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다른 한옥 창 세 곳

[창이 있는 풍경 2]

등록 2003.07.10 11:27수정 2003.07.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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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넓은 사람은 집의 창을 크게 짓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정서가 불안한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 창문을 아주 많이 그린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지요. 창은 이렇게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데 이용되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문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하는 구실을 합니다. 창은 햇빛과 공기를 들어오게 하는 구실을 합니다. 문은 그 집안의 주체가 드나드는 곳이지만, 창은 주체의 상념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창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창은 그래서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닙니다. 들여다보고 내다보는 곳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밤손님만이 창을 드나드는 데 이용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고유의 창은 동시에 문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창’이라기보다 ‘창문, ‘창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서원이나 민속마을에 가면 볼 수 있는 한옥이나 초가집은 문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창이기도 한 것을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서양처럼 큰 규모의 집을 짓지도 않으며, 햇빛을 잘 활용하는 습성이 있는 데다, 외부와의 구별에 강박적이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끼리 순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동 하회 마을 민박집의 띠살창. 상 중 하로 3개, 5개, 3개의 살대가 가로로 끼워져 있다
안동 하회 마을 민박집의 띠살창. 상 중 하로 3개, 5개, 3개의 살대가 가로로 끼워져 있다박태신
마을에 혼례가 있는 날, 신방의 창문의 창호지는 호기심 많은 동네 아낙네들에게 수난을 당합니다. 여름날에는 아예 대청을 향해 문을 들어 올려 열기도 합니다. '들어열개 창호'라고 합니다.

한옥 창문의 창호지 즉 한지는 햇빛이 풍부한 우리 나라에는 아주 효율적입니다. 안의 모습을 가릴 수도 있으면서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합니다. 해가 지면 활동을 멈추고 해가 뜨면 활동하던 시대에 창호지로 스며드는 햇빛은 자연스레 자명종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지난해 5월 안동의 하회마을에 느즈막한 시간에 들어가 한 한옥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물건이 쌓인 마루에 앉아 덕담을 나누고, 창호지를 바른 띠살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들어가, 장작불로 뜨끈해진 아랫목에서 잠을 잤습니다. 역시 창호지로 된 띠살창에서 아침 햇빛을 받았습니다.


산책을 돌고 돌아와 방에 들어가기 전 내가 잔 방의 창을 바라보았습니다. 밖에 돌쩌귀가 달린 밖여닫이창입니다. 살대가 부러져 나가고 창틀 나무 부분에는 더께가 앉았으며 창호지는 바래졌습니다.창호지가 틈으로 삐죽 나온 것은 살바람을 막기 위해서이겠지요.

이 주인집 내외는 벌써 일하러 나가고, 한가로운 사람은 아침의 게으름에 빠졌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밖여닫이창. '용(用)자'창이다. 매달려 있는 끈으로 잡아당겨 닫는다. 오른쪽 기둥의 성화는 묵상과 기도에 쓰이는 십사처의 하나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밖여닫이창. '용(用)자'창이다. 매달려 있는 끈으로 잡아당겨 닫는다. 오른쪽 기둥의 성화는 묵상과 기도에 쓰이는 십사처의 하나다박태신
지난해 12월 다녀온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성당은 대궐 목수가 대궐 모양을 본따 만든 유서 깊은 한옥 성당입니다. 팔작지붕과 단청, 양반 고택 같은 마당, 사찰의 종과 흡사한 범종 등 우리 나라 한옥의 고유 양식을 그대로 도입했고, 실내도 과거의 정취를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의 창도 한지 창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 가서 지내면서 맡은 한옥의 체취가 그리워집니다. 한옥의 오래된 집에서 나는 구수함에 이 창의 한지도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습기 조절과 통풍을 알맞게 조절했을 것이고 주인의 체취를 잘 간직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 성당 신자들이 이 창을 열고 닫으며 한옥 성당에 자신의 체취를 성스러운 터전에 보탤 것입니다. 높게 솟은 천장의 유리창들도 안의 정기를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전라도 승주의 선암사 화장실. 조계산 아래에 위치한다. '뒤깐'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길을 끈다.
전라도 승주의 선암사 화장실. 조계산 아래에 위치한다. '뒤깐'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길을 끈다.박태신
재작년 8월 순천 선암사에서 아주 유명한 화장실을 봤습니다. 뒤간이라고 해야 되겠네요.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은 남자용, 오른쪽은 여자용인데, 특별히 벽을 세워놓지 않고 개별 사용처마다 낮은 칸막이를 해놓았을 뿐입니다.

키가 큰 사람은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더라도 옆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왼쪽의 남자와 오른쪽의 여자가 볼일을 보면서 멀찌감치 서로의 얼굴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래 세상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그래도 고약한 냄새가 안 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살창을 통한 환기 덕분이겠지요. 자연 속의 초록 내음이 뒤간 내의 '자연스런' 내음과 섞이게 되겠지요.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분의 도저한 해석을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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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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