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환상으로 만드는 법"

<김영하와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등록 2003.07.10 10:54수정 2003.07.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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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통해 꿈꾸고 말을 빌려 말하며 환상으로 환상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영화는 환상의 세계이다. 그 환상의 세계를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면 또 다른 그 누군가는 열심히 보고 탐구한다. 그 탐구의 과정을 우리는 영화 비평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른다.


영화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영화의 대중성이 확보된 후, 많은 사람들이 영화 비평의 세계에 뛰어 들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전문성을 갖추고 영화 비평을 전개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단순한 마니아로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하씨는 굳이 나눈다면 후자에 속하는 영화 마니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영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인 저자는 그저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 덕분에 영화에 대해 평론할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나름대로의 독특한 영화 비평을 전개하였다.

이 책은 이처럼 여러 잡지에 실렸던 저자의 영화 비평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가 전개하는 영화 비평이란 자신의 일상적인 체험과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철학 등을 섞어 놓은 묘한 형태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전문적 영화 비평가들로부터 '이게 무슨 영화 비평이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전문적인 형태의 영화비평도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 책처럼 독특한 형태의 영화 비평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 독창적 사고 전개 속에 우리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으며, 영화 또한 더 긍정적인 형태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화 비평을 위해 영화관을 드나들게 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영화관 시설의 불편함을 토로한다. 이와 같은 솔직한 이야기는 전문적인 영화 비평에서는 절대 얘기되어질 수 없는 내용들일 것이다.


"나가는 것부터 너무 귀찮았다. 팝콘과 오징어의 유혹, 뒤에서 줄거리를 읊는 관객, 가는 동안의 교통 혼잡, 원하는 영화표를 사지 못할 가능성, 지루한 줄서기, 앞좌석의 커다란 머리통, 뒷좌석의 쾌적한 관람을 방해하는 내 커다란 신장과 머리통에 대한 죄책감, 휴대폰 소리, 부적절한 냉난방, 연인들의 속삭임,…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커피캔까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싫어졌다."

이처럼 매우 사소한 일상적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가 말하는 영화 이야기는 색다르다. 영화를 잘게 쪼개고 분석하여 말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입장에서 그 영화 자체가 주는 미적 가치를 따진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이야기하며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 담긴 감성적 자아를 발견한다.


"우리의 생이, 철부지 사랑이, 아름다운 소리가, 젊음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 모든 것들이 유한하다는, 그래서 눈물겹다는 아주 오래된 전언이 담겨 있다. 나는 그런 류의 영화를 볼 때 모든 무장이 해제된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내면엔 촌스럽고 심약한 어린애가 웅크리고 있다."

TV에서 틀어주는 더빙 영화에 대한 그의 견해 또한 특별하다. 그는 더빙 영화가 그 나름의 즐거움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영화관에서 1차로 섭렵한 영화이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통해 볼 때, 더 이상 자막과 인물을 번갈아 가며 봐야하는 번거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더빙 영화는 극장에서 자막을 따라가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 혹은 발견했지만 몰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가 말하는 자막은 '시선의 자유를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평범하지만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영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연들을 꼬집어 얘기해 준다. 그게 바로 이 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렵고 진지한 영화 평론도 필요하지만, 가볍고 일상적인 영화 이야기도 필요한 것이다.

공포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왜 공포영화를 보는가에 대한 심리적 요인을 분석한다.

"공포 영화는, 그것이 잘 된 영화든 아니든, 관객을 향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공포 영화는 그 질문을 두 시간 분량으로 늘여 놓은 것이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무섭지?'이다. 영화는 묻고 또 묻는다. 무섭지? 관객도 나름대로 대답을 내놓는다. '하나도 안 무섭다'일 수도 있고 '정말 무섭다'일 수도 있다. 관객들은 '정말 무섭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에 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영화 이야기는 일상적 삶 속에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영화는 그의 삶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의미를 전달한다. 그의 삶 속에서 영화는 더 이상 특정한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친구가 되어 하나의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영화가 주는 가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일 수도 있고, 시간이 남을 때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적절한 분위기의 데이트를 위한 양념일 수도 있다. 어떠한 가치를 지니든지 간에 영화는 분명히 우리 모두의 삶 가까이에 있다. 그것을 마음껏 즐기는 사람에게 영화 또한 그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마음산책,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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