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왜 정화조가 4개나 되나요?

등록 2003.07.05 18:53수정 2003.07.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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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고령의 한적한 산골마을에 자리한 지인(J씨)이 가꾸고 있는 전원주택을 찾아갔습니다. 10가구가 띄엄띄엄 떨어져 마을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는 산자락에 자리한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그분은 문학을 하는 교육운동가로서 주위의 기대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교육위원에 당선되어 한 달에 100여 만원 받는 여비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원주택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남의 것을 10년간 빌려쓰기로 하고 손수 집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00여 평의 전원주택이 자리한 그곳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주위를 에워싸는 듯 그야말로 인간들의 인위적인 것들은 전혀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돌들로 만들어진 이층집이 자리한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토끼가 한가히 놀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질감이 살아있는 마당의 나지막한 울타리를 지나면 마당의 한 켠 에는 지붕이 있는 넓은 마루가 한창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산자락을 둘러서 흐르는 물가의 정자에 앉아 있는 기분은 나도 자연의 한 자락을 적당히 붙들고 있다는 행복감에 사로잡히게 해 주었습니다. 자연이란 뭔가 모를 마력을 가졌습니다. 콘크리트의 장막에 갇혀서 지내다, 풀 내음과 나무 향에 취하다 보니 자연히 긴장감이 풀리고 세상사가 멀찍이 기억에서 멀어지는 듯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의 매력에 한껏 취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야기가 뜸할 시점에 화장실을 찾으러 마당을 거닐다가 전혀 자연적이지 않는-전원주택으로서 미적 감각을 흐리게 하는-철제 둥근 뚜껑이 여러 개 보였습니다. 무엇일까 이리 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화조 뚜껑이었습니다. 보통의 집에는 정화조 뚜껑이 한 개 정도인데 4개나 되었습니다.

정자에 앉아 손으로 가르키며 마당의 중간에 자리한 곳에 왜 저것이 여러 개 있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남에게 10년 간 이 집을 빌려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정화조도 빚을 낸 돈으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2000만원의 돈을 들였답니다. 그래서 보통의 집에는 “정화조가 한두 개인데 흉하게 여러 개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가 개발제한구역이라 정화조도 다른 주택과는 규정이 다르다며 전 주인이 개발 제한 구역의 정화조 설치규정을 어기고 1개밖에 설치하지 않아, 법을 어길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0년 간 사용하기로 하여 10년 후엔 돌려주어야 하지만, 자신의 양심으로는 이를 어길 수 없어 빚을 내어 설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두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을 어김으로써 탈세하는 사람과 공무원이 나랏일 하면서 나랏돈과 세금을 제 주머니에 챙겨 넣는 사람의 부류가 있는가 하면, 나라 일에서나 자신의 일에서 법을 지키려다 손해보는 사람의 부류로 말입니다.


전자가 법을 어기거나 탈세를 하는 사람입니다. 공공사업 등의 업무로 뒷돈을 챙기지만 당연한 떡고물이라는 생각에서 죄의식 없이 살고 떵떵거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후자는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며 법을 잘 지킵니다. 청렴한 공무원이지만 부패한 상관이나 동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많으냐의 정도가 선진국이나 후진국의 차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정의와 법을 지키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들을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바보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도 그분과 같은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마다 않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사회도 이렇듯 J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법을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치가도 존경을 받고 사회정의도 바로 세워지게 될 것이고 이것은 경제정의로 이어져 공무원 부패와 정치혐오감이 사라지고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오는 길에서 라디오에서는 이러한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권해옥 전 주공 사장은 윤창열 굿모닝 시티 사장이 건설회사 한양을 헐값에 인수하도록 해 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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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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