리기 위해선 이 세상 어느 누구든 서슴지 않고 희생시킬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악(惡)의 핵(核)이며 화신(化身)이라 할 수 있는 철룡화존 구부시를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일흔서생 노현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무림천자성으로 거처를 옮겨간 청죽수사 이법의 주위에 있던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랬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생각난 인물은 기원길(饑猿  :굶어서 미친 원숭이)과 백상규( 喪  :찢어져 죽을 번데기)가 있었다.

그들은 본시 일흔서생 진영 장로들이었으나 형세가 불리해지자 곡주 선출 직전 청죽수사 진영으로 옮겨간 자들이었다.

이밖에도 곡주 선출과정이나 그 이후까지 온갖 험담으로 세상 사람들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였던 남경칠( 輕七 :수다스럽고 경박한 칠뜨기)과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던 무문수가 있었다.

이외에도 현임 장로들 가운데에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자들은 삼초(三草)라 불리는 금갑(禽 ), 홍표(洪 ), 정근(鄭 )이 그들이다.

이들 셋 역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삼초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어찌나 교활하고 질긴지 잡초 같다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광개토대제의 뜻대로 선무곡이 새롭고 강하게 되려면 가장 먼저 이들을 비롯한 그 일당들을 권좌에서 밀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절대 개과천선을 기대할 수 없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권좌에서 밀어내려면 상당한 공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쥐고 있는 권력이 상당하며, 반항이 극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제가 제시한 방법은 제거였다.

그들의 숨통을 끊어 버리면 두 번 다시 권좌에 발붙이지 못할 것이므로 어찌 보면 최상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 편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구절이 있다.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당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게되었다.

그는 임종 때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명(遺命)을 내렸다.

부친의 상을 치른 후 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삼 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 )가 말렸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하였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게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쳤다.

완전히 포위 당하여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는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여 농군이 된 척하면서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지치로부터 십이 년이 지난 해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 :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칠 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 :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 :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이상이 와신상담에 얽힌 고사이다.

만일 백비라는 뇌물을 좋아하는 신하가 없었다면, 그리고 월나라를 굴복시킨 직후 부차가 오자서의 간언을 받아들여 구천을 죽였다면 과연 구천이 권좌에 앉을 수 있었을까?

삭초제근(削草除根)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전초제근(剪草除根)과 삭주굴근(削株堀根)이라는 말도 있고,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는 말도 있다.

이 가운데 발본색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 폐단의 근본 원인을 뿌리뽑아 아주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광개토대제는 개과천선이 안 될 자라 판단되면 가차없이 제거하라 하였다. 다시는 권력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될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흐음! 살인을 하라고요?"

광개토대제가 잠시 말을 끊은 사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이회옥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지금껏 한번도 살인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몹시 곤혹스런 요구였던 것이다.

"하나를 죽여 천이나 만이 편안해진다면 죽여야 하느니라. 자고로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라 하였도다. 또한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도 하였다. 후인은 살인을 부담스러워 하지 마라. 그들은 권력과 재물만을 탐하는 짐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짐의 뜻에 따라…"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회옥은 선뜻 동조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살인은 영 껄끄럽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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