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오묘한 성경말씀.느릿느릿 박철
김영복씨 집에서 심방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아들이 군대엘 가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 좀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영복씨의 부인 교부자 집사가 견비통으로 고생하는데 안수기도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능력의 종은 아니지만, 내가 섬기는 교우가 목사인 나한테 방문해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전화로 시간을 정하고 방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여름 꼭대기, 가만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날씨가 무더웠습니다. 마침 아내가 서울 친정에 가고 없어 나 혼자 갔습니다.
김영복씨네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우를 키우던 집이라, 아직도 소를 키우며 나온 부산물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동네 쇠파리들이 다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니 한낮에도 문을 꼭 닫고 지내는 집이었습니다. 더위에 이골이 났는지, 아니면 원래 더위를 안 타는지 그 흔한 선풍기도 틀어놓지 않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김영복씨 부부와 나와 셋이 안방에 앉았습니다. 늘 하던 대로 "자, 이제부터 사도들의 신앙을 따라 신앙 고백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했는데 신앙고백 첫 대목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때는 누가 옆에서 치고 나가면 나도 덩달아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김영복씨 부부도 꿀 먹은 벙어리라 세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정말 갑갑하데요. 하는 수 없이 얼른 찬송가 앞자락을 펴고 시작하는 대목을 커닝할 수밖에요. 그런데 찬송가 앞머리가 왜 잘 안 펴지는지? 부시럭거리며 한쪽 눈으로 힐끗 첫 대목을 읽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계속 커닝하다 들키면 무슨 망신입니까? 찬송가 표지를 닫았는데 또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덥데요. 평소에도 더위에 약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그 푹푹 찌는 데서 당황이 되니까 땀이 비오듯 떨어졌습니다. '망신살이 뻗친 게로구나!' 생각하면서 내가 용감하게 선언했습니다.
"오늘은 사도신경이 갑자기 생각 안나니 생략하겠습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했는데, 박 목사 자체가 망신의 표적이 된 셈이었습니다. 김영복씨 입가에 미소가 약간 번지더군요. 성경을 읽고 뭐라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나지만 평소 기본실력으로 설교를 마쳤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아까의 실수를 만회했다 싶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김영복씨의 부인을 위한 안수기도 차례입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막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김영복씨 부인의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막 빙빙 돌리면서 생각을 집중해서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평소에 이름이 술술 잘나왔는데 왜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지? 한쪽으로 기도를 하면서 한쪽으로 기억을 짜내는데 정말 힘들데요. 그러자 하느님이 지혜를 주셔서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교미자 집사님이 믿음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교미자 집사님을 사랑해 주셔서, 지금 어깨가 아파 고생하고 있는데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부족한 종이 기도합니다. 이 종의 손에 하느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우리 교미자 집사님 어깨가 강철같이 단단한 어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막 힘을 넣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게 아멘 소리도 없고 약간 썰렁하다 생각하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예배를 다 드렸는데 두 분의 표정이 밝지가 않았습니다. 내 기도가 성이 안차서 그런 것인가? 조금 어색하데요. 김영복씨 부인이 과일접시를 내 놓으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아까요, 목사님 기도하실 때, 제 이름 틀렸어요. 교미자는 우리 언니 이름이에요. 목사님, 제가요 세어 보았는데요. 9번이나 틀리게 불렀어요!"
정말 황당하데요. 그야말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그렇지 사과를 입에 물었는데 씹지도 못하겠고, 목사가 아무리 믿음이 없고 실력이 없어도 그렇지, 사도신경하나 외울 줄 모르고, 교인 이름 하나 외울 줄 모르는 멍청한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얼른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화제를 돌렸습니다.
"김영복씨! 요즘 소 잘 크지요?"
그러나 이미 김영복씨네는 한 달 전에 소를 다 처분해서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김영복씨네 집 분위기는 점점 더 썰렁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되는 망신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도 사도신경 첫 대목이 콱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건망증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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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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