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대산문화재단
우리는 너무 바쁘게만 달려왔다. 앞을 보기 바빠 뒤는커녕 옆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빨리 달려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이자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요령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어진 현상만을 좆아온 것은. 이 땅에 자본주의의 그릇된 면들이 오히려 순기능들을 몰아내고, 거짓 민주주의가 참 민주주의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려도 우리는 짐짓 무관심했다. 그것이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우리네 일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의 근본이 되는 사회 저변의 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는 이는 그저 돈키호테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한낱 피 끓는 젊은이들이나 매달리는 철없는 짓에 지나지 않다고 여겼다. 심지어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어려운 말까지 끌어다 대며 ‘먼저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며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 따뜻한 당부와 무관심의 결과는 어떠한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다. 아무리 명분이 있고 합당한 의견을 내놓는다 할지라도 소수는 다수에 밀리기 일쑤고, 약자는 강자에 무시당하는 것이 다반사다.
나아가 ‘수신제가’ 먼저 하고 ‘치국평천하’는 나중에 하라던 이의 대표격의 인물은 수중에 30만원도 채 안 가지고 있다며 정의와 법을 우롱하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잠깐 흥분하는 듯하더니 하루를 사는 것이 바빴는지 이내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 버렸다.
또 작년 한 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 광화문 일대를 온기 어린 촛불로 물들이던 이들도 지금은 온데간데 없고, 그때 그토록 열렬히 주장하던 한미행정협정, 이른바 소파 개정도 요원한 상황이다.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선다? 비겁한 자는 그저 말이나 할 뿐이다.
장길산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