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7

광개토대제와의 만남 (6)

등록 2003.07.05 14:35수정 2003.07.0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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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짐은 후인에게 짐이 창안한 만빙검(萬氷劍)의 검결(劍訣)을 전수할 것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해라."
"헉! 거, 검결이요?"

잠시 껄끄러운 기분에 잠겨 있던 이회옥은 검결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승 무공을 익히고 싶어 얼마나 안달을 했던가! 사실 제세활빈단에 흔쾌히 가입한 것도 무공을 배우고픈 열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빙검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짐의 애병인 제왕비(帝王秘)가 있어야 하느니라."
"헉! 제, 제왕비…?"

느닷없이 튀어나온 제왕비라는 명칭에 이회옥은 또 한번 소름이 끼쳤다. 그러는 사이 광개토대제의 음성이 이어졌다.

"제왕비는 왕년의 천하제일 명장이었던 구야자(歐冶子)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다. 짐은 그것의 손잡이에 한빙정(寒氷精)을 박았는데 이것이 없으면 만빙검은 원래의 위력에 일 푼도 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후인이 대고구려의 후손이고 인연이 있는 자라면 분명 제왕비를 만나게 될 것이니라."
"이런! 내, 내 건 가짠데…"

이회옥은 자신의 제왕비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관걸의 입을 통해서 가짜 제왕비가 이십여 개나 제작되었고, 철기린이 그것을 남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철기린의 신물이었던 관계로 만일의 경우 무림천자성 사람들에게 유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간세와 일당으로 생각하고 있는 백안무발 허보두에게는 아무런 효용도 없을 테지만 한 달에 한번 온다던 순찰사자는 그것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연공관에 들기 전, 일타홍에게 부탁은 하였지만 감금되어 있는 조관걸을 빼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선무분타의 경계망이 어느 정도로 삼엄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한 달에 한 번 온다던 순찰사자에게 제왕비를 보여주고 조관걸의 방면(放免)을 청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안 버리고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렇기에 만빙검은 최상의 공격 수법이며 동시에 최상의 방어수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시전하려면 먼저 독문심법을 익혀야 하는데…"

이회옥은 광개토대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결의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헉! 피할 길이 없다. 금강불괴까지 파괴된다!"

광개토대제의 설명을 듣는 동안 이회옥은 너무도 가공할 위력을 지닌 초식이라는 것을 알고 감탄을 거듭하였다.

설명대로라면 만빙검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제 아무리 엄밀한 검막을 형성할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허점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만빙검은 그 허점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초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전자의 의식과 전혀 상관없기에 설사 상대의 머릿속을 읽을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초식인 것이다. 게다가 금강불괴도 파괴할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아아! 대제의 무한한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요."

모든 설명이 마쳐지자 이회옥은 옷깃을 여몄다.

만빙검이라는 희대의 검결을 창안한 그의 능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서경덕이 저술한 태허설에는 이 세상 어디에든 기(氣)가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회옥은 이것에서 착안하여 태극일기공이라는 희대의 상승절학을 창안한 바 있다.

반면 광개토대제는 이 세상 어디에든 습기(濕氣)가 있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만빙검이라는 희대의 검결을 창안하였다.

이런 점에서 둘은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정도에 있어서는 광개토대제가 몇 수 위였다. 이런 착안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도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만빙검은 공기 중의 습기를 일순간에 작은 쐐기의 형상으로 얼리게 하는 희대의 무공이다. 이것들이 사방 팔방에서 쇄도하기에 피할 길이 없는 것이며, 귓속이나 코 속에서 얼어붙은 검이 속살을 찢고 들어가니 금강불괴라도 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장까지 모두 금강불괴라면 예외일 것이다. 하지만 유사이래 내장(內臟)까지 그런 화후에 올랐던 무인은 전무하였다.

따라서 만빙검을 익히면 천하무적이 되는 셈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려면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만족 시켜 주어야 한다. 하나는 만빙심법이라는 공전절후할 내공심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왕비의 손잡이에 박혀 있는 한빙정(寒氷精)이라는 기물(奇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제왕비의 손잡이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같이 보이는 한빙정은 천하에서 가장 춥고 어둡다는 빙극정토(氷極淨土)의 지저(地底)에서 채취된 것이다. 이것은 수억 년 세월 동안 빙기(氷氣)가 쌓이고 쌓인 결과 생성된 결정체이다.

산해경 같은 서책에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을 광개토대제가 어찌 알고 제왕비에 박아 넣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있기에 일순간에 공기 중 수분을 얼릴 수 있는 것이다.

만빙심법은 한빙정의 빙기가 제왕비를 통하여 뿜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요결이기에 설사 외부에 구결이 노출된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는 심법이다.

한빙정 역시 만빙심법이라는 희대의 심법이 없으면 그저 평범한 보석의 일종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둘은 마치 작약(炸藥)과 뇌관(雷管)처럼 붙여 놓으면 엄청난 위력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만빙검이 엄청난 위력을 지닌 대단한 검법임에는 틀림없으나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한번 시전하면 적어도 보름 동안은 다시 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매일 밤마다 제왕비를 월광(月光)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다음 번에 제 위력을 내지 못 한다는 것이다.

"후인이여!"
"예! 대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선무곡을 구해다오."
"예! 소생,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이회옥은 허공 중에서 스르르 흩어지는 광개토대제의 혼령을 향하여 극궁의 예를 올리고 있었다.

같은 순간, 연무관의 바닥에는 깊은 잠에 취한 또 다른 이회옥이 있었다. 꿈속에서 광개토대제를 만난 것이다.

이날 잠에서 깨어난 이회옥은 자신이 왜 누어 있었는지 어리둥절해 하다가 만빙심법의 오의를 터득하기 위한 고련(苦鍊)에 접어들었다. 연무관에는 지필묵이 없다. 그렇기에 혹시 구결을 잊을까 싶어 서둘러 연공에 들어간 것이다.


* * *

"뭐라고? 이번에도 당했다고? 또 그놈들이더냐?"
"그, 그렇습니다."

"에잉! 그러기에 내, 뭐라 하였더냐? 조심 또 조심하라 그렇게 일렀거늘… 에잉! 퉤에―!"
"죄, 죄송합니다."

"좋아, 그건 그렇고. 이번엔 어디고, 얼마를 털렸느냐?"
"그, 그게… 산해기원입니다요."

"뭐라고? 산해기원? 그렇다면 지난달에 여기 왔던 금월(琴月)이가 있다는 그 산해기원을 말하는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요."

"에잉! 그래, 얼마나 털렸다고 하느냐?"
"워, 원주의 보고에 의하면 삼십육만팔천 냥을…"

"뭐? 삼십육만팔천? 방금 삼십육만팔천 냥이라고 했느냐?"
"그, 그러합니다요."

"일개 기원에 웬 은자가 그렇게 많단 말이더냐"
"그, 그게 털릴 것을 대비하여 비연기원과 취매기원 등 몇몇 기원의 은자를 거기에 모아둔 건데 그것을 그만 몽땅…"

"뭐라고? 털릴 걸 대비해 은자를 한 군데로 모았다고? 이런 바보 같은 놈들… 에잉, 퉤에!"

산해관 일대를 관장하는 무천장주가 된 혈면귀수 마욱진은 수하의 보고에 몹시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누런 가래침을 내뱉었다. 이번이 벌써 스물하고도 여덟 번째였다.

산해관의 모든 상권을 완전 장악한 무천장은 얼마 전 휘하 점포에 주의령을 내린바 있었다.

협도당(俠盜黨)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난입하여 모든 재물은 싹쓸이해가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놈들은 어찌나 냄새를 잘 맡는지 어디에 재물을 감춰두든 감쪽같이 훔쳐갔다. 심지어 땅을 파고 묻어놔도 번번이 털렸다고 했다. 보나마나 이번에도 잘 감춘다고 감췄는데 당했을 것이다.

협도당은 훔쳐간 재물 중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산해관 일대 빈촌(貧村)에 골고루 나눠주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도적의 무리이면서도 협(俠)이라는 자를 얻은 것이다.

무천장의 상가들은 혹시 몰라 모든 은자에 표시를 해두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모든 증거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증을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혈면귀수는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기녀 점고(點考)를 마치고 느긋한 팔자 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괴소가 묻어 있었다.

오늘 점고에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드물던 동기(童妓)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같이 미색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가에 괴소가 달려있는 것은 그 가운데 누구에게 수청을 들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려는 기분 좋은 고민에 잠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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