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니 나부터 가끔은 상대적인 빈곤에 고뇌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눈을 돌리면 온통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회구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엄하게 질책하기도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낀다.
<인도기행>은 1991년에 출간되었으나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사진작가 김홍희씨가 담아낸 인도의 독특한 모습들과 함께 법정스님의 여행 산문집으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시종일관 마음이 정갈해짐을 느낄 수 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유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 그리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곤 하는데 삶에 있어서 물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깊이 성찰해보게 된다.
인도라는 나라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신비함으로 똘똘 뭉친 나라다.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하면서도 너무나 고생스럽다고 말하는 인도, 인구 8억의 인도인 가운데 83%를 차지하는 힌두교는 '인도교' 라고 불릴 만큼 인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종교이지만 힌두교 외에도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기독교, 불교가 있다.
극심한 빈부의 차이, 거지들이 많고, 질병이 창궐하며, 뼈가 부서질 듯 일을 해도 먹고살기 힘든 인도인들이지만 늘 "노 프라브럼"을 외치며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과연 무엇인가? 또한 절대적인 것일까?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법정스님은 불교의 본질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으며 새롭게 느끼는 불교 정신, 종교의 본질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생사와 관련된 인간 삶에 대한 법정 스님의 통찰이 담겨 있다
그러나 스님은 가끔 강원도 산골 오두막을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무소유의 삶을 사는 스님이지만 결국 사람은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음을 느낀 때문이었을 것이다.
향료 맛이 너무 진해 도저히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불결하기 짝이 없는 위생상태 때문에 껍질에 쌓여있으므로 비교적 안전한 바나나와 오렌지 등을 먹으며 스님은 우리 음식을 너무나 그리워하기도 한다.
불결하고 미흡한 숙박시설이라든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도인들의 느긋함, 그리고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 버스나 기차, 모든 걸 종교에 맡기는 그들에게서 빈곤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잔타 석굴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탄 스님은 객차와 객차사이에 통로가 없이 막힌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좌우로 두 개의 변소를 두고 고행을 겪는다. 너무나 고생스러워 화가 날 지경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먼지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는 인도인들을 보면서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모두 같은 인간인데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단순히 관념의 차이라고 갈파한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쉽게 버리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더러울 것도 깨끗할 것도 없는 불구(不垢) 부정(不淨)의 세계라는 마음으로 관념을 깨뜨리자 가장 맑고 투명한 의식 상태인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 수 있었다고 한다.
변소앞 바닥에 앉아서 겪었던 경험이 인도 여행 중에서 가장 고맙고 뜻 있는 체험이 되었다며 스님은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는 사건으로 여긴다. 인도가 아닌 어느 곳에서 그런 경험을 할 것인가 라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걸 볼 때 깨달음에 도달하면 경지에 이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을 한 녹야원, 열반에 이른 쿠시나가라까지 인도 4대 성지를 비롯해 불교 유적지들을 두루 다니며 얻은 경험과 깨달음에서 스님은 결국 종교의 본질이란 따뜻한 가슴과 자비의 실천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도 한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우리 시대 영혼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의 자취였다.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난다는 진리에 접근하는데 참으로 사는 것은 집착하고 있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되며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모든 것은 순간순간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집착에서 헤어나기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욕심은 내 안에 있고 버리고, 버리지 못함도 내 안에 있기 때문이리라.
인도기행 - 삶과 죽음의 언저리
법정(法頂) 지음,
샘터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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