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체육복 공동구매를 실현하기까지

상식이 통하기에는 수월치 않은 학교현장의 보고서

등록 2003.07.08 23:02수정 2003.07.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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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교복 공동 구매를 추진하는 모습은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각성한 학부모 조직이나 앞서가는 학교 경영자 내지는 구성원이 있는 학교에서는 당연히 여기는 사업이나 현장 사정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여기 지방의 한 초등학교 체육복 공동구매 과정에 있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2003년 7월 7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손에 쥐고 온 한 장의 안내장을 내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 운영위원장과 자모회장 명으로 발송된 체육복 구매에 관한 안내장이었다. 몇 줄 되지도 않은 간단한 안내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지나간 기억들이 자꾸만 꼬깃꼬깃 구겨진 채로 떠올랐다.

체육복 공동구매, 확실히 이것은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의 또 다른 성과물임에 틀림없지만 과정은 결코 순탄치가 않았다.

지난 2002년 9월 27일 여수시소재 M초등학교의 운영위원회에서는 체육복 선정 및 공동구매를 추진하자고 논의하였다. 이 학교는 원래 지정된 체육복이 있었으나 IMF를 거치면서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자 체육복을 폐지하고 일상적 편의복을 체육복으로 대체 해왔다.

그러나 학교 앞 문구 점을 중심으로 유사제품이 판매되면서 특히 1학년 신입생의 경우 일부 학부모는 이미 학교에서 체육복을 폐지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 유사제품을 여전히 학교지정 체육복인양 구매하였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은 기존 체육복의 품질과 디자인 및 색상에 대하여 "10년을 입어도 떨어지지 않을 나일론 제품으로 때도 잘 지워지지 않고 색상도 노랑 색이라서 고학년의 경우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하였고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도 학부모들의 의견에 따라 무원칙한 체육복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체육복 선정 및 구매 소위원회(이하 체육복소위원회)를 구성해서 활동에 들어갔다.

체육복 소위원회의 작업은 우선 체육복 선정 여부에 대한 학부모의 의견수렴을 위한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2003년 2월 14일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학부모의 80%이상이 찬성하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확인하였다. 그래서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는 체육복을 선정하기로 결정하고 '공개 견적 입찰방식'을 통한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아 다시 체육복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 가지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존의 학교장이 2월 말 퇴임이라는, 시기적으로는 학교장 전보 인사와 관련된 업무추진 역학의 문제와 다른 하나는 기존의 체육복을 떠나서 품질, 디자인, 색상, 가격, 등 모든 면에서 새롭게 논의를 시작해야 함에도 그 기준이 불분명하고 또 체육복 소위원회 구성원의 전문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래서 2003년 2월 21일 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학부모 부담사항(체험학습 차량 건, 급식 건, 앨범, 체육복 등) 및 학습준비물 구입 등 공개입찰의 문제는 신임 학교장 취임 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고 결국 신학기 입학생들을 맞이하면서도 구체적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관계업체를 대상으로 견적이나 받아보기로 하였다.


2003년 4월. 새로운 학교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신임 학교장체제 하에서, 새롭게 구성된 학교 운영위원회는 구성과정에서 현안 심의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운영위원회 운영과는 사뭇 달리 여러 가지의 잡음을 드러냈고 그 중 체육복 선정 및 공동 구매 건 역시 피할 수 없는 갈등의 과정을 겪게 된다.

학교에서는 운영위원회에 체육복 업체 선정을 위한 공모 견적 결과라며 일련의 보고를 하였는데 그 내용은 지역 내 5개 체육사를 대상으로 견적을 의뢰한 결과 2개 업체가 응찰하였으며 그중 A업체가 현재 학교 앞 문구 점에서 유통되는 제품(문구점 소비자가격: 동복20,000원 판매 중)을 기준으로 동복17000원 하복 14000원의 가격을 제시하였기에 가격 등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소위 유사제품을 가격만 문구점 소비자 가격 20000원에서 공동구매가격 17000원으로 조정하여 인정해주자는 분위기였다.

이에 학부모위원 등 운영위원 일부가 즉각 반발하였다. 반발의 요지는 우선 "디자인, 품질, 가격기준 등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견적입찰을 실시했다"는 점과 특히 "A사는 지금까지 학교 앞 문구점을 통해 유사품을 유통시켜온 당사자이며 그 제품은 학부모 불만의 직접적인 대상임에도 기존의 소위 유사제품을 그대로 체육복으로 응찰했고" 또 "공개입찰 견적 과정도 공모기간이 단 이틀 간에 불과하며 특히 팩스를 통한 공모 결과에 대해서 공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학부모 위원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체육복 관계업체를 대상으로 직접 조사 활동에 들어갔고 그 과정은 운영위원 전체에게 대단히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우선 공모 대상이었다는 5개 업체를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A사와 함께 응찰했던 다른 하나의 업체가 학교운영위원회에 보고된 견적 내용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며 가격도 소위 A사보다 저렴하게 견적을 넣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모의뢰 대상 업체 5개 사 중 하나인 또 다른 업체인 C사는 자신들도 견적입찰에 응했다는데 학교 운영위원회 보고에서는 누락되었고(학교에서는 C사의 견적 건은 전혀 모른다고 함) 다만 C사가 학교로 팩스를 보냈다는 증거는 학교 팩스의 수신 내역을 확인한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C사 역시 A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견적을 넣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소위 A사가 이미 자의적(?)으로 체육복을 700벌이나 제작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충분히 학부모 위원을 분노하게 할 내용이었다.

아직 가격도 품질도 디자인도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납품업체로 선정되지도 않은 업체가 이미 학교 체육복을 임으로 제작 보유하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그 업체는 지역 내에서 오래도록 동일 사업을 해온 대표적인 업체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경영 미숙이라고 하기에도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의 결과가 드러나며 학교 운영위원회 내부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면서 대부분의 교사위원이 아예 체육복 선정자체를 반대하였고 급기야 학교장은 "운영위원회에서 체육복 선정이 결정된다고 하여도 학교장 직권으로 거부하겠노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학부모 위원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체육복 건은 이미 지난해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며 특히 학부모 전체의 의견 수렴까지를 거친 사항인 만큼 반드시 선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학교 운영위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학교장이 거부권을 행사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안으로 교육활동에 지장이 있을 때의 문제이고 또 설령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적절한 사유를 서면으로 학교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제출해야 하는 만큼 그런 과정을 거쳐 거부 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그 동안의 부적절한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법률적 책임을 물을 것을 검토하겠다고 맞섰다.

이쯤 되자 학교에서는 체육복을 선정하기는 하되 학교와는 관계없이 즉, 학교는 일체 개입하지 않고 학교 운영위원회(학부모위원)와 자모회에서 책임을 지고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유는 금품 거출 등의 문제에 학교는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물론 이점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회의에 참여했던 한 학부모 위원은 "학부모 부담 사항 중 급식비를 비롯한 특기적성 수업료 등 상당부분이 학교차원에서 개입하고 책임 있게 금품 거출을 해오고 있는 마당에서 유독 체육복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 것은 결국 이 일이 맘에 들지 않게 진행되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학교장을 비롯한 운영위원회의 일부가 돌아앉은 상태에서 학교 운영위원장과 자모회장 명의로 된 체육복 공모 안이 학교 홈페이지에 일주일간 게시가 되었고 기존의 5개 사와 학부모위원들의 업체 조사과정에서 추천된 모 학생복사에는 별도의 공모 안내문을 보낸다고 했다.

a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체육복에 표시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체육복에 표시하고 있다. ⓒ 오명록

2003년 5월 10일 학교 체육대회에서 학부모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체육복 선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공모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각 업체마다 체육복 샘플을 제작해 오되 체육대회 당일 아침9시 동시에 제품과 가격을 개봉하며 업체이름은 비공개 상태로 샘플 제품을 전시하고 학부모들이 직접 재질과 디자인 등을 살펴 선호하는 제품 아래 준비된 스티커를 부착하는 방법이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직접 참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적극적이었다. 확실히 학부모들의 안목은 현실성에서 대동소이하게 드러났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동복과 하복이 모두 동일한 한 업체의 제품으로 선정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업체는 학부모위원이 관계업체를 조사차 탐방하며 찾아내서 추천한 업체였다.
동복: 14000원! 하복: 10000원!

그러나 최종 결정이 있기까지는 체육복 소위원회에서 약간의 조정작업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학부모들의 의사를 바탕으로 옷깃과 호주머니 등 부분적인 디자인의 변경 및 동복 원단이 실용적 측면으로 볼 때 낙찰된 제품 그대로 100% 면을 사용할 경우 무릎부위가 쉽게 늘어져 튀어나오는 등의 문제를 해소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이 이점은 해당업체와 무리 없이 조정되었다.

동복 상, 하의는 색상은 샘플 그대로하고 재질면에서는 이웃 중학교의 체육복과 같은 면이 일부 섞인 원단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복 상의는 면 100%, 하의는 동복과 같은 재질로 하며 디자인 면에서는 동복 하의의 경우 샘플 제품에 옆 호주머니를 추가하며, 하복 상의는 선정된 디자인과 같은 재질에 색상만 초록으로 변경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2003년 7월 7일에야 체육복 제품 구매에 대한 안내장을 학부모들이 받아보게 된 것이다.

a 최종 선정된 학교 체육복

최종 선정된 학교 체육복 ⓒ 오명록

아이의 체육복을 구입하기 위해 학교에서 선정한 해당 교복 사를 찾았다. "결과적이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더니 오히려 그이는 "운영위원들이 원칙을 지켜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큰애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기에 넌지시 "중학교는 왜 교복이나 체육복을 공동구매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학교장의 의지여부나 학부모 운영위원의 역량에 달려있지 않겠나"라고 오히려 반문해왔다. 중학생인 큰애의 체육복을 동복 25,000원, 하복 18,000원 샀던 기억이 있어서 "초등학생 체육복과 중학생 체육복의 가격차이는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은 의외로 "일, 이천 원 정도쯤으로 얼마 차이밖에 나질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체육복을 사들고 나오면서 동, 하복을 포함하여 애초의 견적 가격과 손에 들고 있는 상품의 가격을 어림잡아 비교해 보는데 모르는 사이에 가벼운 몸서리를 느껴야 했다. 1600명 곱하기 차액 1만1천원 하면 우리 학부모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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