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쟁이로서의 삶

등록 2003.07.07 12:17수정 2003.07.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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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프로그래머로 일한지 약 4년여 시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번의 이직을 한끝에 지금의 회사에 이르렀다. 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해서 자연스레 회사의 전산담당자로(일명 전산쟁이) 일해왔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취직해서 얼마나 요긴하게 써먹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전산담당자로서 회사 생활을 하며 느낀 것들을 소개한다.


IMF 환란이 닥치기전, 그러니까 닷컴 기업의 주가가 한창 오를 무렵 전산쟁이들은 1등 신랑감이었다. 그러다가 코스닥 거품이 빠지면서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직종으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사용자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그 뒷면에서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전산쟁이들은 더욱 골치 아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까 과중한 업무로 인한 잦은 야근, 스트레스로 인한 과음, 흡연, 운동 부족까지 겹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다.
매월 말이 되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말이 되면 월마감이란 것을 해야하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큰 금액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틀린 금액 찾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애꿎게도 적게는 몇 십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이 틀린다. 전산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금액이 작다고 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월마감때는 금액이 정확히 맞아야 다음달 업무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백원 틀린 금액을 찾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프로그램 코드, 점하나만 잘못 입력해도 오류가 나니까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워 모니터를 하루종일 바라보는 일이 다반사다. 이렇기 때문에 전산쟁이들의 성격이 쫌(?)스럽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직업병인데 말이다...

또한 여러 직종들 중 전산분야처럼 빠르게 변하는 것이 있을까?
늘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금새 뒤쳐지고 만다. 서점에 가서 컴퓨터 관련 서적을 보라. 신간기술서적으로 넘쳐나고 있다. 속속 나오는 인터넷 신기술로 중무장을 하고 내용이라도 내충 이해해야 그나마 회의시간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기 만족도 뛰어난 것이 바로 전산쟁이가 하는 일이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배포되어 보다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면, 또한 며칠씩 밤샘해서 틀린 금액을 맞췄을 때의 기쁨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직종인들 정년을 보장받을까 마는 특히 전산직종은 평균퇴직연령이 타직종에 비해 현저히 낮다. 나이들어 자리나 차지하려 하지 누가 잦은 야근에 시달리면서 개발업무에 매달리겠는가? 하여튼 전산쟁이들의 실정은 이렇다. 또한 전산업무는 이직률이 상당히 높다. 상대적으로 타직종에 비해 과중한 업무를 한다고 느끼고, 특이나 정보공유가 활발한 요즘 회사간 연봉비교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실 필자 또한 현 회사에 근무하기까지 2~3번의 이직 경험이 있다.

또한, 전산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우리나라 실정에서 전산인이라면 누구나 한다리만 건너면 누구든 알 수 있다. 내가 어느 업무를 담당해 누구를 만나 상대할지 모르니 평소 자신의 인기관리(?) 정도는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


닷컴 기업이 몰락하고 전산산업 자체가 어렵다고 하지만, 전산쟁이들은 늘 배고프고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리누스토발 정신의 GNU가 배포하는 소프트웨어들이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닌 것처럼, 전산쟁이들은 늘 배고픔 속에서 자기 만족을 이루며 살고있다.

전산 엔지니어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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