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뜻한 전설을 지닌 남산 부석이종원
계곡을 타고 내려오면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옆에 있는 청한 형님께 물어보았다.
"형님. 푸른잔디 그냥 하산했겠지요?"
"그럼 하산했겠지. 이런 폭우에 이 코스로 오르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폭우가 쏟아져 우린 일정을 중단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2조는 이미 하산하고 있는 중이란다.
드디어 그 많은 비를 맞으며 출발장소에 도착했다. 먼저 내려갔다는 2조가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내려온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나, 그럼 푸른잔디는 지금 저 빗줄기 속에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이 앞서 앉아 있을 수 없다. 이리저리 다니며 2조 일행을 초조히 기다렸다. 기다리기를 어언 30여분. 하나 둘씩 빗속을 가르며 도착했다. 오로지 나의 시선을 한 곳에 고정되었다. 유난히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 사이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그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반야낙조와 스파이크가 금강역사처럼 호위하면서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 따끈한 보리떡을 건네주었다. 퉁퉁 불어버린 그의 차가운 손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바위에 긁힌 큰 상처가 손바닥에 훈장처럼 새겨져 있고, 나무가지에 긁힌 손등 자국이 내 가슴을 찔렀다.
캔 커피 하나 건네준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힘든 사투를 벌였는지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