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 내님은 어디에 있는가?박헌
김 목사는 속이 상해 점심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고 아내가 자기를 시골교회 목사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불꽃은 사그러들고 대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은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깊은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저녁 수요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난감했습니다. 저녁밥도 한 숟갈 물에 말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쩔 수 없이 기도회를 인도하러 강단에 섰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심한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등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여 이제 말씀을 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저는 제 아내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말씀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제 아내에게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엄마, 미안하오. 오늘 내가 잘못했소.”
잠깐 동안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인들은 무슨 영문이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치였고 김 목사의 사모님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명의 후배목사들과 함께 이 이야기는 산행을 하는 도중 잠시 쉬다가, 부부싸움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그 이야기를 김 목사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만약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편한 감정으로 예배를 계속 인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김 목사가 나의 후배지만, 마음속으론 나의 스승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