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과 교육위원, 직접 뽑자

선거권 독점, 후보자간 매표행위 방조

등록 2003.07.11 19:47수정 2003.07.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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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지지 대가, 교육감 권한 공유."

교육감 당선을 놓고 후보자간 매표행위가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지난 5일(토) 뇌물수수 및 증여 혐의로 이병학(47·천안시 백석동) 충남도 교육위원과 이길종(63) 전 천안교육장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위원은 2000년 7월 중순 천안 쌍용중 교장으로 재직 중인 이 전 교장으로부터 "천안교육장으로 임용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2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돈이 직접 건네진 것은 아니다. 검찰은 당시 예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인 현모씨가 이 전 교육장에게서 돈을 받아 이 위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현씨를 출국금지하고 전국에 수배, 행방을 추적 중이다. 교육위원의 뇌물수수 혐의보다 더 큰 관심이 쏠린 것은 수사과정에 불거진 각서의 실체.

지난 2000년 도교육감 선거에서 이병학 후보가 강복환 후보를 밀어주는 대신 ▲천안.아산.연기 교육청 인사권 위임과 재정권 협의 ▲강 교육감의 4년 단임 ▲이 교육위원의 교육감 출마시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 각서의 골자.

검찰은 지난 3일(목) 오후 이병학 교육위원을 긴급 체포하며 집을 압수수색, 안방에서 A4용지 1장짜리의 각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교육위원이 각서를 근거로 인사권과 재정권을 실제로 행사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교육계는 교육자치의 핵심주역인 교육위원과 교육감이 매표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이와 함께 후보자간 매표행위를 부추기는 현행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거로 오염되는 운영위원회

교육감과 교육위원은 지방선거나 대통령선거처럼 20세 이상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다.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지방교육법)에 따르면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권은 초중.고교에 설치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에게만 주어진다. 지난 2000년 7월5일 실시된 충남교육감 선거의 투표인단은 총 6천9백76명.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서는 선거인수가 턱 없이 작다.

선거권이 학교운영위원으로 한정되다 보니 선거전부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가 있는 해는 봄부터 학교가 술렁인다. 선거권을 가진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연, 지연, 혈연 등 갖가지 연줄을 동원해 ‘자기 사람’을 미리 심으려는 후보자들간 물밑 경쟁 때문에 학교는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이 때문에 학교운영에는 전혀 관심없이 선거 때 한표만 행사하려고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인사들도 상당수를 차지하는 실정.

천안시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위원장협의회 이창수(41) 회장은 “교육자치의 근간인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 때문에 제 역할을 수행 못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선거인 수가 다른 선거에 비해 적다보니 후보자들의 선거운동도 보다 은밀하게 진행된다. 전화나 편지는 기본, 운영위원 개별접촉과 특정 후보를 음해하는 각종 문서가 횡행한다.

지난 2000년 충남교육감 선거 당시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 김모(여·36)씨는 “수시로 걸려오는 후보자들 운동원 전화로 일상이 지장을 받을 지경이었다”며 “밥 사겠다, 한번만 만나달라는 운동원들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이 불탈법으로 진행되지만 적발은 쉽지 않다. 운영위원에 국한된 선거라 폐쇄성이 강하고 후보자와 유권자 접촉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탓.

천안시 선거관리위원회 정주태 지도계장은 “선거인수가 적고 교육계의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발목 잡는 선거규정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 규정의 문제도 많다. 첫 번째는 출마자격.

a 교육감.교육위원 선거규정에 독소조항이 많아 교육자치 실현에 장애가 되고 있다.

교육감.교육위원 선거규정에 독소조항이 많아 교육자치 실현에 장애가 되고 있다. ⓒ 윤평호

지방교육법에 따르면 교육감은 교육경력 또는 교육공무원으로 교육행정경력이 5년 이상 있거나 양 경력을 합해 5년 이상 있어야 한다. 교육위원도 ‘교육 및 교육행정경력 10년 이상’으로 못 박고 있다. 교육경력이 부족한 이는 출마자격조차 제한받는 셈.

또한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은 겸직금지 대상에서 제외돼 퇴직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직 교사가 출마, 교육감이나 교육위원에 당선되면 임기가 끝난 뒤 현직 교사로 복귀할 수가 없다. 사실상 현직 교사의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출마를 제약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천안중등지회 전해윤(48·백석동) 지회장은 “현직 교사들에게 교사 지위를 포기하고 출마를 하라는 것은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선거운동의 지나친 규제.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운동 기간은 10일 정도로 짧고 합동 소견발표도 1∼2회 밖에 안 돼 후보들의 능력과 자격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볼 기회가 부족하다.

당선자 확정 절차에서도 현행 선거규정은 문제 투성이다. 교육감은 1차 투표에서 유효 득표의 과반수를 확보한 후보가 없으면 며칠 뒤 최다 득표자와 차점자가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6명이 출마한 2000년 충남교육감 선거 당시 1차 투표에서 후보 모두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다. 이틀 뒤 최다 득표자인 오재욱 당시 충남교육감과 강복환 후보의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강 후보는 오재욱 후보를 223표차로 따돌리고 교육감에 당선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병학 교육위원과 강복환 교육감은 결선 투표를 앞두고 각서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결선 투표가 매표행위의 단초를 제공한 셈.

교육위원 선거에서는 ‘당선자의 2분의 1 이상이 교육경력자로 선출 돼야 한다’는 조항에 가로막혀 많은 표를 얻고도 낙선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실제 작년 충남교육위원 선거 당시 천안.아산.연기 권역에 비경력직으로 출마했던 박성호 후보는 득표에서 2위를 차지하고도 비경력직 제한 조항 때문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선거권 독점, 직선제가 해결책
법 개정 없으면 충남 내년 7월 종전대로 교육감 선거 실시

교육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간선제인 현행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남교육위원회 양기택(66·천안시 쌍용동) 의장은 “교육자치에 부합하려면 원칙적으로 직선제가 맞다”고 말했다. 천안YMCA 유진수(36·천안시 성정동) 사무총장도 교육이 학교 울타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일상과도 직결된 만큼 주민들 직접 선거를 통한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에 동의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교육부 차관을 역임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신복 교수는 “현재 교육감과 교육위원은 대표성도 불분명하다”며 직선제를 주장했다.

전교조 천안중등지회 전해윤 지회장은 “현직교사 겸직금지 조항 때문에 개혁적인 교사들이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현직교사 겸직금지나 비경력직 제한 등 선거법의 독소조항도 철폐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운영위원장협의회 이창수 회장은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권과 운영위원 역할을 분리하면 운영위원회 정상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방식으로는 교육감은 도지사와 러닝메이트, 교육위원은 도의회와 일원화를 제안했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주민 손으로 직접 뽑는 방안’은 정부 일각에서도 모색되고 있다.

작년 11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교육위원회와 지방의회의 의결기능을 단일화하고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참여정부도 교육주체의 참여확대 및 대표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교육감·교육위원 선출방식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8일(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조만간 교육감.교육위원 선출방식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선제를 포함한 개선안이 발표 돼도 실제 시행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작년 10월 교육감 선거운동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현재 소관위원회 심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현직 교육감의 이해와 맞물려 국회가 법률 개정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직선제까지 제안된다면 거부감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충남은 내년 7월경 교육감 선거를 종전 방식대로 실시해야 한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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