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천불 속 '탄생불'을 보셨나요?

[추천 주말가족여행] 황악산 아래, 김천 직지사

등록 2003.07.05 00:11수정 2003.07.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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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이 신라 땅 선산에 최초로 '도리사'란 절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손을 들어 멀리 서쪽에 산 하나를 곧게 가리키며 "저 산에 좋은 절터가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가 가리켰던 산이 황악산이며 그 아래 터를 잡은 절이 '직지사'랍니다.

a 직지사 일주문

직지사 일주문 ⓒ 이종원

대웅전까지 오르는 길이 좋습니다. 울창한 나무가 싱그러움을 더해주지만 더욱 느낌이 오는 것은 축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휘어졌기 때문이지요. 왠지 꿈틀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과연 다음 대문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과 긴장감이 교차됩니다.


a 수로가 절을 가로지르고 있다.

수로가 절을 가로지르고 있다. ⓒ 이종원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수로가 놓여 있습니다. 대개 사찰은 풍수지리상 물을 담벼락 밖으로 빼는데 직지사는 오히려 그걸 보듬고 있습니다. 예전엔 스님들이 그 물로 빨래까지 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네 어머니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투수 볼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심한 변화를 이루듯 만세루를 지나면서 축선이 한 번 변하고 한눈에 부처님 세계가 펼쳐집니다. 누가 이렇게 가람배치를 했는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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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 이종원

대웅전을 중심으로 쌍탑이 서 있습니다. 실은 문경에 있는 도천사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직지사 사세가 워낙 커 반강제적으로 빼앗아왔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유물은 있는 그 자리에서 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경복궁 마당에 있는 이적 유물들은 참으로 처량해 보였답니다. 몇몇 부도는 일본에 '징용'까지 다녀온 것도 있지요. 차마 '직지사 삼층석탑'이라고 짓지는 못했나봐요. 안내판에는 '직지사 대웅전앞 석탑'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곳에 옮겨지면서 다시 손을 댄 상륜부는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있어, 시골처녀의 부담스런 화장처럼 보여집니다. 원래 그대로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익산 미륵사지 탑은 한쪽이 붕괴되었기에 처연한 느낌을 받고, 동구능의 석물은 총알자국이 있어 더욱 숭고하게 느껴졌거든요.

모처럼 대웅전에 들어가서 탱화들을 감상했습니다. 들어가고 싶어도 짧은 상식 때문에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좋은 선생님의 눈을 빌려 마음 속에 담았습니다. 보물답게 부처님 세계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네요. 불상 역시 늠름합니다. 그 밑의 수미단도 참 아름다운 조각들을 가지고 있답니다.


a 사명각

사명각 ⓒ 이종원

물론 아도화상이 절을 창건했지만 이 절이 유명해진 것은 역시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기 때문입니다.

a 비로전

비로전 ⓒ 이종원

비로전입니다. 실은 천불전이란 이름이 더욱 걸맞겠지요. 천 분의 부처들은 제 각각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답니다. 뚫어지게 쳐다보면 '매직아이' 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는 '탄생불'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한눈에 그 부처를 찾았다면 아들을 낳는다고 합니다. 저는 애가 둘인데 한방에 보았으니 큰일 났습니다. 비로전의 문살을 유심히 보세요. 아주 화려합니다.

천불에 신경을 쓰다보니 비로전의 모습은 절을 벗어날 때가 돼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산세가 완만하여 만약 팔작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면 볼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청기와를 입고 있어요. 상당히 비싼 기와랍니다. 비로전 앞의 삼층석탑도 참 단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저 걸 빼앗긴 말사는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을까요? '말사의 비애'.


a 요사채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무신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지팡이 옆에 놓인 걸로 봐서 노승이 아닐까?

요사채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무신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지팡이 옆에 놓인 걸로 봐서 노승이 아닐까? ⓒ 이종원

직지사 성보박물관은 참 잘 꾸며져 있더군요. 특히 탱화가 유명하지요. 그림 속에는 부처와 신들이 꿈틀거리고 있답니다. 박물관에 근무하는 선생님께 설명을 부탁해보세요. 쉽게 설명해주신답니다.

a 석조 약사 여래좌상 (보물 319호)

석조 약사 여래좌상 (보물 319호) ⓒ 이종원

저는 이 약사여래좌상에서 오래 머물렀답니다. 지금은 부처님과 같은 시선으로 보았기에 하체가 조금 작아 보일 겁니다. 만약 높은 불단에 앉아 계셨다면 아주 성스럽게 보였겠지요. 실은 광배가 일품이거든요. 스키신발처럼 윗 부분이 활처럼 휘어져 참으로 양감이 뛰어납니다.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왜 그리 불상의 뒷부분이 보고 싶었던지. 고개를 쭉 내밀고 뒤를 보았습니다. 경내에는 약사전이 보이던데 이 박물관에 갇혀 있지 말고 그 곳에 계속 계셨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박물관의 동자승 표정이 참 예쁘더군요. 안정감 있는 자세, 비례감에 탄복하며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a 한천사 출토 금동자물쇠 (보물 1141호)

한천사 출토 금동자물쇠 (보물 1141호) ⓒ 이종원

이곳에는 예천 한천사에서 출토된 보물 1141호로 지정된 금동자물쇠가 전시되어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개밖에 없다는 유물이지요. 석탑이나 부도의 문비에 새겨진 문양을 직접 눈으로 보니 너무나 신기합니다.

a 머리를 미는 칼

머리를 미는 칼 ⓒ 이종원

사명대사가 직지사에서 부처님 품안에 들어갔듯이 많은 스님들이 머리를 깍았을 겁니다. 머리털을 미는 칼과 돌입니다. 그 밑에 '반드시 제자리에 둘 것'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얼마 전까지 사용했나봐요. 처음 긴 머리를 깎았을 때 스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계곡길로 나오니 절이 성처럼 느껴집니다. 경사도 깊고…. 바로 그렇습니다. 만약 가람배치가 일직선이었으면 그 깊이를 알았을 겁니다.
휘어진 곡선이기 때문에 우린 그걸 모르고 올라간 것이지요.

a 건물과 산세의 모양새가 비슷하다.

건물과 산세의 모양새가 비슷하다. ⓒ 이종원

앞의 지붕선 용마루 그리고 두 개의 산세가 일치합니다. 자연과 건물은 하나요.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도 하나가 아니겠어요?

깊은 황악산을 둘러보고 하산하여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 직지사랍니다. 입구 좌판에 산나물을 고르고 향기로운 산채비빔밥 한 그릇 해치우는 것도 마음 속의 여유가 아닐까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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