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처음이에요"

4일 '장애인과 함께 영화 보는 날' 행사 열려

등록 2003.07.05 11:15수정 2003.07.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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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일 오후 2시 사당문화회관에서 '2003 장애인들과 함께 영화 보는 날' 행사가  열렸다

4일 오후 2시 사당문화회관에서 '2003 장애인들과 함께 영화 보는 날' 행사가 열렸다 ⓒ 김진석

한국농아인협회 주최 '2003 장애인들과 함께 영화 보는 날' 행사가 7월 4일 2시 사당문화회관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장애인과 함께 영화 보는 날' 행사는 2000년에 막을 올린 '장애인 영화제'가 서울에서만 열린 까닭에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방의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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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는 단지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도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법을 알리며 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에 의의를 두고 있다. 더 나아가 극장이 장애인을 위한 영화 관람 기법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애니메이션 <오세암>과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상영한 이번 행사는 한글 자막과 화면 해설기를 통해 청각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이 소리를 보고 화면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오세암>이 상영될 때는 많은 인파가 몰려 230석 가량의 객석이 모자라 뒤늦게 온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혼자 오는 경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오거나 농아인 학교, 복지회관 등에서 단체로 오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a 서울 애화 중학교 교사 임민섭(28)씨

서울 애화 중학교 교사 임민섭(28)씨 ⓒ 김진석

영화제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자막이 없어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에겐 이번 기회가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우정욱(18)군은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감동받았지만 일부러 눈물을 감췄다"며 "항상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도 자막이 없어 외화밖에 볼 수가 없었다. 한국 영화를 만들 때 자막도 같이 붙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막 수신기를 통해 TV로만 한국 영화를 보았던 우남희(57)씨는 "눈물을 흘릴 만큼 서정적이고 감동적이었다"며 영화 <오세암>에 관한 감격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그는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겪는 번거로움이 없어 좋았다. 게다가 주부들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오후 시간대여서 다행이다"며 "영화 프로그램이 좀더 다양해졌으면 하고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 더 많은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학생들과 단체 관람 온 서울애화중학교 교사 임민섭(28)씨는 "모처럼 한국 영화를 본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청각장애인들은 한국 영화를 전혀 모른다. 따라서 학생들은 한국 영화를 보지 못해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연이어 그는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직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짙은 아쉬움을 표하고 "언젠가는 장애인들도 누구나 극장에 갈 수 있는 복지 시설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자막이 붙은 좋은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꼭 보고 싶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복도에는 소란스런 수다 대신 수화로 영화의 감흥을 나누는 무언의 열정들이 넘쳐났다. 조용히 눈물 자국을 훔치는 사람부터 영화를 분주히 수화로 재현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오늘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영화 평론가였다.


장소 섭외에 애를 먹었다는 영화제 기획팀 스텝 윤정기(37)씨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며 "모든 장애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극장을 대관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더불어 "앞으로 모든 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계속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달라"고 부탁했다.

a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여학생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여학생들 ⓒ 김진석

자원 봉사자 김종경씨(31)는 "자막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 조금 구별되는데 자막이 단순히 일반인들의 언어 표현에 그치고 말았다"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섬세한 언어 표현이 덧붙여졌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장애인들이 '이동권'과 '정보접근권'을 사회로부터 박탈당하고 있다"며 "사회가 계속 발전해도 장애인을 위한 복지 체계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일반인과 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보자'는 행사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자원 봉사자 외에 일반인들의 참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에 영화제 측은 "영화제의 정체성과 대중화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 같다"며 언론과 일반인들의 꾸준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 행사는 서울을 시작으로 제주(7월 15일), 대구, 전주 (8월 9월 중) 3지역을 순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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